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인 Nov 24. 2020

조제를 기다리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12월의 <조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참 이상한 영화 제목이다. 전혀 연결성 없어 보이는 세 개의 단어가 나란히 새겨진 독특한 이 일본 영화는 영화만큼 유명한 영상이 하나 있다. 그 영상 속에는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츠마부키 사토시가 첫 무대인사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영화 마케팅 역사상 가장 훌륭한 말을 남겨버렸다.


첫 무대인사 자리에서 마지막 멘트를 하는 츠마부키 사토시

 츠마부키 사토시:  (영화를 찍는 과정이) 재미있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는데요. 촬영하면서 재미도 있었고 모든 게 신선했습니다. 이렇게 진지한 영화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매 장면마다 치즈루 씨, 조제와 연애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영화였어요. 끝난 후에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죠. 정말로... 이렇게 가슴 깊이 남는 영화는... 연애는 누구나 꿈꾸지만 쉽지는 않다는 걸 알았고요. 멋진 연애를 많이 해 보고 싶습니다. 


 그는 이렇게 진지한 영화는 처음이었다는 말을 하면서 천천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오랜 기다림과 짧은 만남, 그리고 기약 없는 이별의 감정이 그 많은 관객 앞에서도 들이닥친 걸 알고 눈으로 웃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분명 사랑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영화 속 대사 같은 말을 내뱉는 내내 카메라 렌즈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얼굴을 가득 채워 담고 있다. 조제와의 바닷속을 유영하는 듯한 눈빛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 23살이었다니 도망쳐야 하는 사랑을 생에 처음으로 이 영화를 통해 해 봤을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 영상을 반복하며 한 마디씩 옮기는 순간에도 가슴이 울렁인다.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다. 이런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며 비용 세이브되는 영화 마케팅이 어디 있냐! 고. 어떤 멋진 마케팅 프로젝트보다 무서운 힘을 가졌다. 



 그리고 내달 올해의 마지막이 오는 시점에,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어 <조제>라는 이름으로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카메라 뒤에 관객들은 없었지만 17년의 세월이 지나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조제> 제작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박경림 씨가 가장 왼편에 앉고 그다음에 조제 역의 한지민, 영석 역의 남주혁, 마지막으로 김종관 감독이 자리했다. 

 

 박경림 씨가 마이크를 들었을 뿐인데 장내의 공기에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가 주도하는 곳에는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이 있다. 편집 없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온라인 스트리밍라는 두려운 장치들을 다행히 박경림 씨의 존재로 배우들과 감독, 그리고 카메라 너머 수많은 예비 관객들도 마음을 놓는다. 


 박경림 씨는 이미 영화 촬영 종료 시점에서 1년 정도 시간이 지난 점을 고려해서 중간중간에 영화 클립 영상을 세 개의 테마로 나누어 보여주었다. 아직 영화가 공개 전이니 그 영상은 배우들에게만 공개되었다. 마지막 촬영 기준으로 1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대뜸 질문을 던졌다가는 어색하고 표층에서 겉도는 상투적인 인터뷰가 돼버릴 수 있다는 정확한 진단이었다.


 그 영상들을 감상하며 배우들에게 촬영 당시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시간을 준다. 겨울에 막 앉은 의자의 차가움이 약간이나마 체온으로 익숙해지는 시간이었을 그 장치가 참 자연스럽고 현명하다고 나는 옆에 둔 귤을 까서 먹으며 낮은 탄성을 냈다. 


 그리고 평행이론 같이 한지민, 남주혁 배우도 그 자리에서 웃으면서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마음속의 조제가 다시 살아 움직였나 보다. 조제를 기다리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말이다. 어차피 이별할 것이라는 결론이 이번 한국판 <조제>에서도 바뀌지 않을 거라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왜냐면 이별을 결론이라고 심심하게 단정 짓는 감독과 배우들이 아닐 거란 믿음에서다. 그래서 조제와 영석이 헤어지는 순간만큼이나 그 둘이 만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둘의 모래시계 속 모래가 점점 닳아가고, 기억 속의 상대방이 더욱 익숙해져 갈 앞으로를 상상하면서도 오늘은 사랑하며, 내일의 자신을 생각한다. 한 순간에 방향이 다른 두 종류의 시간을 사는 일은 얼마나 복잡한 일인가. "내가 도망친 것이다."라는 원작 영화 대사에서 나오지만, 사람이 원더우먼 같은 슈퍼히어로처럼 강하기 쉽지 않으니까. 다만 이후에 후회에 들어도 사랑에 들어온 그 둘을 응원해주자. 나는 그런 마음으로 조제를 기다린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올 한 해의 따뜻한 영화가 되어주기를 기다려본다. 


작가의 이전글 남들도 다 하는 자가격리라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