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 Oct 23. 2019

이렇게 고백을 해본 적 있니?

아비정전(Days of Being wild, 1990)


| 이렇게 고백해본 적 있니?


 대학시절 영화광이었던 나만큼이나 영화를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커피숍으로 오라 해서 가봤더니, 녀석은 수수해 보이지만 눈망울이 크고 예쁜 아르바이트생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내게 그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는 유달리 커 보이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비정전을 보기 전이었으므로 그의 계획을 듣고 '이 녀석 참 고민 많이 했구나!' 생각했는데, 그와 몇 마디를 나눈 아르바이트생은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이 나와서 우리를 내쫓았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 명작이라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데……


 누구나 ‘그 영화 명작이지’하는 영화들이 있다. 하나의 커다란 사회이슈가 되고 왠지 보지 않으면 뒤쳐지는 듯한 느낌. 그래서 시간을 내서 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거 난 별론데?’하는 영화들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아비정전’의 러닝타임이 끝났을 때 필자는 그런 생각이었다. 개봉관에서 보기에는 어린 나이였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봤다. 당시 영화동아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명작이라는 이 ‘아비정전’을 혼자 집에서 봤을 때는 무척 실망감이 컸다. 어쩌면 아르바이트생에게 사랑고백을 한 그 친구의 실패담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저 그랬다. 다만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의 대사는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실망했던 그날 밤 꿈속에서 영화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오래된 기억이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느낌은 생생히 기억난다.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휑하니 구멍이 난 느낌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서 그다음 날 저녁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나는 왕가위 감독의 팬이 되었다.



| 이들의 스치는 사랑이 왜 이리도 가슴을 저미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아비정전보다 타락천사나 중경삼림을 더 좋아한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시간이 단편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이미지들. 그리고 여운이 남은 인물들의 대사들까지. 아직 무언가 정해진 것이 없던 20대의 시절에 본 그의 영화들은 마치 GIF짤처럼 머릿속에 저장되어 몇 번이나 꺼내볼 수 있는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마치 지나간 인연의 기억이 몇 개의 파편으로 남아 있듯……

 그래서였을까? 지금보다는 비극적 서사를 그다지 거부하지 않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단골손님처럼 아비정전이 등장하곤 했다. 특히나 대학 선배 누나들은 맘보춤을 추는 장국영의 뒷모습을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촉촉한 눈망울로 내게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 최인훈의 광장(?)이 떠올랐다.


 1997년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보비리'라 명명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대통령의 아들 비리사건을 수사하라며 시위를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엔 시위에 가담한 학생들이 '이적집단'이라며 새빨간 깃발과 함께 뉴스에 나왔다. 이데올로기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이념 논쟁에 휩싸이는 그 역사적인 현장에 있어보니 그때부터 언론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 해 겨울 대통령이 당선되며 자연스럽게 대학생 시위는 등록금 투쟁쯤으로 가벼워졌다.

 1997년에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된 홍콩. 밀레니엄을 앞두고 중국으로 반환되어야 하는 홍콩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러다 문득 아비의 양모와 친모가 영국과 중국이라는 기호들로 읽혔다. 다리가 없는 새라는 아비의 대사는 마치 고향이 없는 자신의 모습, 돌아갈 곳이 없는 홍콩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최인훈의 광장이 떠오른 것은 아비의 그런 삶과 당시 이념의 이데올로기에서 방황해야 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시대의 젊은 청년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19년의 홍콩을 간간이 기사로 접하면서, 그리고 몇 되지 않는 그곳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하면서, 1997년의 반환을 암울해하던 사람들의 걱정이 바로 지금의 홍콩이 모습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스쳐가는 사랑뿐만이 아니라 두 어머니 어느 쪽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던 아비였구나……. 그래서 최인훈의 광장이 생각이 났구나…….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겪었을 그 젊은 시절의 공허함이 마치 내게도 다가왔듯 가슴이 먹먹했구나…….

 



작가의 이전글 너는 이런 외로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