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변에 유명한 추어탕 식당이 있다. 깨 국물에 죽순을 넣어 요리한 추어탕 맛이 정말 좋다. 요즘 같은 코로나 상황에도 이 식당은 항상 손님들로 붐빈다. 동네 근처에 찾아오는 지인을 그냥 보내기 아쉬울 때면 식당에서 추어탕을 포장해 달라고 하여 선물로 지인 손에 쥐어 준다.
아내는 추어탕을 싫어한다. 미꾸라지 자체를 싫어한다. 미꾸라지 모양도 괴상하고 맛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역시 음식은 어렸을 때 먹어본 음식이 가장 자기 입맛에 맞는 모양이다. 유년시절에 시골에서 추어탕을 자주 먹어 본 나와는 달리 아내는 어렸을 적에 추어탕을 먹어본 적이 없다.
황금빛 들판에 벼가 무르익고 본격적으로 벼 베기 시즌이 다가오면 논에서 물을 빼낸다. 논바닥에 물이 꼬들꼬들 말라 있어야 벼 베기 작업을 하러 논에 들어가기 쉽다. 베어 놓은 볏단을 마른 논바닥에 눕혀 햇빛에 잘 말릴 수 있다.
그렇게 물을 빼냈는데도 질컥질컥 한 부분이 있다. 논바닥의 수평이 안 맞아서 군데군데 그런 곳이 생긴다. 또 논의 가장자리는 물이 잘빠지도록 배수로로 이용하는데 항상 질퍽하다. 이런 곳에 미꾸라지가 살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벼 베기가 끝나고 한가한 날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장화를 신고 미꾸라지 잡이 하러 들판으로 나선다. 양손에는 물을 퍼내고 미꾸라지를 넣을 양동이와 흙을 퍼낼 호미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논바닥 흙을 파내기 시작하면 미꾸라지들이 여기저기 흙속으로 쏙 들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퍼낸 흙들을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헤집어 보면 미끈한 미꾸라지가 손 안에서 굼뜰 거린다. 얼른 미꾸라지를 흙에서 빼내 양동이에 담는다. 힘센 미꾸라지들은 용케도 손에서 빠져나와 다시 흙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아이들의 옷은 이미 더럽혀진 지 오래고, 얼굴도 모두 찰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미꾸라지 잡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가족과 함께 먹을 추어탕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 논에서 잡던 미꾸라지를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재판하는 동안 상대방이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 진실을 밝히기가 어려웠다. 변호사 업무는 어떻게 보면 사건에서 진실을 찾고 그 진실을 해당 법에 알맞게 적용하는 과정이다.
형사 사건에서는 절도, 강도처럼 범죄 혐의의 진실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보통 민사 사건에서는 사실 자체가 문제 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그런 진실을 대상으로 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즉 법이론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도 그 부분이 더 재미있다. 법이론 문제가 전문가로서 연구할 가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배당 이의” 사건을 수임하게 되었다. “배당”이란 쉽게 말해 채무자의 재산을 경매에 붙여 들어온 돈을 채권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가짜 채권자들이 나타나 배당금을 분배받으려고 한다. 그런 경우에 정당한 채권자는 가짜 채권자를 찾아내어 배당금을 받아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당한 채권자가 배당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입기 때문이다. 채권자가 제기하는 이런 소송을‘배당 이의’ 소송이라고 한다.
고객은 금융기관이었다.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 주고 채무자 소유의 아파트를 담보로 잡았다. 근저당권을 설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았다. 결국 금융기관인 고객이 채무자의 아파트를 경매에 붙였다.
당연히 근저당이 최우선 순위인 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그 아파트에 최우선 변제를 받는 임차인이 등장한 것이다.
임차인은 자기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해 근저당보다 최우선 순위를 보장받는 소액 임차인이라며, 배당금을 자기가 먼저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새롭게 등장한 소액 임차인 때문에 고객은 갑자기 배당금이 모자라 손해를 보게 될 상황에 빠졌다.
원고가 된 고객은 채무자와 임차인을 의심하였다. 채무자가 허위로 임대차 계약을 만들어 가짜 소액 임차인을 내세운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배당 사건에서 채무자가 이런 가짜 채권자를 내세우는 일이 종종 있다. 임차인이 가짜라는 것을 어떻게 밝혀낼까?
조금은 황당하고 망막한 사건이었다. 상대방은 임대차 계약서와 보증금 영수증, 주민등록 전입신고 자료 등 관련 서류를 모두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원래 자기가 살던 곳이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 소개로 부동산 중개사 없이 직거래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소송을 진행하는 시기는 경매 당시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 증거 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의 아파트 출입구 CCTV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보존기간이 경과하여 지워진지 이미 오래였다. 유리하게 증언해 줄 증인을 찾기도 어려웠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상대방은 자신이 소액 임차인으로 실제 거주하였다며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변호사 없이 본인이 직접 재판정에 나와 변론을 하였다. 중간에서 재판을 하는 판사도 직접 임대차 현장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고 쪽에서 특별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이상 판사는 원고 패소 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은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빠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떻게 미꾸라지 같은 상대방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런데 임차인이 관리비를 어떻게 납부했는지가 궁금했다. 임차인이 아파트에 직접 납부하는 관리비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가스회사와 전기회사에 납부하는 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고민 끝에 가스회사와 전기회사에서 자료를 입수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에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하여 가스회사와 전기회사에 가스와 전기의 사용내역과 납부 영수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상대방이 경매 전에 그 아파트에서 실제 거주하였다면 가스와 전기를 사용하였을 것이었다. 특히 임대차 계약기간은 추운 겨울철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계절 특성상 겨울에 전기와 가스 사용 없이 겨울을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개월 정도 지나 전기와 가스 사용 내역서와 납부 내역서가 법원에 도착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약 4개월의 겨울철 동안에 전기, 가스 사용 내역과 요금납부 내역이 거의 제로였다.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재판장은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상대방은 1심 판결에 더 이상 불복하지 않아 소송이 1심으로 간단히 종결되었다. 결국 이리저리 빠지는 미꾸라지를 잡고 진실을 찾는 데 성공했다.
사실 내가 변호사 업무를 하며 밝힌 진실들은 대부분 단순한 것들이다. 원고, 피고의 이익을 좌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내가 변호사 업무를 하며 밝힌 진실들은 대부분 단순한 것들이다. 원고, 피고의 이익을 좌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실은 보석과 같다.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진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보존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진실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삶과 죽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독도 문제도 그렇고, 어린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의 진실도 그렇다. 또한 진실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들어 있다. 그 진실을 캐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동네를 산책하며 마주치는 한 외국인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대형견 2마리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곤 했다. 그의 머리는 희끗했고 백색 피부를 가졌다. 나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곤 해서 그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알고 보니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그가 한국에 온 지는 오래되었는데 초기부터 그가 한국에서 했던 일이 특이했다.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의 유적지를 방문하여 과거의 흔적을 정밀 조사하고 기념관을 세우는 일을 했다. 네덜란드 사람인 하멜과 그 일행이 최초 표류했던 제주도는 물론이고, 그가 거주했던 전남 강진, 여수, 전북 남원 등 여러 현장을 가족과 함께 방문하며 수년 동안 정밀 탐사를 했다.
하멜 표류기는 역사 시간에 들어만 보았지 직접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를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그의 연구 사이트에 소개된 표류기의 일부분을 대강 읽어 보았다. 1653년에 발생한 표류 사건과 당시의 시대상을 읽는 재미도 있었지만, 특히 변호사로서 깜짝 놀란 부분이 있었다.
하멜 일행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탈출한 후 일본 나가사키 관헌의 신문을 받는 장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신문을 받는 것과 비슷한데, 그 피의자 신문조서의 내용이 너무 놀라웠다.
조선의 무장 정도는 어떤가, 성이나 요새는 갖추었는가, 전쟁에 대비한 진지는 어느 정도 갖추었는가, 벼나 다른 작물이 많이 재배되고 있는가, 말이나 소가 많이 있나, 조선에 은광이나 다른 광산은 많은가, 인삼은 어디에서 생산되고 어디에 사용되며, 어디로 수출되는가, 전라도는 얼마나 크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신문 내용을 읽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일본은 한순간도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구나! 농작물과 광산, 전라도에 대한 신문 내용을 보면서 1900년대 초반의 일제의 수탈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기저에 내재된 침략 의식의 발로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네덜란드 사람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의 진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서 그가 참 고마웠다. 1653년에 일어난 사건을 현재 시점에서 그렇게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조사하는 그의 태도는 역사적 진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거창하게 역사까지는 아니라도 나 자신의 진실은 어떤가? 만약 진실의 심판대가 있다면 그 앞에서 내 모습은 어떨까? 이생의 재판정처럼 미꾸라지 같이 요리조리 진실을 피하며 빠져나갈 수 있을까? 민사 사건에서 진실을 숨기려고 무진 애썼던 그 임차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은 아닌가? 세상의 법으로는 걸러지지 않은 수많은 허물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을 지나갈 것이다.
요즘은 SNS가 발달하여 수십 년이 지난 과거의 죄와 허물들이 SNS를 통해 손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퍼진다. 그 심판대가 마치 이생 에로 벌써 내려온 느낌이다. 과연 그 심판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