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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May 11. 2022

나의 불안 연대기

이제는 좀 괜찮아졌으니 하는 이야기

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지배해왔던 감정 중 가장 싫고 큰 부분을 차지했던 불안.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감정이 불안이라고 한다.

불안을 안 느끼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그것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살아온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자라오면서 환경적으로 체득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36년을 살아오면서 큼지막한 몇몇 이벤트들과 부모님 둘 사이의 불화가 환경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내 불안의 방아쇠가 된 것 같음을 느낀다.

부모님의 불화,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홧병 등 가족 이야기를 하면 이 글 보다 더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지만 이것들 또한 내가 불안을 가지고 살게 된 큰 요소 중 하나이다.

나는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을 극도로 불안해 했다. 유치원때 재롱잔치 무대를 올라가기 전에 무대가 무서워서 울었던 기억도 나고 실제로 재롱잔치가 녹화된 비디오(지금은 사라진)를 봤을 때 옆에 친구랑 대조되는 아주 겁에 질린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이것이 무대공포증?의 시작이었을까.

이런 아이에게는 새학기가 아주 고역이다. 누가 다가와주기 전에 먼저 말거는것도 잘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쉽게 사귀기가 남들보다 힘들다. 그래도 초등학생, 중학생때까지는 몇몇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학창시절 내가 가장 많이 불안을 느꼈던 때는 '발표'였다.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선생님이 번호 순으로 시키는게 아닌 랜덤으로 번호를 불러 책을 읽게 하는 시간에는 심장이 거의 터질듯 뛰었던 것 같다. 이게 지금 생각해보면 공황장애와 비슷한 것 같은데, 책을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목소리가 떨리거나 기어들어가는 상황이 올까봐 중반부 부터 불안의 기운이 엄습해 왔던걸 보면. 중간에 끊거나 내가 싫다고 안할 수 없는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고등학생때는 분리불안도 생겨서 엄마가 지방에 내려가 몇일 간 있다가 올라오면 그 기간 내내 불안을 느꼈다. 엄마한테 불안하다고 했지만, 이해를 잘 하지 못했던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한데 어찌 생각하면 불안을 직접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다 큰 학생이 뭐가 불안하다고 왜 불안하냐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장시간의 비행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다. 첫 해외여행지였던 태국을 갈 때도 몇 시간 동안의 비행기를 타는걸 겁냈던 것 같고, 20대 초반에 동유럽 여행을 가기 전에는 비행공포증 전문 병원에 가서 비상약을 타며 의사에게 훈련도 받았었다. 

보통의 비행공포증이라고 하면 비행기가 추락할까봐, 흔들림에 불안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일텐데, 나의 경우는 어찌보면 폐쇄공포증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장시간동안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이 불안의 끝판왕을 경험한 건 4년 전 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돌이켜보면 이직 후 회사 스트레스와 연애에 대한 고민으로 나는 이미 불안을 안고 살고 있었는데 그게 비행기 안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이때는 정말 비행기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 가기 전에도 내가 잘 탈 수 있을까 몇 번을 고민하고 불안했는데 역시나 비행기를 타자 마자 엄청난 불안과 공포가 몰려왔다. 비상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 불안.

그 상태로 12시간을 비행기안에서 보냈으니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제정신이 아니었고 여행하는 내내 말로 설명못할 불안을 느꼈다. 음식을 먹는데도 맛이 느껴지지 않고 입맛도 다 사라진 상태였다. 여행을 가면 분명 좋고 돌아오기 싫어야 하는데 불안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먹어도 1분 1초가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끔찍한 10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비행기 안에서의 강력한 한방 때문인지 불안은 내 일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나를 더 괴롭혔다. 

잠을 못자는 건 기본이고 일상생활과 회사생활도 꾸역꾸역 했지만 불안한 감정이 없어지지 않았다. 뇌가 고장난 느낌이었다. 내 의지대로 생각 컨트롤이 안되고 불안은 강박사고로 까지 이어졌다. 24시간 내내 불안속에 사는 느낌. 이건 의사에게도 남자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설명해도 어떤 느낌일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외로운 싸움이었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책도 찾아 읽고 불안 일지도 쓰고 운동도 했지만 불안은 꿈쩍하지 않았다. 퇴근 후, 주말엔 내내 누워있었고 남편은 그렇게 누워있는 모습이 이해가 잘 안됐었던 것 같다. 내가 공감받을 수 있는 건 카페나 블로그, 유튜브에서 불안이나 공황 키워드를 찾아 그걸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글이나 영상이었다.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나보다 더 한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며 위안받고 위로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 후 결혼준비를 하며,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갔다오고 신혼집에 살 때에도 계속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고 나는 계속 버텼다. 제일 절망스러웠던 것은 불안이 약과 나의 노력으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 불안이 도대체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것. 나중엔 우울감도 찾아와 남편과 밖에서 밥먹다가도 울고, 버스를 탔을때도 울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나를 치유 해 준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다보니 아주 아주 조금씩 괜찮아졌다. 물론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의 안정감, 이사를 하고 집을 꾸미며 이제는 어린시절 그렇게도 많이 다녔던 이사를 안해도 된다는 안정감이 도움이 된 걸수도 있지만. 그렇게 노력을 했을 때도 없어지지 않던 불안이 스멀스멀 없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불안했고 꿈을 꿀 때도 불안했다면, 그 불안을 느끼는 시간이 하루 중 반나절로, 하루에 몇 번 정도로 아주 서서히 바뀌어 갔다. 그리고 지금은 약을 먹지 않아도 일상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내 평생 가장 강력하고 길었던 불안을 겪으며 차라리 신체적인 고통이 정신적인 고통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그렇기에 공황장애나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떠한 마음일 지 공감이 간다.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나도 모르게 찾아왔다가 나도 모르게 사라진다.
지금 불안을 느끼지 않고 괜찮다고 해도 이 감정이 지속되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언제 또 불안이 찾아와도 잘 놀다 갈 수 있도록 마음의 근육을 키워놔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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