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로 휴직합니다.
얼마나 되뇌었을까.
너무 오래 생각하면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다,
생생한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이 딱 그랬다. 어미새처럼 마음에 품은 단어 "휴직". 지난해를 견디는 동안 휴직에 대한 열망은 점점 극에 달했다. 출구 없이 쌓여만 가던 열망이 때로는 휴직이 이뤄진 것 같은 착각을 들게도 했다. 현실 같은 상상. 상상 같은 현실이 뒤섞이는 낯선 느낌을 경험을 했다.
생각해 보았다. 그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같이 잘 해내보자며 늘 힘과 용기를 주는 팀 선배님에게 미안해서 그런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런데 사실은 내 휴직을 나조차 용납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경로이탈이다. 머릿속 내비게이션이 경고음을 울린다. 내 무의식이 경로이탈을 감지했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려 애쓰는 의식 앞에, 내 무의식은 스스로도 설득 못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대한 벽처럼 굴었다. 순간 각자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친다. 이윽고 어찌 못할 부끄러움 같은 게 일어난다.
내가 아는 동료,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각자의 무게를 스스로 견뎌내고 있다. 나는 왜.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왜 나만 힘들어할까. 어리광을 부릴 나이는 지난 지 오랜데. 누구나 다 힘들어. 그런데 다 참고 일해 라는 말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거 같다. 회사에 이유 없는?! 휴직을 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 말을 내뱉지 못하게 단단히 제동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저 하루였다. 휴직을 선언하기로 한 날. 비장한 각오와 함께 출근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타이밍은 왜 이렇게 안 맞는 건지.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는 말을 꺼내려하면 팀장 전화기가 울리고, 다시 또 타이밍이 맞다 싶은 순간엔 하필 누군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곤 느닷없이 회의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날이 지워졌다. 달리 볼 여지조차 없는 실패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들었다. 이게 아니잖아. 내 마음은 분명 이게 아닌데!
그럼에도 내 마음은 실패한 하루에서 위안을 찾는 오작동?! 을 이어나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일주일, 일주일이 달이 되고, 달은 그렇게 수를 늘려갔다.
상상이 현실같이 느껴지는 몽롱함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이 너무 흘러서일까. 어느 날 휴직에 무감각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이 흘러나왔다. 애써 끄집어낸 게 아니라 저절로 나온 것처럼. 내 입에 잠금장치 같던 그 말이 그렇게 흘러내릴 줄 몰랐다.
"휴직"을 입밖에 내는데 7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이유 없는 휴직을 스스로 인정하는 시간이 그만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즈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접했다. 열린 결말 같기도 닫힌 결말 같기도 하며 이해될 거 같으면서도 안 되는 아리송한 이 작품이 작지만 분명한 힘을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경로이탈을 알리는 경고음이 무서운 건 시간 내에 목적지에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적지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다. 애초에 나에게 있었나 싶기도 하고.
잠시 전원을 꺼둬 봐야겠다. 한 번쯤 그래도 언제든, 어디에서 있든 다시 새로운 경로로 안내를 시작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