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손
담장 안은 생각보다 동적이다.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곳곳에서 수용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직원들은 업무와 배치에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보안청소 출역수들이 직원 계호 아래 담장 안 마당을 쓸고 있고, 영치 출역수들이 신입 수용자 영치품을 받기 위해 담당과 함께 신입실로 향한다. 수용동은 접견 연출 직원들이 수용자들을 우루르 대리고 다니고, 치과 진료나 기타 진료를 위해 수용자와 동행하는 직원도 보인다. 수용자 구매품을 를 담당하는 직원은 각 수용동마다 구매물품을 수용동 도우미(사소)들에게 분배하느라 시끄럽고, 담장 안 의사들은 순회 진료를 위해 각 수용팀실로 향한다. 교대를 들어가는 직원 교대받고 나오는 직원, 수용자 배식을 계호 하는 직원 등등.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담장 안의 일상, 서로를 경려 하는 차원에서인지 인사 문화가 매우 발달돼있다. 방금 인사하고 돌아서서 마주치던 하루에 2~30번을 마주치던, 사회에서는 목례만 하거나 애써 시선을 피하기도 하겠지만, 하루에 다른 공간 다른 장소에서 수회 마주쳐도 경례 인사를 하는 게 자연스럽고 속 편하다.
연수원에서 신규직원 교육을 받을 때, 실무실습을 나가서 교육을 받을 때, 근무지 배정받고 교육을 받을 때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인사였다. 첫 근무에 대한 설렘과 긴장이 나를 지배하고, 곳곳마다 어색함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아득한 선배들의 교육은 진위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인사를 몸에 배게 했다. 철저하게 몸에 밴 인사는 담장 안에서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반사적으로 경례 인사가 나오기도 했다. 노역수나 직입소 수용자를 대리고 들어온 검찰직 직원이나 출소자에게 전자 발찌를 채우러 온 보호관찰직 직원들, 심지어는 담장 밖에서 지인을 만날 때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날처럼 새워 오른쪽 이마에 잠시 대었다 멋쩍어한 적도 있다. 그리고 수용동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라면 가끔 수용자에게 경례를 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적 없다;;)
도서 담당이었을 때다. 보안과 야근부를 거쳐 서신 담당을 하고 도서업무를 볼 때이니 신규직원이라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사동에서 영자신문 하나가 안 왔다고 한다. 그 신문을 주문한 수용자가 두 명뿐이니 기억이 났다. 도서실 다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고 신문을 쌓은 수용자는 애초에 한 부밖에 안온 것 같다고 했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보니 신문 여분이 없어서 내일부터 다시 잘 넣겠다고 했다. 하필이면 같은 그 영자신문을 주문한 수용자 두 명이 같은 수용동에서 있었고 앞방에 있는 수용자는 받고 뒷방에 있는 수용자는 못 받은 거였다. 받은 수용자는 누구고 못 받은 수용자는 누구인가. 검색해보니 한 명은 저명한 기업가, 다른 한 명은 유명 정치인...... 이를 어쩐다........
수용자가 누구이건 담장 안에서 만큼은 수용자는 수용자일 뿐이다. 담장 밖에서의 그 어떤 지위도 여기선 혜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 위치가 있었던 유명인사를 상대한다는 건 스멀스멀 피어나는 위화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용자는 수용자일 뿐이다고 머리에 세뇌를 시키고 정신을 무장해도 긴장감을 떨칠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피하는 건 오히려 철밥통을 단단히 죄고 있는 동아줄을 단번에 베어버릴 비수로 돌아올 수도 있다. 나는 직업정신으로 무장하고 신문을 받지 못한 수용자를 만나러 갔다.
'신문사의 실수를 납득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신문을 받은 기업가에게 부탁해서 오늘만 좀 같이 보면 안 되냐 부탁해볼까'(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용자끼리 신문을 돌려보는 건 규정 위반이다 큰 일 날 뻔했다.)
수용동을 들어가 보니 하필이면 운동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운동장을 나가 이름을 불렀다 “ooo 씨” 내 쪽을 돌아봤다. 나는 그를 향해 걸었다. 일단 우리 쪽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니 가볍게 인사부터 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려 했다. “안녕하세요. 도서 담당자인데요” 알 수 없는 위화감. 나는 허리를 약간 구부정하게 숙인 채 오른손이 오른쪽 이마를 향하고 있는 나를 느꼈다. 이미 손은 펴져있었고 상대방은 내 모든 행동을 인지하고 있었다. 운동시간이라 주위에 몇몇 수용자가 더 있었다. 나는 아닌 척 애쓰며 가렵지도 않은 이마를 긁고 문대며 딴청을 피웠다. 신문배달을 위해 같이 대동한 수용자는 잠시 동안 무슨 상황인지 인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뭔가 이상하긴 한데 뭐였을까 하는 표정이다.
일을 원만히 해결됐다. 내일부터 보면 되지 뭐 그만한 일로 여끼까지 찾아오셨냐고 되려 황망한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도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대동한 수용자가 자꾸 쭈뼛댄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기에 최대한 피했으나 어떻게든 비집고 눈을 맞춘다.
“부장님 아까 혹시..”
“아니야!”
사회적 지위에 나도 모르게 굴복한 걸까? 내 손이 창피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건 또 뭐란 말인가..... 나는 거북목이라 항변해 본다.
근무지를 이제 막 배정받은 후배들은 역시나 가끔 수용자에게 경례를 하는 실수를 여전히 범한다.
담장 안은 거북목이라 주장하는 신규직원이 왜이리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