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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남 Apr 13. 2022

내 모든 인생을 함께한 너, 돈가스

내 뱃살에 지분 45%, 그래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맛

아주 어렸을 적, 아마도 대여섯 살 즈음 얘기다. 우리 가족은 가끔 손에 손을 잡고 시내 가운데에 자리 잡은 경양식집으로 외식을 가곤 했다. 좁고 어둑어둑한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지하에 네 명 정도가 앉기 딱 좋은 테이블이 듬성듬성 자리해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하얀 와이셔츠에 조끼를 입은, 근사한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시 메뉴를 살펴보(는 척하) 시고는 매끄럽게 주문을 이어갔다.


"돈가스 주세요."


유년기, 내 생에 최초의 '칼질' - 경양식 돈가스


어머니는 다양한 식기 사용에 능숙한 분이시다. 숟가락 젓가락을 잘못 잡았다고 혼내시는 일은 전혀 없었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숟가락을 어떻게 사용해야 더 예쁜지, 젓가락질을 어떻게 해야 음식을 안 흘리는지, 그 행동의 결과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날 어떻게 평가하게 하는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재주도 있으셨다. 특히나 어머니의 포크와 나이프 사용 방식은 어린 나이의 내게도 너무 우아하게 보여서 꼭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물론 어린아이에게 칼은 위험하기 때문에 부모님은 도통 허락을 안 해 주셨다. 결국은 아버지가 우악스럽게 미리 다 잘라놓은 돈가스 토막을 포크로 찍어먹어야 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버지의 다이아몬드◈ 컷팅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자르는 과정에서 소스가 죄 범벅이 되니 축축하기도 하고, 별로 멋있단 생각도 안 들었다. 내 건너편에 앉은 어머니는 왼 손에 든 포크로 돈가스 끄트머리를 쿡 찍은 다음, 오른손에 든 나이프로 먹을 만큼 슥슥 깔끔하게 썰어서 한입에 쏙 넣는데 왜 나는 못하게 하는지.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포크와 나이프의 단독 사용 허가가 떨어졌다. 어머니는 내 손에 식기를 쥐어 주면서 안전한 사용법을 재삼 당부하셨다. 심지어 단무지에 예행연습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텀 없이 바로 시작된 돈가스에의 챌린지! 그제야 눈앞에 놓인 돈가스 한 접시가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하얗고 동그란 접시. 한가운데에는 넓고 얇은 돈가스에 뜨거운 소스를 끼얹어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다. 접시 한쪽에는 양배추를 채 썰어 수북하게 올린 샐러드, 네모나고 길게 썰어 장작처럼 얹어 둔 단무지, 빙수에 들어갈 법한 설탕물에 절인 과일 조각 몇 개, 마카로니 샐러드 약간.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왜 얹어두었던 것인지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생 파슬리 한토막(아버지가 이건 먹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파란색이라 안 먹은 거 아니다).


포크 등 부분을 위로 올라오게 해서 왼손에 쥐고 조심스레 돈가스에 다가간다. 어머니를 한 번 쳐다보고 돈가스의 한 구석에 포크를 푹 찔러 넣으면 파삭하는 감촉이 느껴졌다. 성인용 나이프는 무거웠지만, 엄지와 검지, 중지 사이에 잘 파지 해서 고기에 조준한다. 칼등에 얹은 검지에 지긋이 힘을 주면서, 아래로 푹 찌르는 것이 아니라 대각선 아래 방향으로 밀면서 힘을 준다. 당길 때는 접시를 긁지 않게 힘을 빼고, 다시 밀 때만 살짝 힘을 주는 것이 포인트. 몇 번 슥슥 밀어보니 내가 딱 원하는 크기의 돈가스가 포크에 꽂혀 올라온다. 갓 썰어낸 돈가스는 소스 범벅이 된 아버지의 그것과는 달리 바삭하고 고소했다. 금세 씹어 삼킨 뒤 다음 한 조각을 자르려는데, 앞자리에 앉은 동생이 결국 칼을 역수로 쥐어 처키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의 우월감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오직 돈가스만큼은, 여전히 한 조각 한 조각 잘라내어 가며 먹게 됐다. 남이 썰어놓은 것은 아무래도 만족감이 덜한데, 그때의 칼질이 내 어린 시절 가장 우아한 경험이기 때문일까?


소년기, 맘먹고 하던 외식에서, 흔히 먹는 식사로 - 냉동 돈가스


국민(초등) 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한동안 내 인생에서 돈가스는 자취를 감추었다. 몇 년 정도 조부모님 댁에 나 홀로 의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편식이 매우 심했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밥상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 투성이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개시하고 난 뒤에야 돈가스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돈가스의 신기원, 냉동 돈가스였다. 식단에 돈까쓰(오타 아님)가 쓰여 있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나도 기뻐서 펄쩍 뛰었으나, 식판에 달랑 한 조각 배식해준 것은 내가 알던 그것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허락도 없이(!) 케첩을 잔뜩 뿌려 범벅을 해놨기 때문에 내심 엄청 속이 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나는 이미 그 어린 나이에 튀긴 것은 바삭해야만 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었다.


이후 매우 싼 가격에 김밥을 파는, 사람이 죽은 뒤 간다는 매우 아름답고 행복 가득한 곳을 비롯해 주변 분식집 등에서도 돈가스 메뉴가 하나 둘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용돈이 적었기 때문에 내 돈 주고 사 먹기는 어려웠지만,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간다거나 하면 짐을 들어드리는 대가로 한 번씩 먹을 수 있었다. 역시나 어릴 때 먹던 그 근사한 비주얼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자주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이 됐다. 적어도 바삭하긴 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찍먹'의 도를 깨우치며 그날의 기분에 따라 조금 더 바삭함에 집중하는 것도 가능해졌으니, 떨어진 음식의 퀄리티를 소소한 식음(食飮)의 기술로 커버했다고나 할까.


조금 더 지나서는 돈가스가 굉장히 흔해져서 집에서 직접 튀겨먹는 일이 잦아졌고, 간혹 느슨해진 요식업계에 긴장감을 주겠답시고 사람 머리통보다 큰 돈가스나 두께가 5cm 가까이 되는 돈가스 따위가 등장해서 내 혀와 위장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신선한 시도였지만, 솔직히 대부분은 요리를 빙자한 폭력에 가까운 것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칼을 찔러 넣으면 육수가 주루루룩 쏟아져 튀김옷이 기름덩어리가 되는 돈가스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춘기, 사랑이 떠난 자리는 다른 사랑으로 채웁니다 - 일본식 돈가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가스를 사랑했었지만, 전반적인 퀄리티가 떨어져 버린 것에는 역시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이 있었다. 예전에 돈가스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제 이건 그냥 단순히 고기 튀김이 아닌가? 시간이 흐를수록 돈가스에 가졌던 애정이 식어버렸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관성적으로, 의무감에,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딴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며 주기적으로 마주했지만, 예전과 같은 환희나 기쁨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슬슬 내 곁에서 떠나보내야 함을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아아, 언제였던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 늘 거닐던 장소에서 새로운 간판을 마주쳤다. 일본식 돈가스라니? 예전의 그것을 닮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홀린 듯 간판을 따라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을 기억한다. 내가 사랑하던 여리여리한 돈가스와 달리 두툼한 몸집에, 상당히 기름기 있는 외양을 하고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얻는 손끝의 쾌감 같은 것도 없이, 이미 서걱서걱 잘려 뽀샤시한 속살을 흘깃흘깃 내비치고 있었다. 실키한 그레이비소스로 드레스업 하지 않고, 그저 본연의 자신을 맛보라는 듯, 하지만 원한다면 찍먹도 준비되어 있으니 안심하라며 날 이끌었다.


홀린 듯이 모둠가스를 주문하고서,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흥분에 젖어 젓가락을 움직였다. 아작, 바사삭, 우물우물하기를 몇 번. 아아, 이것이 등심인가. 조금 작지만 짙은 살결과 향기를 자랑하는 이것은 안심?


성장기의 청소년은 갑작스레 찾아온 만남에 잠시 정신을 놓았다. 쉼 없이 손과 입을 놀리며 돈가스를 탐닉하고, 간혹 탱글한 탄력을 자랑하는 새우나 포슬포슬하고 고소한 생선가스와의 외도를 즐기기도 했다.


그 뒤로 상당히 오랫동안, 내가 경양식 돈가스에게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로스카츠(등심가스)나 히레카츠(안심가스)에 정착한 것도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레카츠와 돈부리, 카츠샐러드, 카츠샌드위치, 카츠나베 등을 연이어 만나게 됐기 때문이었다. 사춘기가 막 지나고 성인에 가까워진 내 위장에 방탕한 시간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83kg을 찍었다. 도로 빼는 데 한세월이 걸렸다.


청년기, 감당 못할 변화에 휩쓸리며 - 돈가스 전국시대


성인이 되어 대학을 지나 사회생활도 제법 했다. 이 세상엔 돈가스만 있는 게 아니란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으나, 지갑이 두꺼워지기 전엔 만나기 어려운 귀하신 몸들이 제법 많았기에, 나 스스로 주머니를 채울 수 있게 된 뒤에는 온갖 다양한 요식 경험을 하기 바빴다. 인간과의 애정사(!)가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나의 식비 지출은 늘어났는데, 예나 지금이나 미식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저 안 먹어본 음식을 찾는 것에 집중한 세월이었다.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나를 즐겁게 해 주었던 일본식 돈가스와도 결별한 지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금 돈가스와 재회하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생전 처음 보는, 돈가스인 척하는 다른 무언가가 여기 있었다. 껍데기와 냄새는 분명 내가 아는 그것인데 속 알맹이가 싹 바뀐 이것을 과연 돈가스라고 불러도 되는가 의심했다. 가격도 이상했다. 돈가스 한 접시가 짜장면에 탕수육 세트를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금액이라고?


중간 정도로 익혀서 회백색과 핑크빛이 감도는 통 안심 돈가스는 그 육향이 남다른 면모가 있었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니 육즙 때문에 튀김옷까지 축축해져서 내 마음과 젓가락질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소스 보다도 소금이 더 잘 어울리는 이것은 돈가스라기보다는 고기 튀김을 최대한 근사한 요리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 것에 가까웠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맛있어서 조금 분했다.


등심 돈가스는 내가 잘 아는 외양을 하고 있는데 지방 함량이 높고 일부러 비계 부분을 함께 튀겨서 묘한 식감을 더해놓았다. 많이 먹으면 물릴 맛인데, 소금, 겨자, 와사비, 그레이비소스 등을 다양하게 준비해서 지루하지 않게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쓴 것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단점을 숨기고 있었다.


묘한 감상에 빠진 채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내가 너무 오랫동안 돈가스를 멀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안 먹고살았던 것도 아닌데, 늘 '클래식하게 먹었던' 것이었다. 조금 검색을 해 보니 스테이크에 쓸 고기에 돈가스 옷만 입혀 색깔만 나도록 튀긴 뒤 도로 고기에 구워 먹는 규카츠라거나, 일부러 찾아서 사기도 힘든 특등급의 이베리코에서도 좋은 부위만 사서 만드는 돈가스 같은 것도 있었다. 성인의 용돈으로 사 먹기 부담스러운 것들이었다. 심지어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경양식 돈가스나 일본식 돈가스도 다양한 소스나 가니시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새롭고 맛있어 보였다. 자극적으로 보였다. 돈가스의 외양을 한 전혀 다른 음식도 있었고, 엉뚱한 것을 튀긴 뒤 '가스'만 붙인 것도 많았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세상에, 돈가스를 먹고서 세상이 변했다는 걸 깨닫다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음식들이 참 많이 변했다. 양 푸짐하고 싼 것이 최고라고 외치던 시절에도 고급 음식은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고급 음식은 저 멀리 '천상계'로 가버리고 '하계'에 남은 음식들은 좁은 시장을 차지하려 엄청난 경쟁을 하고 있다.


단순히 정갈하고 예쁘게 담은 음식으론 부족해서, 풍성하고 화려하게 플레이팅도 해 줘야 한다. 내가 즐기던 음식의 조합이 있는데, 새롭고 신박한 것이 있으니 이걸 먹어보라고 해서 꾸역꾸역 먹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맛은 있었지만). '트렌드'랍시고 트러플 오일이나 치즈를 왕창 때려 넣은 것을 먹으면, 맛있는 경우도 있지만 적잖은 경우엔 젓가락 내려놓고 조용히 집에 가고 싶었다. 좀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냐.


음식에 꾸준한 변화가 생기고 새로운 맛을 만들어가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가 너무 과해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생각보다 피로도가 어마어마하다. 인★를 찍고 싶다는 친구가 있어서 산더미같이 높이 쌓아 올린 전골을 먹으러 갔는데, 숨이 한 번 죽고 나니 높이가 오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고기 몇 점을 들춰보니 안쪽은 전부 다 숙주였다. 전골을 먹으러 왔더니 숨이 팍 죽은 물에 빠진 겁나 매운 숙주나물만 가득한 상황. 내가 이걸 돈 주고 먹으러 왔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내 인생 내내 서로를 향해 '질척'거려 온 돈가스. 먹을 때마다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보니 먹고 싶을 때마다 먹기는 좀 부담스러운 사이가 됐지만, 그래도 가끔 얼굴 보지 않으면 아쉬워서 종종 식사 자리를 함께한다. 오랜 세월 뱃속에 그 지분을 쌓다 보니 내 뱃살의 45%쯤은 돈가스가 만들어 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멀리할 수는 없는 내 인생의 동반자 같은 것이 됐다.


하지만 돈가스마저도 경쟁을 피해 가지 못해서, 몇몇 선구자들이 성공한 사례를 따라 다양한 변화들이 이루어진 것이 보인다. 나도 적잖은 가게에 들러서 다양한 메뉴를 먹어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강남에서 자주 8천 원쯤 주고 사 먹는 일식 돈가스나 분당의 한 골목에서 가끔 사 먹는 9500원짜리 경양식 돈가스보다 만족스럽지는 않다. 아저씨 나이가 되어버려서 그런 걸까?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맛이 일관되지 않고, 겉보기는 화려한데 음식으로서의 완성도는 미묘하며, '하이엔드'라고 부르기에는 원재료가 비싸고 맛이 더 좋을 뿐, 어떤 특별난 요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가격이 3~4만 원 하는 돈가스까지 그러했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경쟁을 피할 순 없겠지만, 너무 경쟁이 격하다면 한 발 물러나 남의 싸움을 구경하며 관망하는 선택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에서 이기겠다고 변화를 너무 격하게 주다 보니 상당히 엽기적 맛의 음식들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모든 이가 원래 이 음식에 기대하던 매력마저 지워버리는 것이 정말 메뉴 개발인 걸까?


외양과 근사한 SNS 사진 한 장에 목숨을 거는 것. 강남 성형외과나 사진 보정 프로그램만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참 개탄스럽다.


지금 이 시기가 그저 과도기이기만을 진심으로 바란다.

돈가스야, 너만은 변하더라도 제발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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