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빵의 언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덕 Jan 19. 2022

밀당의 고수, 소금 사블레


단맛과 짠맛이 스릴있게 밀당을 한다.

입에 쏙 넣자마자 달달함을 느낄 수 있다. 소금 사블레 겉면에 모래알처럼 붙어있는 설탕의 달콤함이다. 바사삭 깨물면 이 단맛을 밀어내고 짠맛이 확 다가온다. 반죽에 첨가된 소금의 짠맛이다. 단짠 콜라보다.


사블레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쿠키다. 프랑스어로 '모래'를 뜻다. 손안에 뭉쳐진 모래가 손을 펴면 사르르 빠져나가듯이 사블레는 입안에서 바사삭 무너지면서 퍼진다. 수분을 담당하는 계란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퍽퍽할 수 있는 식감을 버터의 부드러움이 감싸서 바삭한 쿠키가 된다. 블레의 매력이다.


우리 집 레시피의 사블레에는 버터, 슈가파우더, 밀가루에 한 꼬집 소금이 꼭 추가된다. 막대 모양으로 만든 반죽에 설탕을 묻히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구워낸다. 단맛과 짠맛 밀당으로  맛있는 사블레가 된다.


가족관계에서도 잔잔한 밀당은 필요하다.


온전한 전업주부가 된 후에는 매일 출근하는 남편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전업주부의 하루 총 가사 노동시간을 월급으로 환산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외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건 아니다. 그래서 경제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는 세상에서 경제활동이 없다 보니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래서였을까? 난 식구들의 리모컨 역할을 자처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가져다주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하면 찾아주었다. 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점점 비굴모드로 가고 있었다. 수평이 아닌 뭔가 께름칙한 수직관계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남편과 아이에 맞춰서 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의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그렇게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전업주부 가치를 폄하하지 마."


그날부터 밀당이라는 것을 해봤다. 늘 들어주던 구들의 요구를 반은 받아주고 반은 시크하게 거절했다. 내가 자처했던 구들의 손발 노릇은 헌신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자격지심에서 나온 찌질함이었다. 전업주부는 '집에서 놀고먹는 사람'이라는, 주부의 가사 노동 가치를 나의 잘못된 행동이었다.


바로 들어줄 수 있는 편과 아이부탁도 해줄 듯 말 듯하면서, 약간의 뜸을 들이다가 해주었다. 식구들이 집에 없는 시간에 종종거리면서 하던 집안일을 나의 일정과 컨디션에 맞춰 여유 있게 했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되도록  팍팍 나게! 그리고 나의 생각을 바꿨다. 전업주부는 무직이 아니라 한 가정의 CEO라고. 우리 집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면서 가족관계에서 균형을 맞춰갔다.



식구들과 적절한 밀당을 하면서 전업주부 자존감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에 빠져있을  남편한테서 문자가 왔다. 단 한 문장이 친구들의 손발을 오그라들 못해 없어지게 만들었다.


"너의 매력은 너무 치명적이야!!!!"



오늘 만든 소금 사블레는 어느 때보다 치명적인 맛이다. 참으로 발칙한 단맛과 짠맛의 밀당이다. 바사삭 한입 깨물면서 남편 톡에 터졌던 그때가 생각났다. 헌신짝이 될 뻔했다가  새신짝이 되었던 추억이다.

적당한 밀당은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