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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수 Oct 26. 2024

타임머신

머리에 큰 꽈리가 있단다.

다행이다. 처음으로 뇌 MRI를 찍은 어머니는 무난히 시술을 마치시고, 죽지도 못하고 누워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셨다.

부모님 가까이 사는 여동생이 입원을 도왔고 퇴원하시는 날 새벽기차로 내려가 10개월 만에 부모님을 뵈었다. 40년 전 기억 속 병원은 이름만 그대로이고 크고 세련된 외모를 자랑했다. 괜찮다는 한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나타난, 우리 가족이 한동안 살았던 동네는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해있었다.

저녁 상경 기차 때까지 남은 시간을 어쩔까 궁리하셨는지 아버지는 사진첩들을 꺼내시더니 사진을 골라서 가져가라 하신다. 오래전 그때와 그 장소와 그 사람들에 매료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훈련병인 나는 곧 입대할 아들에게 보여줘야겠고, 중학교 졸업식 날 한 여자아이가(지금 보면 아이라서) 건넨 독사진은 아내에게 자랑.. 하려다가 정신을 차렸고, 대학교 합격자 명단을 붙인 큰 패널 앞에서 어머니와 찍은 사진은 당신의 얼굴에 담긴 기쁨(들춰본 모든 사진 중에 가장 그래 보인)에 마음이 뭉클해져서 살짝 내려놓았다.

중학교 2학년 3반 녀석들이,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선배들이, 이야 오랜만이야, 살아있네, 나도 잘 있어, 동시에 말을 걸어와서 내 머릿속은 버벅거렸다.

글을 쓰라던 국어 선생님. 지금 봐도 미모(참고로 남성임)가 빛나시는데, 그 풍성한 머릿결을 간직하고 있으실지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오시나 동생들과 내다보던 아파트 베란다. 그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 서있는 초등학교(라고 쓰고 국민학교라고 읽게 되는) 단짝 친구들. 제주도를  자전거로 돌다가 방파제에 기댄 남동생과 나.

아버지, 시간 때우려다 밥 때도 놓칠 뻔했네요. 어머니께서 회복 중이시니 저녁도 밖에서 먹어요. 그래 저녁은 내가 사마. 현재로 돌아오니 배가 고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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