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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인 Nov 05. 2020

지옥에서 온 선생, 플래쳐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지랄발광이라는 말이 있다. 비속어로 알고 있는 의외로 발광은 '빛을 낸다'라는 뜻인데, <위플래쉬> 를 보면서 드는 복합적인 생각 중에 가장 적합한 단어였다.


 이 영화를 단 몇 개월 전의 내가 봤다면, 괴로움에 심장이 조여왔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자기혐오적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이 영화는 고문과 다를 게 없다. 단순히 장르의 선호를 떠나서,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신의 안정을 갖추고 있는지 먼저 뒤돌아보라고 하고 싶다. 왜냐면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열정으로 내비치나 누군가에게는 편협함, 세뇌, 집착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영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라면 이 작품은 카타르시스를 한 움큼 쥐어줄 수 있는 기회다. 한 인간이 스스로 임계치를 찾아서 뚫고 들어가서 살아가는 과정을 보며 좀 더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스승 플래처와 제자 앤드류의 한국에서 발견하기 힘든 스승과 제자의 관계들 관망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보통 스승이 '나는 다 가르치었으니, 그만 하산하여라.' 라는 대사가 먼저 나올 법한 동양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 스승-제자에서 음악동료로 변태하여 그려지는 둘의 관계는 음악적 카타르시스만큼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한다.



제목 <위플래쉬>가 <채찍질>로 번역이 안 되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미국의 명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학생들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플래처 (제이케이 시몬스)의 악단에 세계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은 앤드류 (마일즈 텔러)가 들어가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몸에 핏한 검은색 옷들과 실오라기 하나 없는 깔끔한 대머리로 처음 등장부터 영화를 사로잡는 '플래처'는 보자마자 최소 편집증 환자일 것이라는 합리적인 예상이 든다.

 그리고 앤드류는 본인이 일류 악단에 초대 받아 입단한 것으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을 때, 기존 멤버들의 재즈 곡 <위플래쉬> 연주를 듣게 된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악단 멤버들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가득한 연습실의 공기에 앤드류는 그래도 나름 기죽지 않고 특유의 한 쪽 입고리만 올리는 미소를 간간히 내비치며 자신의 연주를 선보인다.

왼쪽이 플래처, 오른쪽이 앤드류: 영화 초입의 둘의 대화로 따스한 플래처의 마지막 장면이다.

 게다가 플래처는 첫 날 쉬는시간에 앤드류에게 '찰리 파커가 '버드'가 된 건 존스가 머리에 던진 심벌즈 덕분이야.' 류의 격언까지 서슴치 않았으니, 프래쉬맨인 앤드류가 긴장을 풀 수 있게 도와주는 참스승의 면모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마음에 들지 않은 비트일 때 음악을 멈추는 플래처의 제스처. 왠지 따라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그 쉬는 시간이 끝난 후 앤드류의 첫 연주가 시작되었고, 몇 번의 기회를 주는 듯했던 플래처는 곧바로 옆에 있는 의자를 앤드류에게 던져버린다. 극중 대사로 플래처는 '서둘렀을까? 끌었을까?(Are you rushing? or dragging?)'라며 앤드류에게 어떤 종류의 실수였는지 되묻는데 그가 '모르겠어요'라 하자 박자를 카운트하면서 뺨을 계속해서 때리기 시작한다. 진짜다. 쌍팔년도 한국 영화에서나 볼 것 같았던 체벌의 현장이 여기 고스란히 나온다.

 체벌이 이르면 2021년 초부터 가정에서부터 엄금되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에서 이 장면부터 플래처가 그 뺨을 때리는 장면부터 지옥에서 온 미친놈이라는 캐릭터성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앤드류에게 분노를 자극하는 플래쳐

 그렇게 지옥의 드럼 훈련길이 시작된 앤드류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의 주 플롯이다. 실제 영화의 모든 씬에 앤드류가 등장한다는 점을 챙기고 본다면 드럼과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휘몰아치는 플래처와 앤드류의 광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왓챠플레이에서도 볼 수 있지만 지금 극장 재개봉으로 걸려 있으니 영화관에서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실력과 기회가 맞아떨어졌을 때와 엇나갔을 때, 그리고 스승 플래쳐의 트랩과 같은 앤드류를 자극하기 위한 장치들이 보다보면 '선 넘었네.' 싶기는 한데 영화적으로 보기에는 그만큼 훌륭한 스토리텔링 기폭제는 없다고 느껴진다.


드럼을 부숴버리는 앤드류

 플래처와 앤드류는 이 세상에 존재해주길 바라지만 내 주위에는 없었으면 하는 부류 1순위다. 진짜 피흘리는 연습을 해버리는 앤드류와 그 노력에 절대 기가 꺾이지 않는 콧대높은 스승의 플래쳐. 그들의 티키타카라기 보다는 그 둘의 기싸움으로 관객들의 어깨까지 굳게 만들어 버린다. 중간에 앤드류가 마음에 들어 대쉬한 여성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 있는데, LITERALLY 최악의 파트너상이었다. 그 마저도 지랄발광이었던 앤드류.



<위플래쉬>의

재미있고 소소한 디테일


- 영화 촬영은 19일만에 모두 이루어졌다.

- 감독은 앤드류(마일즈 텔러)의 드럼씬에서는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컷을 일부러 외치지 않았다.

- 앤드류는 영화의 모든 씬에 등장한다.

- 플래처역을 맡은 J.K 시몬스는 이 역으로 무려 47개의 상을 받게 된다.

- 실제 영화에서 활용된 드럼사운드의 40%는 실제 마일즈 텔러가 연주한 버전이다.

- 이 영화는 예산이 없어서 엎어질 뻔했고, 실제 장편 1년 전에 단편으로 마일즈 텔러와 촬영했었다.

- 영화에서 앤드류의 우상으로 등장하는 재즈 계의 거물 '버디 리치'는 본인은 음악을 배운 적도 없고 공연 전에 연습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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