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식물들, 그리고 나의 겨울 나기.
청아이비가 죽었다.
‘청아이비 키우기’를 검색해보면 잎은 촉촉하게 흙은 건조하게 유지하라는 조언들이 대부분인데,
이게 가장 나를 난감하게 했다. 나름 그렇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잎에는 분무기를 수시로 뿌려줬고,
흙에는 물을 많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시들시들해지더니, 잎들이 하나둘씩 마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래서 물도 듬뿍 줘봤다가, 그래도 차도가 없자 영양제도 꽂아주었다.
햇빛을 너무 못받았나 싶어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어보기도 했다.
얼마 후,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다시 생기를 찾는 듯 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가지들이라도 잘 자랐으면 싶어 이미 죽은 가지들을 잘라냈다.
부디 처음 데려왔을 때의 싱싱한 녹색잎으로 다시 넝쿨을 만들어주기를.. 앙상해진 화분을 보며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전보다 더 심각하게 잎들이 말라가며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끝내 청아이비는 잎파리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은 채 줄기만 앙상하게 남기고 죽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전히 그 답은 오리무중이지만,
언젠가 나는 잎모양이 너무 예쁜 청아이비를 다시금 도전해볼 생각이다.
식물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습도, 온도, 바람, 일조량 등등. 이런 조건들에 비교적 잘 견디는 식물들이 대체로 난이도가 낮고, 갖가지 조건들을 잘 맞춰줘야 하는 식물들이 난이도가 높다.
다행히도 난이도가 낮은 나머지 식물들은 아직까지 잘 자라고 있다. 그동안 새로 들인 친구들도 그런 식물들 위주로 데려왔다.
피쉬본이라는, 생선뼈를 닮은 다육이와 선물로 받은 호접란, 몬스테라, 아레카야자 그리고 콩고.
청아이비를 그렇게 보내고 난 뒤 혹독한 겨울이 왔다.
더 이상의 식물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식물마다 적합한 조건들을 다시 한번 체크 한 후 겨울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추위에 약한 더피고사리와 테이블야자는 거실로 들였다.
아레카야자는 안방에 뒀었는데, 꼬비가 너무나 지대한 관심(?)을 주는 바람에 잎이 좀 훼손됐다. 비교적 추위에 강하다고 해서 안방 베란다로 옮겼다.
대신에 몬스테라를 안방으로 들였다. 고양이한테 해로운 식물이긴 하지만, 다행히 그걸 본인들도 아는지 두마리 모두 건들지 않는다.
호접란은 한달에 한두번 정도 물을 주면 되어서, 남편의 게임방에 화사하게 두었다.
콩고는 풍성한 잎들과 함께 물을 듬뿍 먹고 듬뿍 듬뿍 자라서 보기만 해도 싱그러워지는 식물이다.
따뜻한 온도를 좋아해 거실에 있는 여인초와 잘 어울려 거실 테이블에 두었다.
겨울이 되고 나서 환경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비단 식물들 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했다가,
일주일 내내 피곤한건 문제가 있잖아?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보았다.
겨울에 잠이 많아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체온이 낮아지면서 에너지 절약을 위해 몸의 활동이 감소하고, 휴식과 잠을 통해 체력을 보충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생리적인 현상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 하지만 마냥 겨울이라는 핑계를 대며 애써 노력해왔던 아침 습관을 잃기엔 너무 아까운 노릇이다.
식물들에게 그랬듯, 나에게 환경을 잘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잘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보기로 했다. 집안 구조를 조금 바꿨다.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침대로 바로 가서 잘 수 있게 책상 하나를 안방으로 옮겼다.
씻고, 주방마감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상에 앉아 짧은 일기를 쓰고 책을 읽는 루틴을 실천해보려 한다.
환경 변화의 키포인트는, 우리집에서 가장 포근한 안방에서 편안하고 릴렉스하게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
일터에서 퇴근이 있듯이, 집에서도 자기 전에는 안방으로 퇴근하는 느낌이 들게끔 해보았다.
내 책상 옆에는 몬스테라가 있다.
몬스테라는 줄기가 점점 자라나면서 돌돌말린 잎의 모양이 되고 그것이 펴지면서 잎이 된다.
새롭게 태어난 잎은 쨍한 연두색인데, 바라만봐도 생동감 넘치는 색상이다.
촉감도 기존의 잎들과는 좀 다르다. 뽀득뽀득한 느낌이랄까.
몬스테라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의 내일도 생동감 넘치는 연두색이길 기대한다.
방의 구조를 바꾸고 이 나이트루틴을 실천한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수월해졌다. 심지어 원래 목표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눈이 떠진다.
식물이든 ’나‘든, 섬세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다시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청아이비는 죽었지만, 삶의 지혜를 나에게 선물해주고 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 식물들도 나도, 이 겨울을 잘 보내고 봄에 또 각자만의 예쁜 꽃을 피우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