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영변호사 Aug 15. 2021

불안이 다가올 때 ➀

한여름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 산에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모처럼 날씨가 선선하다. 뒷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니 가슴이 뻥 뚫린 듯하다. 묵묵히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 계곡 건너편에 우람하게 박혀 있는 바위 덩어리들이 시원스럽다.


 저 멀리 거칠 것 없이 펼쳐진 산의 능선들이 답답한 내 가슴을 풀어헤치며 끌어당긴다. 북쪽으로 북한산이 보이고 그 앞 중간에 남산이 귀엽게 걸려 있다.


오른쪽에는 잠실 롯데타워 빌딩이 사이다 병을 세워 놓은 것처럼 자그맣게 서 있다. 잠시나마 삶의 걱정과 염려들이 자연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 듯 내 가슴에서 희미해진 느낌이다.


“ 불안의 항변권이 뭐예요?


“ 고객님, 무슨 일이에요?”


“ 원고가 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어요. 소장을 읽어 보았어요. 그런데 소장에 원고가 저를 상대로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에요. 원고의 불안의 항변권 때문에  오히려 제가 너무 불안합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겠어요. 항변권은 또 무슨 의미인지...”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한 상대방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객이 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나에게 물었다. 고객은 소송에서 피고였다.


소송에서는 각자가 자기의 주장을 하고 입증을 한다. 소송에서 원고의 주장에 대해 원고를 패소시킬 수 있는 피고의 주장을 '항변'이라고 한다.  '항변'은 피고가 주장하고 입증할 책임이 있다. 피고의 항변에 대해 원고가 다시 재항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소송에서는 주장(원고)--> 항변(피고)--> 재항변(원고)--> 재재 항변(피고) 등과 같이 원고, 피고가 단계적, 순차적 구조로 서로 공방을 하며 최종적으로 승패의 결론에 도달한다.


“ 제가 땅을 원고에게 팔았는데, 원고가 매매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을 몰취해 버렸지요. 금액이 수억 원이에요. 그러자 매수인이 원고가 되어 저를 상대로 계약금을 다시 자기에게 돌려 달라고 소송을 걸었어요.”


“ 사실은 제가 그 땅을 원고에게 매도한 후 제가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렸습니다. 그런 후 돈을 갚지 않아서 제 땅이 가압류가 되었습니다.”


“ 나중에 가압류의 존재를 알게 된 원고가 그 가압류 때문에 우리 땅을 사는 것이 불안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고가 불안의 항변을 하여 매매대금을 제 날짜에 저에게 지불할 수 없었다고 항변을 한 것이랍니다. 만약 원고 말이 맞는다면 제가 매매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을 몰취 한 것이 잘못인가요? 사실은 저도 이 계약이 파기되어 이미 엄청난 손해를 보았어요.”


이 사건에서는 매수인이 원고가 되어 계약금을 반환 청구하는 것이 최초의 주장이고(원고의 주장), 매매계약을 해약했다는 고객의 주장이 항변이다(항변).

이에 대해 원고가 다시 불안의 항변권을 주장한 것은 실질적으로는‘재항변’에 속한다.


민법 536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는 불안의 항변권은 이렇게 되어 있다.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먼저 이행하여야 할 경우에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자기의 채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좀 더 단순하게 이 사건의 구조를 보자.


(원고의 주장—원고에 의한 해약)


“제가 매매 계약금을 피고에게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피고가 소유권 이전등기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매매계약을 해약하고 계약금을 반환 청구하는 것입니다.”


(피고의 항변— 피고에 의한 해약)


 “제가 계약금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계약금은 3차로 나누어 지불하도록 되어 있는데, 원고가 2차 계약금부터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매매계약을 해약하고 계약금을 몰취 하였습니다.”


(원고의 재항변—불안의 재항변)


 “피고가 매매계약을 해약한 것은 잘못입니다. 매매계약 후에 피고의 땅에 가압류가 되었습니다. 그 가압류 때문에 불안하여 제가 2차 계약금을 지급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불안의 항변권’이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의 매매계약 해약은 부당합니다.”


마치 정, 반, 합의 변증법적 구조로 되어 있는 소송의 모습이 마치 불안에 대항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듯하다.


삶을 살아가는 개별체인 인간은 원고이고, 삶에 끊임없이 의심과 회의를 가져다주는 불안과 절망은 인간에 대항하는 피고의 항변이다. 특이하게도 삶에서의 피고는 그가 누구인지 그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삶의 피고가 주장하는 불안의 항변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삶에는 불안이라는 존재가 항상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어느 세대이건 불안은 제 각기의 모양을 하며 찾아온다. 불안을 적어 보면 대충 이런 모습이 아닐까?


10대는 독립된 개체로 태어나기 위한 불안,


20대는 가정과 사회에 자신의 튼튼한 기반을 잡기 위한 불안,


30대는 자기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


40대는 경쟁에서 밀려나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50대는 인생 후반부로 들어가는 경계 지점에서 느끼는 불안,


60대는 축적해 놓은 건강과 재산의 상실에 대한 불안,


70대는 일상 사회활동에서 분리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80대는 죽음과 삶이 병존하는 불안,


90대는 삶의 종착역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불안.


50대까지는 내가 직접 경험한 불안이고, 그 이후는 경험한 적이 없어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예상되는 불안이다. 모두 상실의 불안이다.


내 고객도 소송에서 재산을 상실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가 걱정과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하며 법적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소송의 승패에 따라 갑자기 수 억 원의 재산을 잃을 수도 있는 고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걱정과 염려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불안은 물밀 듯이 우리에게 몰려온다. 마치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같고, 하얀 백사장에 부딪쳐 철썩철썩 부서지는 파도와 같다.


불안과 절망에 대한 전문가인 덴마크의 유명한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깊은 내면의 동요, 불화, 부조화, 불안 등을 느끼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불안, 감히 알고자 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어떤 것에 대한 불안, 생존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 등 이러한 불안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고객의 불안을 상담하고 있는 나 역시 나만의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50대 후반을 살면서 내가 과연 앞으로 건강한 삶이 유지될까?


노후에 필요한 재산이 충분히 축적될 수 있을까? 자녀들도 앞으로 건강하고 여유롭게 잘 살 수 있을까? 수많은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와 같은 불안의 근원은 무엇일까? 불안은 인간이 시간의 한계라는 유한성 속에서 살기 때문에 오는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인간이 무한하거나 영원할 수 있다면 경쟁에서 밀려나는 불안이나 건강과 재산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불안은 영원한 삶 속에서는 무의미하다.


도중에 경쟁에서 밀려나든 건강과 재산을 상실하든 그래도 영원한 삶이 보장된다면 도대체 뭐가 불안하겠는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성이 불안의 근원일 것이다.


유한성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내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불안을 가져온다. 이처럼 불안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삶을 공격하는 항변으로 계속하여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가 집을 팔아버렸어요! (치매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