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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이야기발굴위원회
May 23. 2021
학문으로 신앙하기(회계학)
하나님은 내 주인인가 빚쟁이인가
부제: 달란트를 홀랑 날렸다면 종은 어떻게 되었을까?
거의 기부하듯이 우리에게 돈을 주시는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만약 누군가 내 주머니에 자금을 넣어준다면 그들은 회계기준에 따라 둘로 분류될 수 있다. '자본'을 제공한 주주와 '부채'를 제공한 채권자이다.
전에도 알고 있었던 이 지식을 다시 곱씹으며 문득 떠오른 성경구절이 있다. 그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이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며 종들에게 그 능력에 따라 10 달란트, 5 달란트, 1 달란트를 맡겼다. 오랜 시간 후에 돌아왔을 때, 10 달란트 받은 종과 5 달란트 받은 종은 그 돈으로 사업을 하여 각각 100%의 수익을 거두어 주인에게 보여주었다(바친 것이 아니라 보여주었다). 주인은 기뻐하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일컫더니 "너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라(share)"라고 말한다. 반면 1달란트 받은 종은 원금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것을 고스란히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변명을 하는데 그것을 본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부르며 1달란트 마저 뺏어 10달란트 가진 종에게 줘버린다.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하지 못한 무익한 종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설교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이 말씀에 대해 난 작은 궁금증을 가져왔다. 단지 주인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은 결과에 분노한 것인가?
본문을 기록한 저자 마태는 오늘날의 회계사/세무사에 해당하는 '세리'였다. 그렇기에 회계를 공부하며 내가 갖게 된 관점이 그가 이 비유를 기록하게 된 바와 연결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현대 회계의 '경영의 위탁과 책임범위' 개념이 당시 유대 사회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해 딱 맞게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쉽게도 본문에는 논의를 명확히 하기 위한 한 가지 종류의 종이 등장하지 않는다. 바로 원금조차 까먹은 종이다. 뭔가 해보려고 했으나 역량의 부족이나 외부 환경의 악화로 손실을 보여준 종이 있다면, 그 종에 대한 처분을 비추어 그 주인이 화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추측이 필요하게 되었다.
내 생각엔 주인이 1달란트 묻어놓은 종에게 화가 난 것은 그의 의도 때문이다. 그 종은 주인을 빚쟁이(채권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원금 손실을 '두려워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나에게 사업자금이 (첫 문단에서 설명한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주어졌을 때 사업 결과가 좋지 않으면 빚쟁이는 나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렇기에 빚을 져 사업을 할 때는 돈을 못 갚는 상황이 매우 두려워진다.
반면 자본금을 제공한 투자자, 주주(주인)는 경영실패로 원금의 손실이 발생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지급했다고 본문에 언급되어있는) 주인의 판단이 있었고, 그 판단의 결과는 주인이 지게 되어있다.
자신을 채권자로 보는 종의 태도에 분노한 주인은 "채권자가 될 거면 은행에 돈을 맡겨(예금자는 은행을 상대로 채권자가 된다) 이자를 받았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질책하는데서 주인은 자신을 채권자로 생각하는 태도를 질책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이 본문은 맥락을 통해 살펴보면, 천국이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설명하시며 인용하신 비유이다. 이 비유 앞에는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오는데... 내용인즉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가운데 다섯은 잠에 빠져있고, 다섯은 기름을 미리 준비해뒀다가 밤중에 찾아온 신랑을 맞이한 다섯만 결혼식에 가게 되고 잠들었던 다섯은 문전박대당한다는 내용이다.
달란트의 비유는 천국이 어떤 곳인가에 대해 앞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와 대구를 이룬다. 열 처녀의 비유가 신랑이 오는 것 앞에 준비하지 않는 '권태'를 의미한다면, 달란트의 비유는 주인(종의 인식 속에선 빚쟁이)이 언제 와서 나에게 맡긴 돈을 내놓으라고 할까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불안'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마음으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정신의학자인 스캇 펙 박사가 "행복은 권태와 불안 사이 어딘가에 있으며, 우리의 삶은 그곳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라고 언급한 바와 일치하기도 한다.
신앙생활에 열심히인 신자들은 자칫 하나님을 주인이 아닌 빚쟁이로 생각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내가 뭔가 결과를 내서 물질적, 사회적 인정과 같은 소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행위(?)'를 하지 못하면 그가 우리를 책망하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또 회계원칙에 따르면 채권자(빚쟁이)는 회사의 경영에 개입하지 못한다. 이와 연결할 때,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태도는 하나님께 뭔가 (나의 성공을 통해 영광 돌린다는 명목으로) 바치지만 실제 내 삶의 주도권은 내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된다.
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것은 천국의 비유라고 했지 천국을 얻는 비결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천국은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삶을 주신 이유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포인트를 이 땅에서 적립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의 삶을 연습해 익숙해지라고 주신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주신 것으로 무엇인가 남겨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내 삶을 책임지시는 가장 현명한 투자자를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