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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hee Sep 11. 2023

커피를 마시며




커피를 배워볼까 해.


그는 실용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커피를 배운다고 해서 흔히 생각되는 무모한 시도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한 블럭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카페가 흔한 시대이다)


그러던지.


당연한 믿음에서 나온 나의 무심한 대답이었다.

어떠한 염려도 기대도 없던 어느 날부터 인가, 그 답지 않게 뭔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소소하고도 거창한, 크고 작은 물건들이 하나 둘 더해지더니, 급기야 어느새 집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로스팅 기계. 낯설은 이름의 커피생두들이 속속 도착했고 그제서야 드는 생각,


설마 일이 커져버린 건 아니겠지.



다행히 거기까지였다.

주말이면 그의 세심한 손길에다 로스팅을 거듭하며 익혀진 노하우까지 더해져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우스 브랜드 커피가 생산된다. 우리집 최고의 일주일 양식이다.

비록 커피콩을 볶는 냄새와 연기로 온 집안이 자욱하긴 하지만(커피콩을 볶는 향은 커피향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시 그의 시도는 실용적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외래어 품종들에 대한 많고 많은 설명을 들으며, 서너 잔의 커피의 맛과 향을 애써 구분해 내는 기대에 부응하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양질의 다양한 커피를 맛보는 사치를 이리 쉽게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전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커피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또 다른 변화이다. 애완식물로 들인 커피나무가 그렇다.




오랜만에 찾은 동네 카페에서 익숙한 나무가 눈에 띄였다.

로부스타 커피나무이다.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의 생육환경은 차이가 있다. 아라비카종은 실내 환경에서 함께 하기에 쉽지 않았다. 애지중지 보살폈건만 끝내 자리잡지 못했다.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이 크고 생장환경이 바뀌어도 잘 적응한다는 로부스타가 집 거실 한쪽을 짙푸르게 채워주고 있는 이유이다.

무난할 것 같은 로부스타도 수분에 대해서만은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물을 주어야하는 시간이 한 두시간만 어긋나도 잎을 축 늘어뜨려서 실력 없는 가드너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서둘러서 흠뻑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반응하고 반짝반짝한 잎에 힘을 주어서 만년초보 가드너가 게을러지지 않도록 조련한다.


어쩌면 이것도 무엇하나 그냥 흘려 버리지 않는 남편의 빅픽쳐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좀 약오르기는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커피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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