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감을 넣다가 세탁기 문에 머리를 박았다. 제법 아프다. "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한 식구들은 "아, 왜 또오오. 이번엔 어디에 박은겨?" 라며 소리쳤다. 반응조차 없을 때도 있다. 예전에는 달려와서 나의 상태를 확인할 정도로 다정했던 식구들이었다. 나는 뭔가에 잘 부딪힌다. 벽, 의자, 식탁 모서리, 주방 그릇장 모서리, 문고리 등 다양하다. 주의를 기울이지만 일상생활에서 계속 긴장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내 몸에는 멍이 많다.
시댁에서 있었던 일이다. 과일을 가지러 베란다로 직진했다. 유리문에 머리를 박고 뒤로 넘어졌다. "쾅." 소리가 솔찬히 크게 났다. 아픈 것보다도 창피함과 뻘쭘함이 더 컸다. 어머님이 유리창을 너무 깨끗하게 닦으신 탓이라고 괜스레 억지를 부렸다. 베란다와 거실 사이에 있는 유리문이 열려 있는 줄 알았었다. 그날 머리에 작은 혹이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잘 넘어진다.
결혼 전 남편과 길을 걷고 있었다. 명동 한복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 말에 의하면 고개를 돌렸는데 옆에 있어야 할 내가 사라졌단다. 두리번거리다가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단다. 넘어져서 큰 대자로 뻗어있던 나에게도 남편의 당황함과 걱정이 전달됐을 정도였다.
배우 브룩 쉴즈는 한 인터뷰에서 다리가 길어서 자주 넘어진다고 했다. 그녀의 키는 183cm다. 왠지 신선하고 상큼할 것만 같은 윗동네 공기가 몹시 부러울 만큼 나는 키가 작다. 짧은 다리로도 심심찮게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통해서 밝혀진 것 같다.
독일 살 때 일이었다. 그날은 사람들이 많은 전철역 앞에서 다리가 꼬였다. 머릿속에서 '안돼.'를 외쳤다.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넘어졌다. 아프기도 했지만 너무 창피해서 잠시 그대로 있었다. 조그마한 동양 여자가 일어나질 않아서였을까? 난리가 났다. 구급차를 부를 분위기였다. 퍽 난감했다. 아파서 죽겠다는 듯한 표정과 몸짓을 하면서 일어났다. 손바닥은 다 까졌고 피가 났다. 청바지가 찢어질 정도였으니 무릎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을 학교 선생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들고 있던 생수로 내 상처를 씻어주었다. 새것이니까 염려 말라는 말과 함께. 옆에 있던 누군가는 가방에서 밴드를 꺼내서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급하게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늘 그렇듯이 고마움과 쪽팔림이 공존했다.
아무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이기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는다. 부딪혀서 생긴 멍은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면서 없어진다. 길거리에서 넘어지면 누군가의 도움도 살짝 받아본다.
내가 하도 부딪히고 넘어지니 옆에서 남편이 그런다. 머리를 너무 비우지 말고 생각과 예측을 하면서 움직이라고. 남편이 잘 못 알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 부딪히고 넘어지는 게 아니다. 걸으면서 혹은 움직이는 순간순간에도 뭔가를 깊이 사유하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빡빡 우기고 싶다.
아들도 한마디 한다.
"어머님. 이제는 넘어지시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는 나이십니다. 또한 부러진 뼈가 잘 붙지도 않으실 나이십니다. 제발 조심하시길 소자는 바라옵니다"
이건...
뼈 때리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