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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보통의 하루

[뉴욕에 살다] 생일이 뭐 대수인가...

by 뉴욕에 살다

어제는 오랜만에 쉬는 하루였다. 대체 겨울은 언제 끝나는 것인가... 지난 9월에 와서... 11월에 첫눈을 맞았는데 아직도 겨울이다. 3월 하고도 중순이면 꽃 피고 봄바람이 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도 겨울옷은 무척이나 무겁고, 짧은 시간이라도 밖에 나가 있다 보면 차가운 공기에... 무거운 옷에 금세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일 년에 적어도 두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한겨울 귀가 떨어질 것 같이 추운 날에는 한여름이 얼마나 따뜻하고 고마운 계절인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녹아내릴 것만 같은 여름 그리고 열대야에 몸을 뒤척이는 한여름밤에는 또 추운 계절이 얼마나 산뜻한 계절인가 찬양한다. 겨울이 좋아 여름이 좋아?라는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는 척하지만 겨울에는 여름이 그리고 여름에는 겨울이 좋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


겨울이 너무 긴 뉴욕에서 하루하루 규칙적으로 하는 건 출근해서 하는 일밖에 없었다. 이러다 우울증이 도질 판이라... 오래간만에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오늘은 '관광객 모드'라고 마음을 먹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서는데 하늘이 참 맑고 햇볕이 나른하게 따뜻했다.

뉴욕에 살면서 6개월 동안 브루클린에 가보질 못했다. 늦잠을 자고 아침을 챙겨 먹고 나오는 바람에 애초에 '관광객 모드'는 실행 불가 상태로 일종의 모드 전환으로 '현지인 모드'를 시전하기로 했다. 오늘은 브루클린에서 딱 두 가지만 하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 오랜만에 한가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 일이 큰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매일매일 커피를 마신다. 미국에서도 스타벅스 골드멤버를 유지하면서 매일매일 카페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상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자주 내려 마신다. 이런 일상 속에서 수혈을 하듯 섭취하는 커피 말고... 향기를 맡고 섬세한 맛의 차이도 느껴가며... 온몸 깊숙이 커피 향이 짙게 배는 그런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 이런게 진짜 커피다. 여기 잔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직도 일에 적응을 하는 중이지만 그 와중에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할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아주 조금은 구분할 수 있게 된 것 같고... 아이디어를 쥐어 짜 낸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리고 여유가 일을 완성시켜 준다는 걸 어렴풋하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커피 맛이 좋다. 낮은 볼륨은 아니지만 천장이 높아서 그런지 책 읽기에 거슬리지 않은 음악들... 적당한 조명에... 온통 흘러넘치는 커피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여유를 그동안 왜 모른척했을까...

그렇게 책을 읽었다. 어려운 책이라 읽는 둥 마는 둥이긴 했지만 그 와중에 와닿는 말들이 꽤나 있어서... 생각의 바다라고 하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Default Mode Network라고 해서 사람이 멍 때리는 시간이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격하게 공감한다. 이런 음악... 이런 향기... 편안한 의자... 이 소파를 사고 싶어졌다.


으잉?ㅎ

커피는 사실... 두 번째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전에 적당한 시간이 무르익길 기다리는 차원에서 마셔줬다고 해야 할지... 카페를 나와서 지하철을 타고 내린 역의 풍경이 너무 좋았다. 멀리 보이는 맨해튼... 지금 내가 뉴욕에 살고 있는 기분이 딱 이 정도의 풍경이다. 그게 뭘까? ㅎㅎㅎ

그건 그렇고 결국 오고야 말았다. 언젠가부터 뉴욕에 가면 가봐야지!!! 생각만 했던 브루어리~ 미동부의 브루어리답게 Hazy 한 뉴잉글랜드 스타일 IPA가 대다수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선택 장애가 발생한다면...

조금씩 많이 마셔보는 수밖에... 5미터 떨어진 양조장에서 만들어서 바로 옆의 탭으로 마시는 맥주의 맛이다. 이름하야 산지 직송!

그리고 계속 마시는데... 다른 맥주도 다 좋았지만... 저기 까만 맥주는... 이름이 Andromeda라는 16.3%의 맥주였는데 코코아를 마시는 기분이라 홀짝홀짝 마셔대다 보면 정말 안드로메다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맛이었다. 그렇게 반쯤 취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런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했고, 딱히 더 외롭지도 않았고, 딱히 더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덜 특별하지도 않은 그런... 이렇게 나이에 숫자가 하나 늘어만 간다.


2019. 3. 20

Brookl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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