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다] 본격 7개월 만에 쓰는 글
어느 날인가 창밖으로 보이는 노을이 예뻐 보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쉬었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마치 오늘은 그래야 하는 날인 것처럼 창문을 닦았다. 여름 내내 열어두었던 창문인데... 밖의 방충망도 바깥 풍경을 위해 떼어 버렸다. 그렇게 겨울이 되어버렸다. 날벌레가 들어올까 걱정이 되어 문을 자주 열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마음속에 낀 희미한 막이라도 벗겨낸 것처럼 눈이 시원하니 참을만한 것 같다.
예쁜 노을을 방해하는 전깃줄은 처음에는 내심 불편했는데 가끔 전깃줄로 빠르게 달려가는 다람쥐와 같은 눈높이에서 눈을 마주친 이후로는 이것 나름대로 또한 정겹다.
시나브로 겨울이 와버렸고, 어느새 머나먼 타국살이도 일 년이 훌쩍 넘었다. Happy Holidays... Merry Christmas... 혼자 나누기에는 벅찬 미국의 명절들도 대충 다 지나갔고, New year's Eve가 남아 있을 뿐이다.
어느샌가 SNS를 하는 것에 대해서 극심한 피로감이 생겼는데 또 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니까 쌓여가는 수다스러움을 풀 곳이 없어서 결국 이렇게 일기장에 쓰는 것 마냥 끄적거리고 있다. 딱히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뭔가 이야기할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일상에 대한 소고랄까... 일기랄까...
그래서 그동안 뭘 하고 살고 있느냐... 하면 간간이 미술관에 가고, 어쩌다 할인표가 나오면 음악회나 뮤지컬을 본다. 영화는 보통 자막이 없어서 액션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기도 하고, 주로는 집에서 넷플릭스를 본다. 책은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음으로 인한 부작용은 들어오는 글이 없으니 나가는 글도 없는 무의 상태가 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언어도 한국어도 영어도 뭔가 어중간한 0(영)개 국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봄부터 여름 내내 열심히 했던 운동은 여러 번의 출장과 한동안 감기를 오래 앓은 이후로 다시 0(영)의 상태로 돌아와 버렸다. 만드는 게 큰 고통을 주었던 근육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물론 다시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속의 계획은 세워둔 채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상태이다. 날이 추워지니까 움직이기가 이렇게 싫은 건지... 회사에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오래 일을 하고 집에 가면(보통 직업 특성상 겨울에 근무 시간이 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옷을 갈아입고 거실 안락의자에 앉는다. 핸드폰 충전기처럼 안락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뻗는 순간 방전이 되었던 몸이 그리고 정신이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나마 덜 피곤한 날은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뭔가 먹을 것을 만들어 저녁을 먹고는 씻고 잠이 든다. 더 피곤한 날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느껴지는 불편함과 한기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씻고 침대에서 편하게 잠이 든다.
이렇게 쓰고 보니... 세상 단조로운 하루를 그리고 삶을 살고 있었네...
누군가는 뉴욕에 살고 있는 나를 보고... 화려한 삶을 즐길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는데 생활이 꼭 그렇게 화려한 것만도 아니고 어차피 일을 하는 건데... 그리고 지금 이 나이에 이렇게 혼자서 덩그러니 낯선 땅에서 살고 있음에 현타가 오는데 마냥 부러움의 대상인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요즘 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는 건지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어두워지고 다섯 시면 느낌상 밤 9시는 된 것 같다. 퇴근하고 온기가 없는 집에 가면 분명 초저녁인데 한밤중 같아서... 저녁을 차려먹고 크게 생산성 없는 일을 반복하다 잠이 든다.
일 년 전보다는 많이 익숙하고 편한 도시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길고 긴 겨울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2019. 12. 26
Happy holi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