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의 “HUG"를 들으며 떠오른 단상
현재 나는 대학병동 정신과 1년차 레지던트의 이야기를 기획 중에 있다.
원래부터 인간심리에 대한 관심이 워낙 많았던지라, 언젠가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보통의 메디컬드라마에서 기술적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수술 장면이나 생사를 다투는 응급상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담기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늘 있었다. 그 때, 이런 우려를 날려주는 IP를 평소에 친분이 있던 감독님을 통해 알게 되었고 좋은 작가님을 만나 기획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힘들어도 너무 사람한테 기대지마세요>의 저자 정우열 정신과전문의는 ‘원래 모든 인간은 별로다’라고 얘기한다. 맞다. 의사든, 누구든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혹은 완벽한 줄 알았던 인간들이 서로 부딪혀가며 성장하는 것이 모든 드라마의 공통점일터. 우리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정신과라는 과의 특수성 때문에 마치 정신 건강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 같지만 이들도 똑같은 미생이다. 이런 지점을 기획 포인트로 잡고 진행 중이다.
그 날은 이 원작을 소개해준 감독님과 상암동에서 점심식사가 약속되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운전할 때 뉴스나 음악을 듣는데, 이 날은 우리 작품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에 꽉 차 있어서 뉴스 대신 음악을 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코드쿤스트의 새 앨범이 나온 기념으로 그가 프로듀싱을 했던 음악들이 줄줄이 나의 알고리즘을 지배하고 있었고, 차가 제2자유로에 오른 순간 이 노래가 나왔다.
이영지의 ”HUG“(feat. 자이언티&원슈타인).
‘아마 자주 부르게 될 것 같진 않아 지금 이 노래.’
첫 소절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이 노래는 나의 마음을 후벼팠고, 약속 장소에 다다를때까지 반복재생 할 수 밖에 없었다.
예능인과 래퍼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이영지와 학폭 피해자로서 오랜 시간 아픔을 겪은 원슈타인.
래퍼들의 개인적인 사연까지 오버랩이 되어서였는지는 몰라도 굉장히 진정성 있게 들렸고, 마음을 울렸다.
‘미안해 사실 난 lonely 모두가 날 다 좋아한대도 의심하곤 해
이걸 듣는 너는 날 안 싫어해도 돼 어차피 내가 날 제일 싫어하니까’
누구나 한번 쯤은 이런식으로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싫어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업계에 들어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해명할 시간도 채 없이 의도치 않은 오해들로 사람들이 떠나가고 또 비난 받으며 홀로 그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밤이 많았으니까. 우리는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으면서도 어느새 정신 차렸을 땐 내가 나를 비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내가 잘했다면, 완벽했다면,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의 화살을 계속해서 쏘며 혐오의 감정으로 치닫는다. 실수나 잘못과 상관없이 나는 나 존재 자체로 빛나고 소중한데 말이다.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또 동굴로 빠지게 되는 나다.)
그리고 그 때 자이언티가 부르는 후렴구가 나오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안겨 있어 그냥 안겨 신경 쓰지 말래 괜찮다 하네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나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어서
안겨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처럼 넌 이게 필요했다고’
앞서 혐오했던 내 자신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이 노랫말을 들으며, 위로를 넘어선 감동이 밀려왔다. 마치 내가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달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인생은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 사이에서 끊임없이 허우적대는 과정의 연속이지 않을까 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지난하게 그 망망대해 어딘가에서 허우적대지 않을까. 하지만 또 그 고된 과정을 거쳐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솔직한 가사를 쓰고 싶었던 건 솔직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어서
또 내 목소리도 싫어서 누가 지적할 때면 외면하고 싶어서 괜히 핏대를 세워
연습해 볼게 살아가는 법을 딱 한 번만 나를 꽉 안아준다면
너의 위로는 나의 두 번째 어깨가 돼 튼튼한 부목이 되니까 부디’
이 노래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며, 결국엔 ‘everybody needs a hug’로 나아간다.
그 허우적댐에서 결국 나를 꺼내주는 건 곁에 있는 존재들, 내 일상을 단단히 지켜주는 루틴들, 책과 꿈, 음악과 사랑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과 나에게 상처받으면서도 또 타인과 나에게 위로 받는다. 그 무한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나라는 생각이 든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으며 이 작품 속 주인공도 ”HUG“의 노랫말과 같다고,
우리의 인물들도 드라마 속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끝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진정한 정신과 의사가 될 거라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아마도 작품의 탄생까지 이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드라마 속 주인공과 똑같이 성장할 것이다. 나 역시도.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그 양극단에서 끊임없이 허우적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