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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인 Oct 29. 2020

굿마케터는 굿라이터!?

마케팅 글쓰기에서 만난 3가지 변화

 모든 굿라이터가 마케터는 아닌 세상이지만, 
굿마케터들은 글도 잘 쓸 확률이 높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를 보다 보면 본인을 마케터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유독 영감(insight) 찾기에 혈안이 된 마케터들은 각자 종사하는 산업의 특성과 세대별 특성과 트렌드 그리고 그 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덕력들을 업무에 한꺼번에 짬뽕시켜야 하는 일들이 많은지, 인스타그램에도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어쩌면 에디터의 능력을 조금은 갖추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맛집 평점도 잘 남기고 좋은 글로 남기고 싶어 하기를 한다. 이 사람들이 글을 잘 쓰게 된 것은 마케터라는 직업과 관계없는 우연일까? 알아보기 위해선 결국 몸소 부딪혀 보고 깨달아야 하는 경험주의인 나의 글쓰기에 돌입한 2개월에 대한 이야기다.



글쓰기는 마케팅의 시작


 조금 과장을 보태면, 글쓰기는 거의 모든 마케팅의 시작이라는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다. 가공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고객들에게 보이는 형태는 기사, 유튜브, 웹사이트 등 각양각색일 수 있으나 한 번쯤은 글이라는 단계를 거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케터는 매체를 잘 활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녹여내는 것과 뗄 수 없는 복잡한 직군이다. 인하우스는 마케팅 대행사에 아이디어를 턴키로 도맡고 스케줄링에 주력한다는 것은 오해이며 어느 산업, 위치의 마케팅 종사자라면 결국 매체와 아이디어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함양하고 가야 한다.


 아이디어는 보통 머릿속에서 나만의 언어로 저장되어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 '말(Speech)'이라는 형태로 사람들과 자주 나누게 된다. 해서 말은 아이디어가 형태를 갖추는 첫 번째가 되어주지만 휘발성이 높아 보관이 비효율적이어서 이를 정리해두기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글(text)이 이 문제를 해소해준다. 한 번 작성하는데 드는 용량도 적어 경제적이고, 메모는 쉽게 휘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튜브가 성행해도 글쓰기가 덩달아 주목받게 되었지 책과 글이 갖고 있는 불씨가 영상의 그늘에 가려 사라지지는 않는다. 선뜻 보아서는 영상매체가 상위 단계의 매체 같지만 결국 정해진 용량 안에 깊은 내용을 담는 데에는 텍스트를 따라올 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잘 쓰는 사람, 즉 굿라이터가 된다는 것은 종합적 기술이다. 그만큼 텍스트는 시작점을 의미하는 기본이자 가장 완성본인 도착점이라는 생각을 받았다. 


나를 테스트베드로 삼기


 나는 직접 경험해봐야 믿는 마케터라서, 단 한 줄이라도 매일 조금씩 기록하며 두 달간 나를 테스트베드 삼아보았다. 아직 내가 남들에게 공감받을 만한 마케팅 인사이트를 겸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다 보니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글쓰기의 세 단계 발달단계와 각 단계마다 갖고 있는 마케팅과의 관련성이다. 


 글쓰기가 쉽게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쓰고 보니 나 스스로도 이해 못하는 글을 적었을 거라고는 상상 못 했다. 제 딴에는, 매일 보는 다양한 영화, 책들에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었지만, 창작자가 되는 데 사용된 내 손은 입문자라는 불일치를 체감하는 순간 한동안 평온하고 객관적으로 마주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글 속에서 진주를 멈추지 않는 공장처럼 쭉쭉 뽑아내는 글만을 바로 쓸 수도 없으니 꽤 '존버'의 기간을 가질 마음 준비도 필요했다. 마치 팔뚝살이 빼고 싶은 나에게 트레이너 분들이 전신 운동과 하체 운동을 함께 시키는 이유와 비슷하다. 목표가 아무리 분명해도 과정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격변하지 않는가. 



첫 번째 단계

감상자로서의 자신을 다듬어 정리한다.


 첫 삽을 뜨기 위해 잘 써지는 노트와 펜은 준비했지만 처음에 쓸 말이 없는 게 문제였다. 그렇지만 디지털이라는 수억 가지의 소재들을 실은 손안에 쥐고 있다는 것을 금방 떠올렸다. 뉴스, 유튜브, 웹툰 등등... 그 속에서 우리는 모든 콘텐츠들의 감상자 입장에 서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초심자에게는 오래갈 수 있는 힘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생활 속의 아이템들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기에 스마트폰 안에서 '감상자'의 자세로 보내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말고 잠시나마 자발적으로 끊어내고 의식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첫 삽을 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휴대폰 메모장, 일기장, 녹음 등 다양한 형태들을 기회가 닿는 대로 오늘 본 영화의 평점, 처음 가 본 식당이나 카페의 후기 따위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기록의 형태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을 꾸준히 보내고 있느냐이며 또한 그 시간을 꽤 진중하게 보내고 있냐는 데에 집중하며 보냈다. 당연하고 막연히 "좋다"라고 느꼈던 감정에 대하여 한 발짝 뒤돌아서 조금 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과정은 내가 어떤 매체를 소비하고, 어떤 경향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추천 시스템 굴레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라, 소비하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 자체가 개인의 성향을 판단하는 장치가 되어버렸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마케터들에게는 '짚고 넘어가는 감상자'가 돼 보는 것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감상자는 소비자를 부분 집합으로 갖는 더 큰 범위의 집합으로, '소비자가 아닌 감상자'를 '소비자가 되는 감상자'로 끌어당기는 포인트를 짚어내는 기술이 마케터의 숙련도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평소에 사람들이 놓치고 가는 생각, 혹은 '좋았어요.' '별로였어요.' 등의 추상적인 단어로만 지나가는 감정을 선후관계, 트리거, 가치관 등을 분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감정은 직관적이지만 실은 선후관계에 있는 맥락까지 파고들면 꽤 이성적인 판단들이 개입된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 감상자의 입장에서 든 자연스러운 감정과 생각을 놓치고 가는 건 세상에 잘 정리된 통계자료나 뉴스레터 구독보다 손실이 큰 기회비용이다.



두 번째 단계

자신의 언어를 공통의 언어로 확장한다.


그다음은 이제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쓰기의 기술 단계이다. 처음 적어본 글은 나에게는 쉽지만 남들에게는 낯설거나, 문법에 적절하지 않거나, 포인트가 없거나 등으로 '공통의 문장'으로 확장되기 전일 수가 있다. 만약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는 것이 당신의 글쓰기의 목적이라면 무방하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읽는 당신은 고객 접점을 신경 쓰는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거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글쓰기에서도 마케팅의 핵심인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는 모습과 어떤 측면에서 상충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을까?"

"이 주제와 독자층을 고려했을 때 ~요/~다 중에 어떤 어미를 선택해야 할까?"

"게시글에 그림과 글의 비중은 어느 정도로 맞추는 것이 좋을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문단에 담고 있는 건 아닐까?"  

"궁극적으로 나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거지?" 

 

 여기서부터 기획이 개입되면서 글쓰기가 한층 다면적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 단계는 글쓰기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다양한 단서들을 조금씩 모아 왔다라면, 두 번째 단계부터는 이 글을 어떻게 버무릴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독자가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위에서 한 생각들은 마케터가 가져야 할 기획력과 정말 가까이 붙어있다고 느꼈다. 이 글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페인 포인트(Painpoint)를 어느 정도 가정하고 적기 시작하면 기술하는 단어마다 조금씩 힘이 들어가게 된다. 목적의식이 있는 글쓰기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달걀과 달 중 어느 것이 먼저이냐의 문제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풀어 적어 둔 초고들이 적다 보면 기획의도를 생각하는 시점에서 충돌하여 지운 글들이 꽤 되었다. 반대로, 기획단계부터 착착 순서대로 들어가자라고 마음을 먹으면 글의 소재라던지 한 방 재미있는 킥(kick)이 잘 발견되지 않고 글 속에 나만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계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두 번째 단계까지 거친 글들이 10개 이상이 쌓이면 글쓰기에 대한 흥미가 딱 반절로 떨어지는 시점이 내게는 왔다. 처음에는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면 이제는 글쓰기의 어려움과 생각보다 금세 소재가 고갈되는구나에서 심드렁해졌 던 것 같다. 

 이 문제를 극복해보려고 과정을 들여다보니, 지금까지는 내가 우선시되는 글을 써왔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서 뜬 새로운 콘텐츠를 보고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여행을 다녀왔을 때의 기분이라던지. 주어가 '나'인 것이 대다수였다. 혹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보를 정리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나는 아무리 되감아봐야 나 자신이어서 범위의 한계를 느껴 흥미가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마케팅을 잘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는 일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 필요하다. 트렌드라는 멋있는 말로 포장돼서 자주 우리 주위에서 들리지만, 그 단어보다는 관심이라는 따뜻한 단어로 접근하면 좋은 글쓰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재미있었 던 점은, 타인과 세상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객관성에 조금 엄격해진다. 단순히 자기 전에 적던 일기와 리뷰처럼 감성에 흘러서 글을 쓰지 않는다. 보통 팩트체크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마케팅에서도 사전 리서치 단계, 그리고 프로젝트 리뷰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데이터를 활용하게 된다. 물론 가정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직군, 그러니까 어느 정도 것 필링(gut-feeling)과 담당자의 직감이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팀이나 동료들과 소통할 때 팩트를 녹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한쪽에만 치우친 확증편향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기한 마케팅일 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다 보니, 글쓰기의 힘과 영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곱절은 막강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쓸 말이 많은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세상과 변화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는데 그 모습이 딱 마케터라는 옷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그랬다. 단순히 핫플과 유행을 먼저 따라가는 사람들로 인식되기보다는 세상에 따뜻하고 재미있는 변화를 줄 수 있는 매력을 가진 게 마케터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 글을 적은 2달 동안 독서도 틈틈이 하며 다양한 책과 작가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 책은 내 생각이라기보다는 좋은 작가들이 주는 메시지 중에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들을 하나로 묶은 것일 수도 있겠다. 만약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들을 추천한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 - 김성우, 엄기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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