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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서환 Ryu Apr 12. 2022

배민은 왜 '쇼'를 할까?

배민의 '쇼'가 '쇼'로 그치지 않는 이유

해당 글은 논문 'Sorenson_2009_note on org culture'의 내용과 개인의 인사이트를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목차.

1. 기업문화, 꼭 필요한가요?

2. 기업문화의 +α, 지속성

3. 그래서, 배민은 왜 쇼를 할까?

4. 반전. 배민의 쇼는 쇼가 아니다

5. 변화를 주는 '진짜' 문화




 먼저 제목을 보고 씩씩거리면서 찾아오신 배달의 민족 관계자분, 수많은 우아한 형제분들, 그들의 열렬한 팬이자 사용자이신 분들, 진정하세요. 저도 배민의 아주 열렬한 팬입니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든 없든, IT 업계에서 종사하든 안 하든 배달의 민족의 행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022년 4월에는 배달의 민족의 재치를 그대로 담은 제목의 '이게 무슨 이야'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스타트업에서 '기업 문화'하면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배달의 민족이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낱낱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혹시 우리 회사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반대로,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기업 문화'에 대한 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배민은 왜, 이렇게 '쇼'를 하고 있는 걸까요?



1. 기업문화, 꼭 필요한가요?

 문화는 문화고, 일은 일이죠. 한시가 바빠 죽겠는데 언제 저런 11가지 법칙을 정하고, 재치있게 써내려서, 디자인하고, 인쇄해서 회사 벽에 붙이고 다녀요. 그냥 슬랙 공지사항으로 대표님이 한 마디 하시면 되잖아요.

우리가 '기업문화'를 약간은 달갑지 않게 느끼거나, 두루뭉실하게 이해하는 이유는 '기업문화'라는 단어를 '일하는 방식', 즉 '프로세스'를 설명하기 위한 커다란 범주로써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매일 아침 스크럼을 진행하는 문화가 있어요', '우리는 노션과 슬랙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몇 시에 회의가 있고, 어떤 툴을 사용하는지를 말하는 '프로세스'는 커다란 기업문화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 중 하나인 '공식 조직의 한 조각'에 가깝습니다. (공식조직이 뭔가요? 궁금하다면 click!) 성과를 쌓았을 때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가 나오는지, 옆 부서와 우리 부서는 어떻게 주간 회의를 진행하는지, 상사에게 업무를 보고할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가 프로세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런 이야기들은 조직에서 필수적으로 나누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업 문화'의 일부인 프로세스 부분은 잠시 내려놓고, 그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세스를 넘어서, 프로세스에 플러스 알파가 되는 무언가에 대해서요.



2. 기업문화의 +α, 지속성

    기업 문화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일을 굴러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그 프로세스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죠. 이 지속성(Persistence : 같은 형태로, 일정 시간동안 계속됨)을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봅시다.


1. 기업문화는 내부 구성원 사이의 격차를 좁힌다 (관계 지속)

예를 들어, 고객관리 1팀에 김부장과 고객관리 2팀의 최부장이 있다고 칩시다. 근데 어느날 갑자기 두 팀에 같은 고객 클레임이 쏟아진 거예요. 1분에 전화가 10통 오고, 메일이 수백통이 날아오는 중대한 에러가 있었던 거죠. 두 부장은 서로 회의같은 걸 할 시간이 없고 기업의 입장에서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해야합니다.


 김부장은 일단 빠르게 답변하고, 나중에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는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최부장은 정확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답변을 보류하고, 상황이 해결 된 뒤에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을 채택했습니다. 같은 에러를 겪은 사용자들이 어떤 담당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서비스를 받게 되는 거죠. 회사 입장에선 서로다른 두 처리 방식을 끝까지 마무리하느라 인력을 분리해야하고, 전략을 분리해야하고, 더 나아가서 비용까지 분리하게 됩니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픈 상황에, 우리에게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한다'는 기업문화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2. 기업문화는 새로운 구성원과 기존 구성원 간의 격차를 좁힌다 (시간 지속)

 직원이 이직하고 입사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10년간 우리 회사에서 일하셨던 부대표님은 자신만 알고 있는 경영철학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신입사원이 올 때마다 직접 한 명 한 명 온보딩과 사내 규칙들을 알려주셨던 걸로 유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부대표님이 대표직을 내려놓으시는 날이고, 마침 내일 신입 사원이 10명 더 들어온다고 하네요. 이제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누가 말하죠?

 만약 명문화된 기업문화가 있었다면, 김과장님과 신입사원들은 이렇게 당황했을까요?


 위 사례로 알 수 있다시피, 기업 문화는 기업이 오랜 시간동안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업 내부에서도, 기업 외부에서도요.

연구자들이 말하는 '기업문화가 필요한 이유' 요약

[조직 구성원 입장에서]
- 집단 구성원들에게 일상생활에 의미를 부여
- 지침과 규칙을 설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불안을 줄임

[기업 입장에서]
- 기업문화는 회사 내의 사회적 통제를 용이하게 함
- 어떤 행동이 다른 행동보다 적절한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하고, 위반한 경우에도 빠르게 수정할 수 있게 됨
- 또한 모든 사항에 대한 규칙을 세세하게 수립해서 각 행동을 수정하고 판단하는 '공식적 통제'에 비하여, 비용이 훨씬적음
-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기업 문화가 강력하다면 직원들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고, 조직 내부의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문화에 기반한 목표 합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
- 강한 문화는 공식적 통제의 필요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직원들로 하여금 행동이 자유롭다는 인식을 주어 동기와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음




 3. 그래서, 배민은 왜 쇼를 할까?

 좋아요 좋아요, 기업 문화가 중요한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벽에 붙이면서까지 가지고 있을 필요가 뭐가 있나요, 어차피 일은 우리가 하는데, 그냥 우리끼리만 알면 되는 게 아닌가요?


기업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과 사회화'

 기업문화를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업이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구성원이 유입되고, 이탈하는 생동감 넘치는 조직이니까요. 그런 기업이 기업 문화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쓰는 수단은 '선택과 사회화'입니다.

 첫째, '선택'은 직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적합성을 판단하여, 이미 우리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업 문화에 합의하고 있는 구성원을 선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회화'는 회사가 가진 리더십동료들간의 영향력을 통해 기업의 문화에 합의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두 방법 모두 아주 어려운 방법입니다. 영원히 우리 기업에 맞는 사람만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회사가 가진 리더십과 동료들의 영향력이 반대로 작용하는 순간 기업문화는 산산히 조각나거든요. 렇기에 기업은 외부에게는 '공표'하고, 내부에게는 '설득'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심볼 symbol'을 사용합니다.


기업의 문화를 강화하는 '문화적 인공물 cultural artifacts'

둘이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견물생심, 뭐 그런 말이 있죠. 기업은 기업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텍스트로 정리하고 공유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특정한 목소리로, 콘텐츠로, 심볼과 시그널로 녹여서 내부와 외부에 전파합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우리 기업에 더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내부의 인원들을 더 강력하게 '사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반전. 배민의 쇼는 쇼가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배민의 쇼는 쇼에서만 그치지가 않습니다. 아니, 사실 쇼가 전혀 아닙니다. 배민의 '기업문화'는 '진짜'입니다.


 기업문화가 진짜면 진짜지, 그럼 가짜 기업문화도 있답니까? 있죠, 토요일 날 갑자기 팀 단합이라면서 등산가자는 부장님의, 능률과 조직 개선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벌일 때 변명처럼 이야기하는 '가족같은 팀'이라는 기업문화는 가짜입니다. 기업문화를 단순한 '쇼잉'이 아니라 '진짜'로 만들기 위해서는 잘 빚어낸 기업 문화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변명으로 사용하지 않고, 조직의 구조 자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브런치에서 이상한 글을 읽고 와서 바람이 분 대표님의 한 달도 안 가고 의미가 없어질 꼰대질'이 되어버리겠죠. 9번 항목 좀 보세요,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라니, 그게 뭔데요. 저거만 달랑 써놓고 아무 것도 안 하면 부장님이 "집에 가서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하고 호통칠 때 쓰려고 만들어놓은 것 같잖아요.


 하지만 배민의 '11가지 일 잘 하는 방법'은 진짜입니다. 그저 벽에 걸어두고 사원들을 통제하기 위한 '규칙'으로 활용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배달의 민족은 벽에 붙여놓은 텍스트에 책임을 집니다. 9번 항목을 예로 설명하자면,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조직 전체가 함께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귀... 귀여워!

 배달의 민족의 유명한 서체들의 이름이 김봉진 대표 및 임직원들의 자녀 이름을 활용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회의실 방 이름 또한 자녀들의 이름을 활용하고, 게다가 회의실 명패도 진짜 자녀의 글씨체로 표기를 해놓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콘텐츠와,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

회사 곳곳에서 보이는 자녀들의 이름, 어린 자녀들을 걱정하지 않도록 직접 운영하는 어린이집, 가족과 함께하는 워크숍과 가족을 위한 복지, 그리고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자'라는 우아한 규칙. 이제 기업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할 지 감이 오시나요?


5. 변화를 만드는 '진짜' 문화

 진짜 문화는 구조를 변화시킵니다.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을 변화시킵니다, 이는 더 나아가서, 조직의 전략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사람이 변하면 조직이 변하고, 조직이 변하면 자원과 환경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가짜 문화는 그 무엇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저 귀찮은 아침 미팅 시간이 늘어나고, 벽에 붙은 포스터 몇 장이 늘었을 뿐이겠죠.


 기업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정말 어렵습니다. 초기에 잡아놓지 않으면 나중에 만들어내기는 더 어렵고, 그렇다고 사업 초기에 해야할 일이 산더미인데, 기업 문화만 만들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영속성있는 사업을 오랜 시간동안 더욱 견고하고 더욱 크게 빚어나가고 싶다면 언젠가 한 번 쯤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과연 어떤 기업 문화를 가진 팀을 만들어내고 싶은가요.

그 문화가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 회사에는 기업 문화가 있다는 '쇼'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


*IT 업계의 프로덕트 디자인과, 조직 이론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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