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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is and Johnnie Feb 14. 2023

북극늑대와 나

THE SNOW WOLF FAMILY & ME, 2021

  캐나다령 최북단 북극권에 서식하는 북극늑대들에 생태를 관찰한 어떤 다큐는 논픽션이지만 어지간한 영화보다 강한 서사적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영국의 야생 동물 전문 촬영 감독 뷰캐넌은 생명이 깃드는 봄이라곤 하나 마치 황량한 외계의 행성처럼 보이는 엘즈미어 섬 한복판에, 불시착하듯 작은 보따리 짐과 함께 말 그대로 '던져'졌다. 그리고 늑대의 굴이 있는 곳 근처에 작은 텐트를 치고 호젓하게 홀로 야영을 시작했다. 그는 북극늑대의 본성을 이해하고 허구와 진실을 알고자 어미가 새끼를 낳는 봄부터 다시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까지 무리에 들어가 살아보고자 마음먹었다.

  극단적 환경으로 인간에게 버림받은 땅이기에 아무도 굳이 이곳을 찾아 사냥하려 하지 않았고, 여기 늑대들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다. 늑대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가장 대담하고도 위험한 존재가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 그는 있을 수 있는 모든 파국적인 가능성에 대해 예측하며 무척 두렵고 불안해했다. 그가 마주한 실감 불가의 낯섦과 혼란의 상황을 나 자신의 가장 두려운 일에 대한 직면이라고 상상의 대치를 수행하면 어렵지 않게 강한 이입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극도로 두려운 한편 어쩐지 마술에 홀린 듯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 주어졌다는 것은 가없는 삶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아는가? 그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 가장 먼저 만난 어미 늑대에게 달처럼 희다 하여 루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녀와 조금씩 친밀해져 새끼 늑대들을 마주하는 데 성공하고, 후일에는 어느덧 루나와 그 가족들이 불가피하게 전원 사냥에 출정하느라 굴을 비울 때 남겨진 새끼들을 노심초사 지키는 일까지도 허락되었다.


  숲에서 서식하는 늑대 종이 비교적 생활 반경이 좁은데 비해서 북극늑대들의 활동 범위는 상상을 초월하도록 드넓다. 그들이 보금자리로부터 한번 자취를 감추면 남겨진 자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애틋하고, 걱정이 반려되는 애절초절한 마음을 견디다 못해 사륜 구동 오토바이로 그들을 찾아 나서 드넓은 대지를 온통 헤매며 돌아다니고, 그들의 사향소 사냥 성공 ― 북극늑대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성공률이 극히 낮다 ― 을 세상 그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는 점차 새끼를 포함한 아홉 늑대 가족의 구성원 간 다양하게 구분되는 개성을 파악하게 됨에 따라 각기 다른 정서의 유대를 맺게 된다. 호기심이 많아 마음을 특히 많이 나눈 한 살 배기 큰 형 스크러피가 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코 끝을 대었을 때, 그는 그간 모인 공존의 시간들이 소급되어 응결된 찰나의 시그널로써, 감개무량한 전율을 느낀다. 오직 새끼 늑대의 보호와 생존에 한 마음으로 모이는 그들의 사랑에는 종을 구별하고 갈래 짓는 데 유별난 의의를 두는 인간의 지력에서 만들어진 개념적 척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도연함이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의 터전에 남겨두고 온 그리운 가족을 떠올리며 하나로 엮인 인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산전수전의 계절을 함께 난 그들에게 어느덧 성큼 다가온 겨울을 목전에 둔 이별의 시기가 머지않았을 때, 뷰캐넌은 그들 유대의 방식 나름으로 거듭 늑대들과의 작별을 기념하는 기슭에 선다. 그 최선의 모습이라 해봤자 언제나처럼 고적한 황무지의 둔덕에서 함께 뒤엉켜 어울리며 살포시 나동그라져 있는 것뿐이다. 한동안 온통 어둠으로 잠길 겨울이 다가오니 이제는 한낮에도 저녁처럼 어스름하게 붉은 석죽빛이 꺼져가는 등불의 유감스러운 여운처럼 사위를 적적하게 감싸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함께라서 더없이 만족스러운 온기로 서로를 품은 것처럼 보였다. 광활한 구릉의 능선 위에 그가 어둡게 그림자지도록 카메라를 들고 섰고, 북극늑대들의 실루엣이 그를 향해 부드럽게 다가오는 마지막 그림은 그대로 이 영화의 상징적인 오프닝 장면이 되었다.



  공포와 희망이라는 추는 저울의 양측에서 균등하게 작용하는 하나의 힘이라는 메시지를 얻는다. 두려움은 우리를 나태하고 예민한 쇠약함으로 심연의 바닥까지 끌어내리기도 하지만, 반드시 다른 한 측에서 미래기대에 대한 기회로 혁혁하게 작용하리라는 이원성은 오직 '가능'을 그러쥐는 의지의 땅에서 실증되어 현시에 기억되고, 비로소 생의 분명한 증거로 남는다. 만약 뷰캐넌이 두려움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마주할 수 없었을 미지의 운명, 그는 두려움 너머의 세계에서 북극늑대들과 사랑했고, 스스로 쟁취한 특권 속에서 영위의 맛을 알 수 있었던 아주 드문 한 사람이 되었다.

  나 자신이 공황장애라 해서 불안에 압도되는 기분만이 두려움의 전부인 줄 알았다면 얼마나 경험의 부재와 무지의 소치를 드러내는 생각인가. "미지의 다음 장으로 넘기려고 할 때마다 그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데, 그건 아름답고 신비한 대상 앞에서 느끼는 독특한 두려움 아니겠나, 경외의 책을 손에 들고 읽고 있는데 귀중한 구절들이 줄줄이 나타나 우리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멈추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어떤 망설임 때문에 쉽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작가 에커만은 말했다. 이는 '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고민이기도 하다.

  본질에 대한 호기심은 흡사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만 것처럼 혼란과 두려움이 야기하는 통증을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나를 고이 아껴둘 때 어차피 예외 없이 당도할 생의 끝자락에서 도대체 무엇이 이득으로 남길래 직면하기보다는 안주하려 하는 걸까. 지복한 영위보다 무감한 쾌적함이 더 유혹적인 이유는 우리가 용기와 인내 끝에서 마주하는 진정한 행복 제반을 맛본 체감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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