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도장 하나 찍었을 뿐인데…
“나 예전에 공동체를 꿈꾼 적이 있었어.”
한때 포털사이트에 ‘공동체’를 검색하고 관련 단체를 들락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에겐 공동체 주택에 대해 박식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고 꽤 깊숙이 연관된 사람인 것처럼 양념을 쳐서 이야기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남편은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다른 건 전혀 못 알아듣는 사람이 웬일인지 그 말은 잘 알아듣고…) 공동체 주택을 모집한다는 그곳으로 핸들을 돌렸다.
아직 본격적인 주택이 지어지기 전이었고, 그곳은 그냥 허허벌판이었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날 정도의 그 땅을 보고도 우리는 마냥 신이 났다.
코앞에 있는 학교를 보고 초등학교까지 한 방에 해결이라며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
갑자기 부부애가 샘솟았다. ‘이곳에서 천년만년 살 수 있겠네’ 하는 꿈도 꾸었다.
우리 부부는 누구도 등 떠민 사람 없이 스스로 좋아서 (이런 걸 보고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다’고 하나 보다) 휘리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예비 공동체 주택 입주민이 되었다.
“공동 육아 어린이집도 참여하실 거죠?”
함께 공동체 주택에 입주할 예비 입주민 모임에 가서 처음 접한 질문이었다.
‘그럼, 그럼…’ 내가 바로 그 어린이집 때문에 도장 찍은 사람 아니던가.
발랄하고 순진하게 어린이집 무리에 끼어들었다.
기대에 찬 내가 처음 듣게 된 이야기는, 시작부터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어린이집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해요.”
아니 내가 무슨 보육교사 자격증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우리 부부가 회사에 있는 동안’ (이라고 적고 ‘돈 벌어 올 동안’이라고 읽는다) 내 아이를 맡아줄 어린이집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걸 직접 만들어야 한다니? 그럼 지금 있는 건 내가 가서 보고 왔던 그 맨땅이 전부란 말이야? 역시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난 그저 우리가 바쁠 때 남들 손도 좀 빌리고 공동육아 어린이집,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건물 1층에 생긴다고 하니 가까워서 좋겠네 하면서 시작했던 거였다.
때 되면 일반 어린이집처럼 입학 원서 넣고 가방만 준비하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인생 문제 모두 해결했다고 자신만만했던 모습에서 서서히 드러나던 불행의 서막, 그 끝을 부여잡고 있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못해도 고!”
이럴 땐 현실적이면서도 계산적인 남편은 매우 단호한 모습으로 말했다.
분명 지금 그는 우리가 쓴 계약서에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항을 곱씹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가 해결할 수밖에…. 취소 버튼이 없다면, 그대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취소한다 한들, 그 현실이 더 나은 것도 아닐 테니.
진퇴양난의 전투에서 우리는 힘차게 “고”를 외쳤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어나서도 안 되는) ‘어린이집 설립’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으로 빨려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