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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뭇펭귄 Oct 01. 2021

타가격리에서 자가격리로.

[영화리뷰]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 1976)


 나는 열려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쉽게 말하면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영화를 말한다. 나는 의미하는 바가 명확해서 감독의 사상이 내 두뇌에 때려박히는 직설적인 내러티브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고민하게 만들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깊이 생각에 잠겨 끝끝내 영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게끔 만드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이 영화도 그렇다. 이 영화는 시청자로 하여금 상당히 머리를 굴리게 만든다. 줄거리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데도 이 영화는 꽤나 난해하게 느껴진다. 왜 일까? 이는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의 기묘하고 비상식적인 행동 양상에 기인한다. 그는 복잡하고 뒤틀린 심리를 가진 인물로, 그의 심리는 영화 초반부에는 은닉되어 있다가 점차 행동으로 드러나며 여러 혼란을 야기한다. 영화는 트래비스 비클의 심리 변화에 발 맞추어 진행된다. 따라서 영화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트래비스라는 인물에 대해 해부하고, 심층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주인공 트래비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 대강의 프로필이 소개될 뿐, 영화는 그의 과거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먼저, 트래비스는 베트남 참전용사다. 또한 그는 이 사실에 대해 꽤 큰 자부심을 가진 듯 보이는데, 자신의 명예 전역을 자랑스러워하고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그는 유독 동성애자, 창부, 포주 등에 대해 큰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군대 특유의 이분법적이고 단순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까? 다원적인 가치들이 혼재해 있는 뉴욕의 거리는 그의 눈에 타개해야할 악, '쓰레기들'로만 느껴진다. 그는 군인적, 마초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뉴욕의 상반되는 가치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배회하는 인물이다. 



 그의 사회적 비주류성은 야간택시 기사라는 그의 직업에서도 드러난다.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불면증을 가진 그는 밤에 일하고 낮에 쉰다. 또한 밤에는 본인이 그토록 혐오하는 동성애자, 창부, 약쟁이들을 으슥한 곳으로 실어나른다. '쓰레기들'을 실어나르며 돈을 버는 자기 자신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기혐오감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비관론에만 휩싸여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는 대통령 후보인 팔렌타인 캠프에서 일하는 '베시'에게 박력있게 다가가며 관계를 시작해 나간다. 그러나 그녀와의 영화관 데이트에서 포르노물을 권하며 관계는 어이없게도 파탄이 나고 만다. 그는 이성과의 데이트에서 난잡한 포르노물을 권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만큼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후 베시에게 선물과 꽃을 보내는 등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만 베시의 마음은 냉담하게 식어버렸고, 이에 분노한 트래비스는 그녀의 일터에 찾아가 악담을 쏟아 붇는다. 



 그는 한편으로는 꽤 괜찮은 일을 기획한다. 바로 우연히 마주친 12살 창부 '아이리스'를 무뢰한들로부터 구출해 내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아이리스를 케어하고 부모님 댁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돕지만, 아이리스는 현재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며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여성 해방 운동'과 같은 맥락이라는 헛소리를 늘어 놓는다. 결국 부드러운 방식으로, 대화와 관계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개혁하려는 트래비스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결국 분노한 그는 광기에 휩싸여 세상을 향해 총구를 겨냥한다. 대통령 후보 팔렌타인의 암살을 시도하고 아이리스를 등쳐먹는 무뢰한들을 몰살시키는 등 영화 후반부 그의 광기는 절정에 이른다.



 재미있는 점은 그의 표출된 광기가 자기파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12살 아이를 구출해냈다는 명분으로 그는 영웅으로 추대받고, 택시기사의 삶으로 돌아와 이전의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영화는 그가 여전히 사회에서 소외된 주변인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베시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음습한 뉴욕의 밤거리 속으로 사라지는 트래비스의 고독한 시선을 클로즈업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왜 트래비스는 마지막 장면에서 베시를 거부했을까? 이는 사회로부터 배척당했던 과거와 달리,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유리시키려는 완전하고 적극적인 고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사회로부터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끝내 안전한 쇠창살 속으로 자기 자신을 격리시켜 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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