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가 터온 싹을, 마당에 심어, 꽃을 거뒀지요.
지난봄 뀨가 유치원에서 봉선화 '몇 가닥'을 가져왔다. 씨앗을 심었더니 새싹이 뿅 나왔다며.
1회용 플라스틱 컵 안에 싹을 틔운 봉선화는 뀨 손짓에 따라 대책 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봉선화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얼른 마당에 옮겨 주자고 하긴 했는데, 이미 마당 텃밭에는 야심차게 심은 대파가 장렬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뀨가 씨앗부터 키워온 봉선화를 죽이고 싶지 않은데. 자신이 없었다. 헷지 차원에서 분산 투자... 대신 분산 식재를 해보기로 했다. 내 손끝 온도에 비실비실 죽어버릴 것 같은 연약한 아이들을 두 세 가닥씩 나눠 여기저기 심고는 나무젓가락과 노끈으로 위치를 표시해뒀다. 매번 그랬듯 그렇게 정성을 다하고, 서로 고생했다며 물개 박수를 치고는 곧- 봉선화 존재를 잊어버렸다.
해바라기, 대파, 부추가 생을 마감한 그곳에서 봉선화는 놀랍게 성장했다. 볕이 종일 들지 않아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느다란 줄기 하나가 쑥쑥 크더니 어느 순간 제법 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역시나 '안 되겠지' 하며 창 앞쪽에 심은 봉선화도 텃밭만큼은 아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다. 역시 우리나라 야생꽃은 생명력이 남다르구나 하고 찾아봤더니 봉선화는 인도와 동남아가 원산지라고 한다. 인도라면... 그래. 거기도 만만치 않은(?) 곳이지. 척박해도 살아날 생명을 살아나는구나 싶다. 그래도 볕이 부족했는지 꽃은 안 맺히고 키만 쑥쑥 컸다. 그리고는 8월, 한여름이 되자 꽃이 피었다. 짙은 분홍색이었다.
때가 되었다. 봉선화 물을 들이자!
약국에서 백반을 샀다. 아직도 약국에서 백반이란 걸 팔긴 하는지, 혹시 '백반이 뭔가요?'라고 되물으면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첫 번째 들른 대형 약국에서 별 일 아니라는 듯 백반을 살 수 있었다. 화분에서 손에 쥐기 좋은 크기의 둥근돌을 가져다 봉선화 꽃과 잎을 빻았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엄마는 검정 비닐을 몇 조각으로 나눈 뒤 손톱 끝을 고정하고 실로 칭칭 감아줬었는데. 요즘은 접착력이 있는 매직랩으로 감아버리니 실도 필요 없이 손쉽게 끝낼 수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방법이다. 돌로 빻은 꽃잎을 손톱 끝에 올려 물을 들이는 이 오래된 놀이를 유튜브 검색을 통해 '간단히 할 수 있는 요령'으로 공유할 수 있다니. 아직도 봉선화 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걸 기꺼이 화면에 담아 온라인 세상에 띄운다는 게 다정하게 느껴진다.
뀨는 이 모든 과정을 기꺼이 함께해줬다. 내심 '그런 거 안 해'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래서 손톱에 드는 붉은 물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렸는데. 내 걱정과 달리 뀨는 즐겁게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손 끝이 묶여 불편했을 텐데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그 상태로 버텨줬다.
비닐을 벗기고 물로 손끝을 씻어내니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 정말. 너무 곱다.
은은하게 퍼지는 색이
볼수록 설렌다.
뀨 손 끝을 본 사람들이 '봉선화 물을 이쁘게 들였네'라고 말을 건네면, 뀨는 꼭 '제가 씨앗부터 키운 거예요'라고 답을 한다. 내가 심은 마음인 걸 안다. 뀨에게 여러 번 '뀨가 직접 키운 봉선화로 봉선화 물을 들였어. 참 좋다'라고 말했다. 내 마음을 뀨에게 심으면 그게 고스란히 피어날 때가 있다. 그래서 무서울 때도 있고 그래서 좋을 때도 있다. 당분간 나에게 여름은 '봉선화 물들이기'로 기억될 것 같다.
볼 때마다 설레는 뀨의 손을 보고 있으면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 싶다. 내년이면 초등학교 1학년. 남자 여자 어쩌고 하며 싫어하거나, 친구들이 놀린다고 꺼려하지 않을까 싶다. 미리 서운하기보단 앞서 다행이지 싶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뀨랑 봉선화 싹을 옮겨 심고. 잘 자라준 봉선화에서 꽃잎을 따 물을 들이고. 손톱 끝 색깔마냥 짙고 짙은 이런 추억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적당히 좋은 시절, 이곳에, 뀨와 함께 있어 참 좋다. 이번 여름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