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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Apr 24. 2021

38. 정체

한 발 나아가는 것의 힘겨움

 내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단조롭다. 일상을 살아가다 떠오른 공상에서 소재를 잡아 메모해두고, 일과가 끝날 즈음에는 그중 하나를 골라 자판을 두드린다. 소재가 떨어지는 날에는 옛 기억이라도 더듬으며 글을 써내고야 만다. 짧으면 2시간, 길면 며칠까지도 걸리는 쓰기 작업은 어느새 일상의 한 부품이 되어 내 하루의 막을 닫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쓰고 있는 걸까'


 첫 글을 올린 1월 29일. 그로부터 3개월간 써 내려간 글은 어느덧 40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마추어 수필가로서의 삶도 86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길지는 않지만 찰나라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왔는데, 우습게도 나는 그 의문에 답할 수 없었다. 같은 음을 반복하는 태엽 소리처럼 모르겠다는 어구가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채웠다.


 그 순간의 무력감이란. 딱 한 발을 내딛을 만큼 남아있던 용기마저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정체라는 늪에 빠져있음을 인정해야 했고, 의도적으로 내 글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길 피했다는 것과 직면해야 했다. 사실 어떤 것을 쓰는가 보다 그저 글을 완성하는데 중점 두었던 것은 최근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하나 둘 묻어두었던 의문점들이 시간이 지나며 그 일각을 드러 것에 가까웠다.


 나는 왜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정체의 가운데서 정지하고 나니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 전체의 글 같은 상징적이고 원론적인 것 말고, 나에 대해 쓰기 시작했던 그 원점이 궁금해졌다. 난 왜 '나'로 시작하는, 나의 실상에 대해 적기 시작했을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첫 글의 시작은 그리움이었다. 긴 입시가 끝난 봄, 벅찬 자유의 감각과 함께 이제껏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그림, 글, 음악…. 다만 입시  중간에 SNS 그림 계정을 만들고 간간히 활동을 이어갔기에 그림에 대한 갈증은 적었고, 음악을 포함한 다른 것들은 생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는 도전을 감행해야 했다. 결국 가장 마음이 간 것이 글이었다. 글을 써 본 경험도 많고, 써 보고 싶은 작품들도 생각해뒀겠다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 뒤로 몇 번의 호기로운 도전과 반성의 시간을 겪었다. 글에 대한 열정과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사이 균형을 잡지 못해 이도 저도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맹목적인 도전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다시 그리움이 찾아왔다. 짧은 단편 하나 진심으로 써내지 못하는 초라한 지금의 공허 너머로, 순수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자체로 행복을 얻던 옛날의 내가 떠올랐다. 글에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고, 글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던 과거를 시기하는 동시에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내 얘기를 쓰기로 했던 것 같다. 사실 그건 될 대로 초라해진 내가 손에 쥘 수 있던 유일한 것이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다듬기 전에 생각을 문장으로 쓰는 연습부터 하자는 심정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일상의 공상, 과거의 흑역사, 매일 더해지는 걱정과 고민…. 좋으나 싫으나 나만 알고 있던 나의 파편들이 하나 둘 글이 되어 쌓여갔고, 눈앞의 것들이 얼추 정리가 되자 막연한 길이 보였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허허벌판에 결국 나는 다시 멈춰 섰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글에 대한 그리움에서, 글로써 행복하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서 출발해 '쓰기'라는 행위를 시작하기 위해 무작정 서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답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을 써야 하고 그 글에 무엇을 담아내겠다는 포부를 다지기도 전에 무작정 시작해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용감하나 분명 안일했다. 결국 달리는 중간에 멈춰 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왔으니 말이다.


 해결된 것은 없지만 지금의 정체(滯)의 근원을 알게 된 것 만으로 위안이 된다면 한심한 일일까. 결국 길을 찾는 데 다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결론이지만, 적어도 멈춰 있는 지금이 두렵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동시에 글에 대한 의무감에 지치고 한편으론 회의를 느끼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지금에 감사한다.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돌아봤을 때에 지금이 분명 가치 있었다 느껴지는 순간이기를 바라며 오늘의 말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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