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 봄이 오나 봄

[뉴욕에 살다] 코 끝에 봄...

by 뉴욕에 살다

오늘은 알람시계를 맞추지 않은 채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새소리가 너무 일찍부터 들린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를 썼던 시간이 벌써 2개월이나 지났다. 체감상으로는 이 주일 조금 넘게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2개월이 훌쩍 지났다. 봄은 언제 오냐고 징징댔었는데 그 사이 봄이 왔다. 글을 뜸하게 쓰다 보니 사실 이제 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게 더 맞는 시기인 것 같다. 내가 산책하는 공원의 앙상한 가지들은 초록색 잎이 슬쩍 난다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밀림처럼 우거지기 시작했고, 이사를 온 이후로 내내 벚꽃나무로 의심하고 있던 집 앞의 나무는 기대에 부응하듯 벚꽃을 팡팡 피워줬고, 비가 내리고 벚꽃이 지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겹벚꽃이 핑크색 꽃을 소담스레 피워내서 한동안 예쁜 마음으로 집 앞을 나설 수 있게 해줬다. 또 한 번의 소란스러운 비가 내린 후에 꽃은 다 떨어졌지만 초록 초록한 나뭇잎은 남겨뒀다. 집 앞을 나설 때 코끝이 시리던 차가운 향기의 겨울은 이제 완전히 지나갔고, 햇살 받은 땅에서 나는 그런 봄 냄새가 나는 계절이 왔다.

내가 산책을 하는 공원이다. 하루가 다르게 들꽃이 피고 지고, 나뭇잎이 모양을 바꿔가고 매일매일 감시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산책을 가고 싶은데 자주 가지 못하고 있다. 맨해튼에서 멀리 살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공원이 가까워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언젠가는 이런 맑고 파란 하늘이... 사진 속에서도 느껴지는 맑은 공기가 그리울 날이 오겠지... 지금 걷고 있는 이 시간이 미래의 언젠가 낮잠을 자다 꾸고 있는 꿈이어도 좋을 것만 같다.

제주에서 1년을 사는 동안 숲길을 많이 걸었다. 그때 길가에 있는 나무들, 길가에 아무도 모르게 피어있는 풀꽃들, 이름 모를 꽃들... 일 년이 지나는 동안 대부분 이름을 알아냈는데 여기 나무들은 또 전혀 다르고 새롭다. 아마도 이름을 알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이제 한 계절을 거의 겪어가고 있어서 내년에는 이 자리에 있는 나무가 어떤 꽃을 피워내는지 어떤 향기를 내뿜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상상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다.

날씨 좋았던 어느 날 센트럴 파크에 가봤다. 수많은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뉴욕 맨해튼 센트럴 파크에서 달리기를 하는 거라고 하던데... 나는 집이 멀어서 달리기 복장을 하고 오긴 어렵고 근처에 왔을 때 무작정 산책을 해보곤 한다. 생각보다 넓어서 산책을 하면 목이 무척 마르게 마련... 결국 맥주 한 잔을 마시러 가는 게 거의 마무리처럼 되어 버렸다. 딱 지금 요맘때가 좋은 시간 같다. 날씨는 좋고, 무척 덥지도 않고, 건조하고 선선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고 샌드위치라도 사서 공원에 누워서 몇 시간이라도 책을 읽고 오면 좋을 그런 날씨... 그런 시간이다.

유명하지만 사람들은 또 잘 모르는 맨해튼의 명소! 센트럴 파크 나무 위로 보이는 미드타운의 건물을 보고 있으면 진짜 뉴욕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가끔 내가 살고 있는 뉴욕이 그냥 집 같은 기분이라 여기가 뉴욕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나는 퀸즈에 살고 있다). 현실 자각을 위해 가끔 혹은 자주 맨해튼에 나갈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봄꽃 이야기...


이사 온 이후로 내내 의심했다. 경주가 고향인 나는 벚꽃 감별사?처럼 나무만 봐도 이게 벚꽃이다?라는 걸 알 수 있다고 자부해 왔다. 뉴욕에 도착하고 집을 구할 때 이 나무가 벚꽃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계약을 했고, 겨우내 앙상한 가지를 보며 뉴욕에도 봄은 오는가?를 의심하며 긴긴 겨울을 지내다 보니 어느샌가 봄이 왔고, 약속한 것처럼 팝콘 같은 벚꽃을 피워냈다. 사진 속 녹색 지붕 집에 살고 있다. 현관으로 나왔을 때 보이는 벚꽃이 너무 좋아서 출근을 늦게 하기도 했고, 퇴근하고 한참을 멍하니 계단에 앉아 있기도 했다. 더 좋은 건 이층 창밖으로 벚꽃이 하늘하늘 하는 게 너무 좋아서 창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의자를 샀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기에 짐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벚꽃 아래 차를 세워두면 참 좋은데 꽃이 지는 시기에는 피해야 한다는 교훈을 매일매일 얻고 있다. 아휴... 겉으로는 반짝반짝 깨끗해 보이지만 꽃가루의 습격으로 먼지가 앉은 것처럼 뽀얗고 노란 가루가 매일 차를 덮고 있다.

어렸을 때는 (경주에 살았다) 벚꽃이 피는 계절은 꽃이 보고 싶어서 차로 20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는 학교를 가끔 걸어 다녔다. 물론 토요일 일찍 학교가 끝났던 날에만 걸어 다녔다. 벚꽃은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일주일만 지나면 하얗게 피었던 벚꽃들이 떨어지고 잎이 나기 시작했다. 또 항상 만개할 것 같으면 거센 비가 한차례 몰아치고, 금세 떨어져 가는 벚꽃에 항상 아쉬움을 느꼈었다. 나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겨우내 꽃눈이 생겨나고, 막 움트기 직전의 꽃봉오리가 생겨날 때에도 한 송이 한 송이 피기 시작할 때도, 하얗게 만개를 할 때도 물론이고, 점점 꽃잎이 핑크빛으로 변해가다 꽃잎이 떨어지고 초록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나서도, 그리고 마지막 꽃잎이 다 떨어지고 짙은 초록의 잎이 날 때까지도 벚꽃 나무가 참 예쁘다. 나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핑계를 대본다...

센트럴 파크에는 하얀 왕벚꽃보다는 핑크색 겹벚꽃이 훨씬 많이 피어있다. 조금 더 오래가고, 온 세상이 핑크 핑크 한 기분도 좋다. 누군가는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누군가는 입맞춤을 하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다 흐르는 땀을 닦고 쉬어가고, 또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평화롭다.

겹벚꽃이 만개를 한 어느 날 운동을 하고 돌아왔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순간적으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에 선명하던 창밖 풍경이 수채화인지 혹은 유화인지 모를 그림을 그려놓은 듯 경계가 모호해졌다.


내 평생을 살아왔던 곳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멀찍이 떨어져 살다 보니 시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보였던 관계들도 핑계지만 시간과 거리에서 오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어느 순간 모호해지고 소원해졌다. 소나기는 지나가게 마련이다. 지금은 쏟아지는 비에 차에서 내릴 수도 없지만 언젠가 비가 그치고 소란스러운 빗방울 소리가 잦아들고, 시야가 선명해지는 그런 순간이 다시 돌아오면... 불분명한 경계도 모호한 관계도 다시 선명해지기를...


(나무에 눈이 생겼다 @.@)

그리고 여름...


아직 여름은 아니다. 가끔 아침 기온이 6-8도로 내려가면서 쌀쌀한 아침이기도 하고, 비바람이 부는 날은 전기장판을 틀어야 할 만큼 아직은 여름이 오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봄과 함께 초록 초록한 나뭇잎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한눈팔고 경계를 늦춘 사이 밀림처럼 나뭇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달리기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아! 뉴스라면 운동을 시작했다. 우선 피티를 받기 시작했는데 3주째 잘 나가고 있다. 매번 비싼 돈을 내고 토하기 직전까지 운동을 하면서... 아... 내가 지금 왜?라는 질문을 1초에 수백 번씩 되뇌며 땀을 흘리고 있다. 왜 운동을 하게 되었냐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체력이... 처음엔 그림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폈는데 막상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나오는 곳에서는 지쳐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와중에 모네 '수련'은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바로 다음날 Gym에 등록을 했다. 혼자 살아서 아파도 누가 돌봐 줄 수도 없으니...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커피는 언제나 좋다. 여유로운 브런치 타임에 커피는 꼭 마셔줘야 한다. 카페인에 가끔 민감하긴 하지만 오후 3시 이전까지는 커피를 자유롭게 마시기로...

나는 이렇게 아직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이 혹은 세월이 어느 순간 너무 빠르게 느껴지고 무거워져 가는 삶의 무게에 가끔 힘들기는 하지만 이렇게 그냥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점점 무거워지는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몸도 마음도 운동을 하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2019. 5. 18

- 뉴욕의 봄


p.s 글을 쓸 때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다. 지금 이 글은 '공원에서 - 유희열'을 들으면서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5. 보통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