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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Feb 07. 2023

결국 돋보기안경 쓰고 눈썹 그린 썰.


결혼식 다음날 아침에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랬던 남편은 지금도 그 순간에 대해 말하곤 한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너 눈썹이 사라졌어."


내 눈썹은 시작점에서부터 3분의 2 지점에 다다르면 끊긴다.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간 눈썹이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거기서 딱 멈쳤다. 양쪽 다 어쩜 그리 똑같은지... 숱도 별로 없다. 빈약하기 짝이 없다. 준 모나리자 눈썹이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은 좀 더 세심하게 빈 곳을 채워 넣으며 눈썹을 그리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 불빛은 나치게 환했고, 거울은 심하게 깨끗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뒷걸음질쳤다. 눈썹에 까만 테이프를 야무지게 붙인 것처럼 보였다. 두툼하게 일직선으로 그려진 까만 눈썹과 작은 눈 그리고 하얀 마스크가 몹시 어색하게 서로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외출에 들떴었 보다. 얼굴을 거울에 바싹 붙이고, 신경쓰면서 눈썹을 그렸다. 가까운 게 더 희미하게 보이는 노안을 고려했어야 했다. 흐려 보이는 눈썹에 계속 덧칠을 했고, 약간의 거리가 있던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당황했다.


아무리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부르짖고 다녀도 이 눈썹으로 외출할 수는 없었다. 누가 볼세라 집으로 얼른 들어왔다. 눈썹을 깨끗이 지우고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눈썹이 겁나게 안 그려지는 날.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마음은 바쁘고 눈썹은 자꾸 삑사리가 나고... 노안 안경이 퍼뜩 떠올랐다. 일단 대강 형태만 리고, 안경을 썼다. 펜슬을 길게 잡고 빈 공간을 사각사각 채웠다. 노안 안경 눈썹 그릴 때도 요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이 들면서 이런 '아뿔싸 순간'이 더러 생긴다.

지난여름, 외출에서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에어컨 쾌속 냉장으로 틀어주삼."

순간 남편과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딱히 이유를 몰랐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차, 냉장 아니고 냉동으로 틀어줘. 크킄"


또다시 흐른 잠시의 고요.


"...... 아... 냉방!"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뭔가 서글플 것 같아서일까. 남편과 나는 다소 과장웃음소리를 내면서 께름칙함과 찜찜함을 눌러버렸다. "큭큭큭. 그럴 수 있지 뭐. 일시적으로 오류가 난 거야." 라면서. 나만 그랬다면 '혹시' 하는 마음에 걱정이 컸겠지만 남편도 같이 어정쩡했다는 게 묘하게 위로가 됐다. 

"뇌건강에 두부가 좋다는데."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남편이 소리쳤다. 냉장고에 있던 두부를 잔뜩 넣은 두부전골을 만들었다.




노안으로 인해 새까맣게 그려진 눈썹, 뇌에서 잠시 일어난 '냉방' 단어 실종 사건 그리고 중력을 결코 거스르지 않고 아래로만 쳐지는 피부... 나이 들면서 생기는 새로운 변화들이 낯설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알지만 마냥 쿨하게 반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놓고 심통도 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 앞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질녁 어스름 속에서, 멀리서 다가오는 형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나타내는 말이다. 나이듦이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가 아니라 다정한 개임을 지하고 받아들여야겠다.


아무튼 오늘 저녁 메뉴도 두부전골이다.

어쩌고저쩌고 해도 나이 들면서 오는 현상들을 지연시키고 싶은, 초조함이 담긴 두부전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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