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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May 04. 2021

42. 어떤 게으름

또 어떤 성실과 맞닿아 있을

 블로그를 시작했다. 사실 특별한 목표나 포부는 없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진행하는 2주간의 매일 일기 프로젝트 광고를 보고 혹했던 것이 계기였다. 누군가에게 글을 마련하는 공간이 아닌 나 혼자 하루를 중얼거릴 공간을 갖고 싶기도 했고, 그곳에 2주간 꾸준히 글을 쓰면 상금까지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생각까지 하고 나서는 일사천리로 블로그를 개설했고 그저께부터 하루에 한 편씩 일상을 끼적이고 있다.

(글을 올리는 4일 기준, 네이버의 매일 일기 프로젝트는 조기 마감됐다.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나. 상금은 물 건너갔고, 조금 - 사실 많이 - 아쉽긴 하지만 블로그는 계속 남겨 둘 생각이다.)


 블로그 프로젝트에 혹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알고 지내는 몇몇 친구들도 블로그를 시작했다며 글을 올리는 모습을 SNS에 공유했다. 뭔가 낯선 느낌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쓴 글을 읽어본 경험이 적기도 했고, 친구들이 기록한 각자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물론 SNS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에도 글은 있지만 온전히 자신의 말로 하루를 재배열한 글은 또 다른 느낌을 내는 법이다.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친구들의 블로그를 하나씩 이웃으로 걸어두는데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늘봄 맞지??'


 그때의 충격이란. 남몰래 하고 있는 이중생활을 들킨 기분이었다. 만화를 그릴 때와는 다른 작가명을 쓰고 본명같이 나를 특정 지을 수 있는 건 적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냈나 싶었다. 심지어 내가 이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친구였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며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았는데 친구 왈, 그냥 나 같았다고 한다. 기뻐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웃으며 수다를 이어나갔다. 놀란 건 둘째치고 오랜만의 반가운 연락이었다.


 잠깐의 수다를 마치고 그 친구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눈을 빛내며 글을 읽어보았다. 친구의 소식이 반가웠고, 또 그걸 적은 방식에서 묻어나는 그 친구의 개성이 반가웠다. 나와 마찬가지로 블로그 프로젝트로 시작된 글이었지만 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하루를 나열한 글과 함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로 친구 특유의 솔직하고 섬세한 성격이 보였다. 그냥 읽은 것뿐인데 하루를 같이 보낸 것 같은 기분이 일어 웃음이 났다.


 그런 류의 섬세한 성실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억지로 꾸미지 않았는데도 느낌 있고, 왠지 모를 소탈한 편안함을 주는 사람들. 대부분 솔직하고 구김 없는 성격을 가진 이 부류의 사람들을 나는 항상 좋아하고 동경한다. 특히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분야에서 특유의 성실을 발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 든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시기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타인의 성실과 비교되는 나의 게으름을 인지하면서도 이토록 평온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다른 분야에서 다른 종류의 성실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블로그에서 그리 힘을 주고 게시물을 다듬지 않더라도 이미 다른 곳에서 그만큼의 노력을 들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가 나보다 뛰어난 섬세함과 능력을 마주하더라도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게 만든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할 수 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타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축하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누구나 어디선가에선 게으름을 피우고 또 어느 곳에서는 성실을 다한다.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칭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성실함을 너무 거대한 가치로 생각하며 일상 속 자신의 성실을 무시하고 지나갔을 뿐이지 생각해보면 우린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성실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밟히는 스스로의 게으름에 너무 엄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같이 노력하라며 스스로를 책망하기엔 우린 이미 너무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중엔 조금은 덜 정성스러운 순간도 있는 법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대개는 누구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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