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포분자>
좋아하지만 어려운 영화에 대해 글을 잘 쓸 재주가 없어서 번역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정수라고 불리는 작품인 <공포분자>의 대만 국내 재개봉 당시의 평론 한 부를 번역하여 가져왔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평론 중 장면을 언급한 부분은 본문에는 없는 사진을 추가했고 <공포분자>는 중국어로 직역하자면 '테러리스트'라는 뜻이다. 이 영화를 이미 본 분들에게 추천한다.
결론은 깔끔한 번역은...역시 어렵구나!
你連真的假的你都不分了嗎?
당신은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 해?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 에드워드 양 (양더창) 감독의 최근 재개봉된 대표적인 영화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그보다 몇 년 앞선 영화 <공포분자>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이미 만들어진 지 30년도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 감상하여도 전혀 손색없는 세련된 연출과 공간에 대한 에드워드 양의 해석은 연구 가치가 있다. 특히 <공포분자> 안에서 등장하는 특정 음악과 장면 연출들은 현재의 대만의 영화학도들이 필수로 거치는 분석 작품으로도 여겨진다.
그렇지만 <공포분자> 관련 해석들이 대다수 진실과 허구를 가려내는 부분에만 집중한 내용적 단계에 치우쳤고 한 층 깊은 단계라 볼 수 있는 영화 구조적 음악/영상 연출에 대한 이야기가 등한시된 점이 있다.
영화는 이른 새벽 어느 거리를 비춰주며 시작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철저한 연출로 만들어진 이 첫 장면은 길 가에서 발생한 총격전부터 시작하는데 그 옆에 지나가는 경찰차와 구급차들, 그리고 그런 총격적을 사진으로 찍는 한 남자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여성 '수안',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이 모든 경찰차와 수안을 빠르게 지나쳐가는 연구원 '이립종', 그리고 그 위로 소설이 잘 쓰이지 않아 고뇌하는 소설가 '저우위펀'의 목소리까지 등장하며,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두 등장한다.
경찰이 총격전 현장에 도착하고 사복경찰들이 현장에 달려들어 탄환을 장전하는 장면으로 전환되자 '저우위펀'의 방백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그 날, 봄이 오기 시작한 바로 그 날, 혹시 계절의 변화가 단순히 윤회의 반복이라는 걸 안다면, 올 해의 봄이 작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부부가 갖고 있는 문제는..."
관조적 시선을 유지한 카메라는
저우위펀 소설의 시점과 동일시 된다
이 대사로 저우위펀의 소설은 시작되는데 대사에 나타나다시피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영화 속 카메라 역시 제 3자의 관조적 시선을 유지한 채 서사에 진입하여 소설과 동일한 관점을 갖는다. 덕분에 극중 캐릭터들의 서사들이 충돌하지 않고 분위기에 어울리게 전개가 가능해졌다.
또한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방백이라는 장치가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중요한 이 영화의 첫 씬이 총격전 거리 장면에서 '저우위펀'의 작업 책방으로 이어지는 순간, 소설 내용이 방백으로 등장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처럼 영화의 소리와 실제 보이는 화면의 부조화를 자주 활용하는 걸로 유명하다. 두 장면이 이어지는 이음새로 이질적인 사운드가 삽입되어 오히려 더욱 매끄러운 화면 전환을 유도했다.
그렇지만 '저우위펀'의 소설 《혼인실록》이 영화 <공포분자> 에서 중요한 서사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영화 전체는 저우위펀의 소설'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형체는 그려질 만큼 상세하게 등장하지는 않고, 재벌 3세쯤으로 보이는 도련님 '샤오치앙'과 그의 여자 친구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소설의 내용을 추정할 수 있어서 독자가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 할 만한 것의 전부는 그 말속에서만 담겨 있다. 그렇게 영화 안에서의 소설은 무엇인가 결핍된 채로 존재하고, 관객들은 '저우위펀'이 작가로서 어떤 작법을 구사하는지, '샤오치앙'의 여자 친구인 그가 해석한 소설이 올바른 해석인지 조차 판단할 근거는 없었다.
영화 주요 캐릭터들은 전부
이 소설을 읽고 관찰하는 '목격자'가 된다.
경찰이 출동하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저우위펀'의 소설은 글이 경찰의 총성만큼의 폭력성을 갖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픽션 속에 대립하는 서사 공간으로, 이 공간은 영화 속에서 엿볼 수 없지만, 영화 내부의 아주 핵심적인 하나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암시할 뿐 아니라, 이 진실은 허구에 맞서는 그런 진실이 아니라 대부분 소설로 인해 읽혀진다. 또한 영화 주요 캐릭터들은 전부 이 소설을 읽고 바라보는 '목격자'가 되어버리는 데 이건 통상적인 서술 방법의 궤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저우위펀'은 이 작품의 작가이자 첫 번째 독자가 되었을 텐데, 소설을 읽고 난 후 그는 남편 '이립종'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한다. 재벌가 도련님 '샤오치앙'은 이 소설을 읽자마자 '이립종'에게 연락을 취했고, 남편 '이립종'은 사람을 죽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어버린다.
소설로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이 소설 서사의 '진실'의 공간은 이후, '샤오치앙'의 여자 친구가 언급한 이립종이 원수를 죽인 후 자살한다는 내용이 영화 결말 중 하나를 암시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해석으로는 '저우위펀'의 소설 내용이 '이립종이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한다'는 것의 연장이나 전개가 되었다고 본다.
혹은, 비록 소설의 정확한 형체는 영화에서 보이지 않지만 영화에서 실제와 허구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장치였다고도 논한다. 영화 초반에 '수안'의 계속되었던 장난 전화에서 말한 자살 기도, 불륜 등의 말들이 서사가 되어 '저우위펀'의 소설 속 내용이 되어 버렸다.
서사를 전복시키는 반서사의 등장
영화 서사구조상에서 동일한 연출 시도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샤오치앙'의 여자 친구가 자살 시도 후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에서 화면 바깥으로 자살을 고백하는 목소리가 울리며 처음에는 '샤오치앙'의 여자 친구의 독백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곧바로 수안이 장난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전환되며, 이는 '수안'이 전화하며 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수안'은 장난 전화 속의 말들로 '샤오치앙' 여자 친구의 자살시도뿐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이야기를 전복시켰다. '수안'의 또 다른 협박 전화 한 통을 받고 난 후 '저우위펀'이 책방으로 들어가 원고들을 실제 던져버렸고 결국 '수안'과 같이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행동을 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사회 문제와세계화된 도시를 고발하기 보다는
이 영화의 의미를 하나의 '현상'으로 좁혔다
<공포분자> 안에는 '진실'과 '허구' 두 개의 대립되는 방식이 공존할 수 있게 정서가 마련되어 있다. 게다가 이미 그 속에서 진실과 허구가 불균형하게 뒤섞여있어 구분하기 어렵다. 영화 <공포분자> 의 내용은 1980년대 대만 사회 내의 인간소외와 폭력감시가 빈번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그렇지만 감독 에드워드 양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사회 문제과 세계화된 도시를 고발하기 보다는 이 영화의 의미를 하나의 '현상'으로 좁힌 뒤 연출과 음악 분석을 한 뒤에야 본질을 짚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후반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후설 구조(마스터 내러티브)를 가진 동시에 서사반서사를 표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만영화의 1980년대 초 당시 새 영화 장르가 아직 서사 기법들이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고, 당시 기존의 영화 문법을 뒤집을 정도가 아닌 열악한 환경에서 왜 후설 구조 연출이 갑자기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서 등장했을까?
이 문제는 당대의 대만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공포분자>가 여성 작가 '저우위펀' 중심으로 서술된 것은 당시 대만의 문예창작과 문학계의 흐름과 상응하는 현상을 담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영화가 태동할 그 무렵은 대만 로컬 문학 논쟁이 막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1981년부터 시작된 신영화의 죽음을 알리는 <또 다른 선언>이 발표되며, 대만의 메이저 작가들이 인정받기 시작했고 판타지, 포스트모던 스타일, 혹은 포스트 서사 스타일의 신인들이 계속해서 등장하여 연합신문 문학상과 시사 시문학상에서 모두 인정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루 슈에 하이의 <천장 위에 사는 물고기>, 핑루의 <옥수수밭에서의 죽음>, 황판의 <자비의 맛>, 장따춘의 <벽> 등이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돌아와 보면 1979년 연말, 메이리다오 사건 (1979년 12월 10일, 대만 가오슝시에서 메이리다오 잡지 주최로 일어난 민주화 시위가 당국 경찰과 충돌하게 되어 주최자가 투옥된 사건) 이 발발하면서 대만은 계엄령 시대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정부와 다른 목소리들은 이미 심심찮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메이리다오' 사건 때문에 국민당 정부는 언론 장악을 위한 '정부 입장' 이란 걸 만들었으나 이미 당외 움직임들이 활발해지고 확산되며 이미 민간에서 또 다른 반정부적 관점의 서사가 형성되면서 진실에 대한 도전도 커지고 있었다.
한편, 국민당 정부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출발 선상에 두어, 공정과 평등 그리고 객관성을 보장받아야 할 미디어들을 장악하여 피통치 계급인 민간인들을 세뇌하고자 했다. 당외 운동가, 당외 잡지 발행 기관 및 그 잡지를 판매하거나 소유하고 있는 개인들까지 반동분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때문에 신문 보도 매체가 가진 거대한 영향력에 비해 작은 개인의 목소리는 극히 알려지기 어려웠다.
에드워드 양의 영화 제작에 대한 깊이, 디테일 따위 등에는 당시 이미 반정부적 서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반면, 당시 문단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는 당시 수상 여성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소설 제목에 《혼인실록》을 표시하고, 영화 중 무엇이 진실인지 왜곡하는 근거로 삼았음을 보여 주면서, 당시 양덕창은 그렇게 반서사의 의도를 드러냈다. 대만 사회가 관영 서사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을 나타냈으며 고압 적안 통치 분위기 아래서 어느 쪽이 진실이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의혹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진상을 알고 있는 샤오치앙이 자신의 아래에 놓인 《혼인실록》이 담긴 신문을 바라보며 "이 일의 진상은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안다"라고 한다. 그 옆에 있던 '샤오치앙'의 여자 친구는 소설을 읽은 뒤 "원래 스트레스 한 쌍이 잘 못 받다가 부인이 한 여자의 전화를 받고 아파하는 모습이 바뀌었고, 남편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참담하게 몰려와 아내를 죽이고 자살하며 모든 고통을 마무리했다"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 영화 안에서는 '이립종'이 살인을 마음먹은 건 와이프의 고통과 그녀가 준 핍박 때문이 아니라 '샤오치앙'이 '이립종'에게 전화로 전한 진상 때문이었다.
서사에 집착한 수동적 주체만이
파멸했다.
'수안'은 진실이 아닌 허구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캐릭터였다. '저우위펀'도 '수안'의 전화를 받고 난 후 소설로 써버리는데 그쳤고 '샤오치앙'의 여자 친구 역시 '샤오치앙'에게 소설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말라며 타이르고, '저우위펀'은 남편 '이립종'에게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 너는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해?"라고 말했다. 오히려 소설의 수동적 주체인 '이립종'이 이야기에 집착하여 진실로 믿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기이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영화 속의 폭력성과 파멸은 부부관계 문제나 현대사회 도시화로 기인한 인간소외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서사 안에서 반서사가 개입하여 기존 서사를 뒤엎는 과정에서 진실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런 서사반서사적 서술은 감독 에드워드 양이 관영 역사 서술법 대한 불만과 이후 60년대 발생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대해 영화로 다루게 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초기의 에드워드 양 감독은 '옛 영화'에 맞서는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었다. 그렇지만 뛰어난 성찰 능력을 가딘 그는 곧 대만 사회의 떠들썩함 속에서 작은 현상 보다 서사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공포분자> 에서 후설 기법으로 서사반서사를 완성해내어 대만영화의 대표작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반서사는 표현의 자유가 예술가에게 완전 개방 되고 몇 년 후 디렉팅 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같은 역사 서사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렇지만 <공포분자>는 영화 예술 역사 상에서 지금까지 인정받는 성공작이자 반서사 영화 중에 대적할 작품이 근 30년까지도 없을 정도로 깰 수 없는 높은 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