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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무협> 속 '독고구패'와 '테스형'

챗GPT의 출현 앞에 인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사내아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자신만의 영웅이 다른 아이들의 영웅보다 더 강하다고 언쟁을 벌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의 욕구를 해소해 주기 위한 종합선물세트 어벤저스와 같은 작품들도 접할 수 없었던 때라 아이들은 다들 나름의 논리를 들어 자신의 영웅의 장점을 설명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 영웅은 또한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것이기도 하기에 그의 강함으로 스스로의 자아에 보상해주고 싶은 심리인지도 모른다.

동물원이 오픈했어도 끝나지 않는 논쟁

그런 영웅에 대한 숭상심리는 나의 경우에 상당히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 결과 나는 무협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학생이었고, 이를 각색한 드라마와 커뮤니티 활동까지 하곤 했던 마니아였다. 특히 작가 김용의 작품 관련 커뮤니티가 활발했는데, 거기에서는 서로 다른 소설들의 등장인물 중 누가 더 강하다는 듯한 열띤 토론이 아주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나도 꽤나 열심히 참여했던 것을 보면 난 내 자아에 그런 식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심리가 유독 강했던 게 아닌가 싶다.

검마 독고구패에 대한 팬아트.

내피셜 가장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김용 무협 세계관에서는 검마 '독고구패'였다. <신조협려>에서 양과에게 수련 일지와 자신이 쓰던 현철 중검을  남겨준 인물이기도 하고, 동방불패로 알려진 <소오강호>에서 주인공 영호충이 익히는 독고구검을 창시한 인물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등장은 하지 않고 "아 예전에 그런 분이 계셨지"정도로만 회자되는 인물이다.


그의 별호 독고구패는 '패배를 구한다'라는 의미였다. 그는 외적 보상을 가져다주는 승리가 아닌, 자기 무공의 부족함을 깨우쳐줄 패배를 찾아 강호의 고수들과 겨루기를 원했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고쳐나가는 내적 성취를 원했기에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기를 원했다.  여정의 끝에서 그는 더 이상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이가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매우 애석해한 그는 마침내 강호를 떠나 은거한다.

나훈아 옹의 내피셜 최고의 히트곡 테스형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도 독고구패의 서사와 상당히 비슷하다.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그의 지혜에 대한 탐구 여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친구가 아폴론의 신전에서 받아온 신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이는 없다"라는 내용을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세상의 수많은 지성들과 전문가들을 찾아가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한 답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더욱 현명한 이를 찾을 것이라고 믿으며.


소크라테스는 그 여정의 끝에서 그 신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 모두는 무지하다. 다만 자신을 제외한 모두는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우친 테스형'이 인간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라는 역설적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남에게 많은 것을 질문하고 듣는 여정 속에서 수많은 지혜를 얻게 되었다. 마치 독고구패가 패배를 원할수록 더욱더 승리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갔듯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려 할수록 더욱 지혜로운 자가 되어갔다. 그 후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는 인간의 영혼이 존재하며, 그것이 영원불멸함을 논리적으로 변증 해내는 훌륭한 지성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챗GPT라는 인간을 닮은, 그러나 연산능력은 압도적으로 뛰어난 AI기반의 기술이 나타나 또 한 번 인류를 놀라게 하고 있다. 어쩌면 인류의 많은 영역이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지 모르겠다.

테스형의 "세상이 왜 이래"에 대한 답변

그럴수록 인류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AI의 출현 전에도 인류는 무지했고, 신체 능력은 다른 종들보다 열등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직시했기에 지혜를 축적하는 여정을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AI는 우리가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줄 수 없으며,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결론을 내기 힘들어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빨리 파악하고 좋은 질문을 던져줄 수 있다면 AI를 통해 또 한 번 인류의 최종적 목적지 가까이 도약할 수 있다.


종종 스스로의 짧은 식견을 허울뿐인 말로 포장하고,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만 애쓰기 쉬운 내가 명심해야 할 시사점이 아닐까? 스스로 젊은 날의 부족함을 인정하자.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깨우쳐주는 오늘 하루의 오글거렸던 내 모습이 언젠가 독고구검 같은 나만의 독문절기로 숙성될 그날을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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