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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Sep 01. 2020

당신과 다른 나

이 글은 임현 작가의 소설 '당신과 다른 나'와 무관합니다.

아침 7시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졸린 눈을 부여잡고 일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온몸의 근육이 아직 제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화장실까지 땅에 붙어있다시피 걷는다. 식탁과 싱크대를 지지대 삼아 겨우 도착한 화장실에서 양치를 시작한다. 어두웠던 시야가 차츰 맑아지고 정신이 조금 든다. 그리고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생각 '출근해야지?'    


새벽 6시 30분 아침 기상송이 울린다. 더위로 새벽에 잠을 설쳤더니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 점호시간이 빠듯하다. 이불만 대충 개운 뒤 각을 잡고 앉았다. 멀리서 메아리치듯 교도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각방 차렷! 1방!'

'하나, 둘, 셋, 넷 번호 끝!'

'2방!' '하나, 둘...'  

'10방' "하나!"

내 거실 점호가 끝나면 경직된 근육이 풀린다. 내 뒤로 거실은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교도관이 '쉬어'라는 구령만 기다릴 뿐.

'각방 쉬어!' 점호가 끝났다. 양치하고 세수부터 해야지


밥통에 밥이 없다. 입맛도 없다. 밥이 있어도 먹었을까 싶다. 계란 프라이, 김, 김치만 차려도 설거지 거리가 생기는데 먹는 기쁨보다 치우는 귀찮음이 더 크다. 진수성찬이라도 아침은 거르게 된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터덜터덜 집을 나서 회사로 향한다.


'차라리 식빵이라도 주면 좋겠다.' 미디어에서처럼 교도소에서 콩밥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침은 입맛이 없다. 아침부터 라면이나 소시지 같은 구매물을 먹기도 좀 부담스럽고 그렇다. 이따 출역 나가서 믹스 커피나 마셔야겠다. 사소에게 내 몫은 빼고 담으라고 했다. 오늘 하루를 보낼 짐을 챙기고 출역 준비를 했다. CRPT(기동순찰대)의 지시에 따라 작업장으로 향했다.


출근하자마자 보안 청소로 향했다. 보안 청소에 출역 중인 수용자 중 도서실 도우미로 일하는 P, J, N을 불렀다. 그런데 J가 없다. 어제 타 교도소로 이송 갔다고 한다. 어제 잘 가라고 인사까지 했는데 깜빡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새로운 수용자가 출역할 때까지 며칠 고생 좀 하게 생겼다. 어차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는 미리 했어야 하는데... P는 신문을 분류했다. N은 P가 분류한 신문 개수를 세고 카트에 실었다. 원래대로라면 J가 옆에서 신문 카운팅을 하면 P가 카트에 실었는데 J가 없으니 혼자서 두 명분을 하나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J 일을 했다. 셋이서 할 일을 둘이서 하면 그만큼 작업이 늦고 실수가 생긴다. 분류부터 배달까지 오전에 끝내야 하는데 자칫 실수로 오 배달이라도 했다간 조간신문이 오후에 배달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공과에 오자마자 부장님이 왔다. 잠깐 숨만 돌리고 도서실로 향했다. J가 이감을 가는 바람에 아침 신문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부장님이 도와주셨다. 신문 새는 것에서부터 신문을 쌓은 카트를 미는 것도 도와주시니 J의 공백을 느끼지 못했다. 나랑 N이 신문을 나르고 카트까지 밀려면 힘들겠다 싶었는데 부장님이 다행히도 J의 몫의 일을 해주셨다. 아침 작업이 무난히 끝났다. 부장님도 아침 작업을 빨리 끝내는 게 더 속 편하다 생각하시나 보다.


점심시간이 됐다. 오늘 메뉴는 제육볶음이다. 담장 안은 밖에서 하루 한 끼도 안 되는 가격으로 세끼를 먹을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끼니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담장 안 직원들의 큰 장정이다. (직원식당과 수용자 취사장은 다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직원 식당 아닌 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꽤나 먼 곳까지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려면 왕복 30분은 걸어야 한다. 소중한 점심시간을 아끼려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고 맥심모카골드를 마신다.


점심시간이 됐다. 오늘 메뉴는 치킨가스다. 반찬은 좋은 데 국이 부실해 보여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점심은 치킨 가스고 저녁은 만두 강정이니 오늘은 먹는 즐거움이 있을 거 같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지만 맥심 모카골드로 만족해야지. 내년이면 마실 수 있겠다.


오후 작업이 시작됐다. 원래대로라면 P가 편지를 분류하고 N이 석간신문을 분류하고 J가 등기 영수증을 분류해야 하는데... 분류심사과에선 인원 충원이 쉽지 않다고 한다. (분류과 일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수백 명의 수용자가 있는 곳에 인력난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쩔 수없이 체념한다. 며칠은 내가 해야지...

"P, 영수증 줘봐"


오후 작업이 시작됐다. J가 하던 영수증 분류를 부장님이 해주시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해주신다. 부장님이 J 일을 대부분 맡아 주시니 오늘도 평소처럼 일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석간신문과 편지, 영수증을 실은 카트도 밀어주신다. 나와 N은 발걸음 빨리 배달만 하면 돼서 참 다행이다. 카트 밀고 신문 배달에 영수증 챙기는 거 까지 신경 쓸려면 정신없을 것 같았는데 정말 다행이다. J를 대신할 수용자 오기 전까지 부장님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오늘 작업을 무사히 끝마쳤다. P와 N을 다시 보안 청소로 보냈고 그에 맞춰 폐방 시간이 됐다. 공장, 훈련소, 운영지원과에 출역 중인 수용자들은 폐방 시간에 맞춰 검신을 받고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다시 각 거실로 들어간다. 모든 수용자가 각 거실로 들어가면 취사장에서 저녁 식사를 각 사동으로 배식한다. 나도 퇴근 시간이 됐기에 집으로 향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지금 주말이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다. 집에만 있는 건 너무 힘들다. 저녁은 또 무엇을 해 먹을까.


오늘 작업을 무사히 끝마쳤다. 그리고 주말이 시작됐다. 가만히 방에 앉아 책도 보고 쉬면 좋지만 내일부터 이틀을 거실에만 있는 건 너무 답답하다. 그나마 토요일에 30분 운동하는 것이 실낱같은 희망이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내일은 무엇을 할까 넷플릭스도 지겹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 책도 지겹고 법무부에서 틀어주는 보라미 방송도 지루하다.


당신과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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