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을 빌려
알프레도. 저 이제 곧 6학년 되는데, 우리 친구가 되는게 어때요?
2021.01.13
웃으면서 적을 글은 아니지만 코로나 이후에 아무도 찾지 않게 되어 쾌적해진 영화관에 신이 났었다. 극장에서 일한 덕에 <시네마천국> 어린 주인공 토토처럼 창문 없는 사무실을 지나 어두컴컴한 극장으로 수시로 들어가서 고요한 극장의 F,G열 중앙에 앉아 새로 나오는 영화들을 닥치는대로 봤다. 극장에 들어가면 사람들 향은 사라졌고 인조가죽와 쿰쿰한 먼지가 뒤섞인 냄새가 어둠보다 조금 더 빨리 들어오는데 자리를 찾으려 고개를 슬쩍 들면 몇 명이 들어왔는지 세아려보게 된다. 코로나19 이후로 생긴 또 하나의 버릇이다. 보통은 10명 안 되는 사람들이 각자 눈치껏 멀찍이 앉아있는데 왜인지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이 비춰주는 그들의 안경알에서 영화광의 향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쯤되면 이동진이나 김혜리 평론가를 한번쯤 마주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즐거운 극장고객이 되었었다.
반면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시네마천국> 속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영화관을 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으레 갖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열정적인 이미지를 감안하더라도 성당 문 앞에서 의자를 들고 세시간을 기다리다가도 그 날 실패한 사람들이 터뜨리는 분노는 놀랍기만 하다.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 덕에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와 그를 따라 영사기사가 될 소년 토토는 광장을 영화관으로 변모시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사람들의 극장에 대한 열광은 1950년대의 이탈리아가 영화가 막 대중으로 보급되던 시기로 극장이 궁금증의 장소로의 역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일종의 마을 행사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건 사람들은 러닝타임 내내 가만히 스크린만을 보지 않고 다양한 일들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플롯에 맞춰 온 몸을 쓰는 박장대소, 박수는 기본이고 2층에 앉은 자본가들이 1층을 향해 침을 뱉기, 난간에 기대 서서 영화를 보는 경찰들, 영화의 총이 발사되는 순간의 살인, 뒤쪽 어두운 곳에서의 섹스, 잠 든 아저씨의 입 안에 벌레를 넣고 달아나는 어린이들까지 보다보면 이들에게 영화는 반응할 수 있는 소재를 던질 뿐이지 실상은 같이 영화를 보는 이 사람들과의 시간이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월드컵 중계를 방불케하는 관객들은 나와 영화의 연결점을 찾는 요즘과는 달리 양옆에 적어도 두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이웃들과의 추억을 나누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스크린과 관객을 오버랩시키는 시퀀스를 보여주며 마치 과거를 떠올릴 때 혼재되어 있는 기억을 읽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토토는 항상 앞열 아니면 알프레도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영화만 유심히 뚫어져라 본다. 앞니를 약간 드러낸채 벌린 입에 눈을 위로 뜨는 토토의 모습이 귀여우면서 기특한 마음이 든다. 하루종일 영화 얘기만 하는 필름수집가였던 토토는 어머니에게 뭇매를 맞더라도 알프레도에게 '우리 친구가 되는게 어때요?'라 말하며 결국 화재로 잃어버린 시네마천국의 새로운 영사기사가 된다.
화재가 일어나던 그 날, 광장에 영화를 틀어주었던 알프레도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영사기사로의 운명을 달리한다. 불쏘시개만 남은 성당자리에 알프레도가 불에타 눈을 잃고 있을 때,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고 토토만이 그 곁을 지켰다. 모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 알프레도는 토토와의 친구 관계에서 빈 아버지의 역할까지 하게 되고 새로 지은 시네마천국의 새로운 영사기사으로 토토가 되는 구간까지는 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변곡점이 된다. 순수한 동기가 발전시킨 둘의 관계가 신뢰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 시점이었다.
올해 첫 예능으로 김이나 작사가와 이동진 평론가가 만나 톡으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그 곳에서도 순수를 엿봤다. 둘 다 훔치고 싶은 반짝이는 글과 말을 한보따리씩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서로가 알아보는 눈새였다. 김이나 작사가가 '실리와 상관없는 취미가 있는 사람일수록 대화하는게 두렵지 않다.' 라는 말을 띄웠며 '수집하고 싶은 마음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동진 평론가는 '이야기를 맺고 싶은 마음'과'..그리고 약간의 재력?!' 라며 호쾌하게 답을 던진다. 실리와 관계없음이 어느정도 순수를 대변한다면, 순수를 좇는 행위가 사람들을 조금씩 구할 때도 반대로 죽이기도 한다. 어린 토토에게 전부였던 영화가 어른이 되어 사랑과 인생을 하나씩 깨우쳐가면서 알프레도가 "영화는 현실이 아니야.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단다.” 라며 토토가 순수로 죽임당하는 일을 두려워하라며 경고하며 국면이 전환되며 점진적으로 영화는 옛날 일이 되어간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첫사랑을 만나고 두 번째로는 일을 하러 도시로 떠난다. 순수를 안고 현실을 징명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인물로 그려지는 청년 토토는 주체적이다기보다는 알프레도의 조언에 순응하는 캐릭터다. 뜻이 분명했던 어린 시절의 토토보다는 분명 조심스러워졌고 또 미지의 공포와 어른 알프레도의 경고에 따르게 되다 보니 '청년 토토'는 이 영화를 남길 때 가장 첫 번째 캐릭터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현실 속의 우리들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영화 <시네마 천국>이 영화 이름처럼 비현실적이지 않고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작품이 되게 해 준다. 천국은 내 발 아래에 있었다.
마지막은 아픈척 나자빠져서 자전거 얻어타고 친구되자고 제안하는 귀여운 토토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