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다]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서...
바깥 날씨가 봄인지 겨울인지 헷갈릴 만큼 지난 주말은 봄날처럼 따뜻했고, 오늘은 또 겨울처럼 차가운 날이다. 이럴 때 감기 걸리기 딱 좋은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뉴욕에 살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 것과 반대급부로 온갖 미디어를 비롯한 공연을 많이 보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뮤지컬을 많이 보게 됐다. 한국에서도 가끔 뮤지컬이나 음악회를 가긴 했는데 뉴욕에 와서는 정말 심심하고 할 일 없을 때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게 뮤지컬 시간표가 되어버렸다. 뭐랄까 매너리즘에 빠져 완벽히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로 샤워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뮤지컬을 보고 나면 집에 돌아오는 내내 OST를 흥얼거리면서 좀 더 열심히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노래를 좀 더 잘했으면... 내가 조금 더 튼튼하고? 예체능에 재능이 있었다면 뮤지컬 배우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힘들고 기나긴 연습의 시간 동안은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힘들겠지만, 무대 위에서 하루하루, 한 편 한 편 공연을 마칠 때 오는 성취감... 뿌듯함... 보고 있는 나도 전율이 느껴지는데 직접 연기하는 배우들은 얼마나 짜릿할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모두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봤다.
Truth, Beauty, Freedom & Love
2001년에 개봉한 영화였다. 개봉할 때는 못 봤던 것 같고, 한참 후 대학교 다닐 때 비디오로 한번 봤던 기억이 있다. 뮤지컬 영화가 익숙하지도 않아서 그랬는지 영화를 볼 당시에는 큰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약속에 관한 이야기... 그런 사랑을 경험해보지도 못한 숙맥이었던 나는... 일순간 지루한 영화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이 되어서 나타났다. 시작한 지 6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한국에는 소문? 이 많이 나지 않은 것 같은데... 감히 올해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두 번 봤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은 이제 와서야 이해를 할 수 있게 됐다. 화려하고 지루한 음악 영화였던 것 같은데... 여전히 화려하고 신나지만 대신 슬픈 사랑 이야기였구나... 뉴욕에 와서 본 여러 뮤지컬 중에서 최고라고 손꼽을 수 있는 뮤지컬이다(물론 내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뮤지컬을 보고 여운이 가시질 않아 다시 영화를 찾아봤는데 아니 영화는 또 왜 이렇게 잘 만든 거지? 하는 생각이... 매너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그리고 경험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영화를 다시 보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혹시 기회가 되어서 뮤지컬을 보게 되면 아... 이걸 이렇게 풀어냈구나... 하고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2019-2020년대에 새로 시작한 뮤지컬이다 보니 그 사이 20년간 유행했던 노래들이 다시금 편곡되어서 온통 OST에 녹아 있다. 내가 미국 사람은 아니라 정확하게 그 느낌을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에서 유행하는 온 탑(온라인 탑골) 노래들이 영화 OST 사이사이에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될까 싶다. 실제로 공연을 보는 와중에 분명 처음 보는 뮤지컬 일 텐데 노래를 따라 하고 어깨를 들썩 들썩이는 관객들이 많았다. 나도 팝송에 조금 조예가 깊었다면... 더 재미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다.
원작 OST 중간 중간에...
We're young(Fun), Royal(Lorde), Children Of The Revolution(Violent Femmes), Money-Tha's What I want(Barrett Strong), Burning Down the House(Talking Head), Diamonds Are Forever(Shirley Bassey), Superfreak(Rick james), Shut Up and Dance(Walk The Moon), Firework(Katy Perry), Bad Romance(Lady Gaga), Toxic(Britney Spears), Sweet Dreams-Are Made of This(Eurymics), Only Girl-In the World(Rihanna), Chandelier(Sia) 등등의 노래가 자연스레 녹아있다.
사랑 또는 사람 이야기...
할 말이 참 많은데 말로 풀어내기가 참 쉽지 않다. 사람과 사랑 사이에서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고, 주기도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이제껏 켜켜이 쌓아왔다. 결과론적으로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어딘가 목적 없이 헤매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태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관조적인 상태로 추억을 부정하지도 상처에 빠져서 허우적대지도 않는다. 어쨌든 내가 살아온 순간순간들이었고, 하나하나 다 소중한 기억이고 그 시간을 살았던 기억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싶다. 다 내 잘못인데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뭣하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언젠가부터 크게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싫지 않으면 삶의 동반자를 만나 남들 하듯 결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명한? Satin이라면 Christine이 아닌 Duke를 택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최근에 어쩌다 보니 어떤 책을 읽었다. 내가 좋아했던 배우 장진영 님이 떠나고 남긴 남편의 책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었는데, 그 책을 보고 또 물랑 루즈를 보고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가 먹었던 마음은... 그건 스스로를 속이고... 상대방도 속이는 것 같아서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굴에 감정이 너무도 쉽게 드러나서 마음에 없는 일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탈이 나도 단단히 난다. 나도 언젠가는 여주인공 Satin처럼... Come what may... I will love you... until the end of time... 할 수 있기를... How wonderful life is now you're in the world... 안되면 뭐 혼자 사는 거지 뭐! 아직도 철이 없지만 뭐! 알 게 뭐람...
감수성이 짙어질 것 같은 밤이라 얼른 맥주를 마셔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OST를 흥얼거리고 있다. 압생트가 있었으면...
2020. 1. 15 -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고...
p.s 1 추운 겨울 실내에서 놀기엔 뮤지컬만 한 것이 없다.
p.s 2 남주는 Aaron Tveit... 나랑 동갑인데 엄청 유명하신 분...
영화 '레미제라블' 남주 친구!?라고 하면 모르시려나...
p.s 3 한국에서 출발한 우편물이 사라졌다. USPS(미국 우체국)는 그냥 망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