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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Jul 20. 2021

페어 플레이어(fair player)를 위한 변명

1986년도 멕시코 월드컵 축구 경기장. 한국이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에는 세기적인 선수 마라도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허정무 선수가 그를 밀착 방어했지만 도저히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허정무 선수가 태클을 시도하다 그의 무릎 위 허벅지 부위를 오른발로 세게 걷어차 버렸다. 축구 경기라고 하기에는 그냥 육탄 공격이었다. 


엄청난 파울 플레이(foul play)였다. 당시 허정무 선수에게 걷어 차인 마라도나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태권도” 축구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지금 50~60대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축구 일화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파울 플레이를 많이 경험한다. 국가권력을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가 아니라 총칼과 같은 무력으로 쟁취하는 것은 대규모의 국가적인 파울 플레이다. 범위를 좁혀 직장생활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동료를 뒤에서 험담하거나 따돌리는 행동은 조직에서의 개인적인 파울 플레이다. 


이렇듯 크고 작은 파울 플레이의 종착점은 당연히 결과에 대한 불복종, 반발이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나 개인적 감정의 손실이 발생한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의 세계는 어떨까? 법이란 누구나 지켜야 할 기준으로 사회 공동체가 정한 규칙이다. 일종의 페어플레이에 관한 규칙이다. 법을 위반한 사람은 파울 플레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변호사는 어떤 사건이 페어플레이인지 파울 플레이인지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변호사인 나 자신도 이 모양 저 모양의 파울 플레이를 경험했다. 


변론하는 과정에서 변호사가 자기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답시고 허위 변론을 하거나 과잉 변론을 하는 경우이다. 변호사는 자기 의뢰인을 위해 최대한 성실하게 수임받은 사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긴 하다. 하지만 허위 변론이나 과잉 변론은 사건 자체의 정당한 해결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울 플레이다. 


누수 사건이 있었다. 사안은 간단했다. 1층에 병원이 있었다. 고객인 병원장은 시설이 낡아서 인테리어 업자에게 병원 수리를 맡겼다. 싱크대 이전 공사도 했다. 그 와중에 공사 인부들이 싱크대 밑에 있는 수도관을 옮기는 작업도 했다. 그렇게 공사가 끝났고 몇 개월이 지났다. 


6개월쯤 지났을까. 결국 문제가 터졌다. 누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1층에서 싱크대 밑의 수도관에서 센 물이 밤새도록 새벽까지 지하층으로 흘러 들어가 흠뻑 적셨다. 인테리어 업자들이 수도관 밸브를 꽉 조여 놓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밸브가 수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풀려버린 것이었다. 


지하층에는 고급 여성의류 판매회사가 임차하여 영업 중이었다. 지하층에 쌓아 놓은 모든 여성 의류가 누수 때문에 다 망가졌다. 피해가 몇 억원이 넘었다. 당연히 임차인은 내 고객인 1층 병원장을 피고로 삼아 누수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고객은 누수 피해에 대한 손해를 배상했다. 거기까지는 일반적인 사건이었다. 


이제 1층 병원장이 원고가 되어 싱크대 공사와 수도관 공사를 한 인테리어 업자 홍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구상권 소송이었다. 공사비 영수증(세금계산서)에 나와 있는 형식상의 여성 대표 박 씨도 피고로 추가하여 연대책임을 추궁했다. 대표인 박 씨는 공사현장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일종의 바지 사장이었다. 그녀는 인테리어 업자가 아는 지인의 아내였다. 너무나 단순한 사건이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인테리어 업자인 홍 씨와 형식적인 대표 박 씨는 재판정에 전혀 나오지 않고 변호사만 출석했다. 변호사는 홍 씨가 현장에서 실제 공사를 한 적이 없고, 박 씨가 공사 현장에 나와 공사를 감독했다고 변론했다. 바지 사장인 박 씨는 아무런 재산도 없이 이름만 빌려준 사람이어서 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인테리어 업자인 홍 씨는 책임에서 빠지려는 술책이었다.


너무나 명백한 허위 변론이었다. 홍 씨가 현장에서 인부들을 통솔하며 공사를 총괄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거기에 무슨 법적인 쟁점도 없었다. 단지 피고가 손해 배상할 금액이 얼마인지, 형식적인 대표인 박 씨도 거기에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법적인 쟁점이었다.


누수 사고가 난 지 2년 정도 지났기 때문에 내 고객은 홍 씨, 박 씨, 공사인부들과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인부들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건물의 CCTV도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상대방 변호사는 여러 차례의 재판기일이 진행되는 동안 반복해서 이렇게 허위 변론을 했다. 


같은 변호사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다행히 홍 씨를 병원 원장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공사 당시에 잠시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법정에서 증언을 하도록 했다. 


결국 판결이 났다. 재판장은 홍 씨가 공사를 주관했고, 바지 사장인 박 씨도 연대하여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홍 씨를 면책시키려는 상대방 변호사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렇지만 그 변호사가 허위 변론을 하며 재판을 지연시켜 온 행동은 파울 플레이였다. 그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구겨졌다.


저 멀리 멕시코에서 파울 플레이를 했던 우리나라의 축구 경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1대 3으로 패배했다. 결과도 패배했고 과정도 오명을 썼다. 파울 플레이를 하면서까지 승리하려는 노력이 애국심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독립운동도 아닌 바에야 그렇게 인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위신을 떨어뜨린 결과가 되었다.


페어플레이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과정이 아름답고 덩달아 결과도 아름답다. 승리자나 패배자 모두가 만족한다. 과정에서 정당하게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에서 패배한 자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승리자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다가 힘들면 때로는 파울 플레이를 하며 빨리 성공하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하지만 삶이란 장기전이다. 어제오늘의 단기간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면 페어플레이를 하며 과정을 정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나중에 삶을 정리할 때 뒤 돌아보면 성공과 실패는 순간이고, 페어플레이로 걸어왔던 길과 과정이 바로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페어플레이를 하는 우리 모두는 이미 인생의 아름다운 성공의 씨앗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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