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생명과 공존하는 행복
10월. 1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왔다.
이사와 가족들의 집들이로 인한 정신없는 추석 연휴가 지나고, 고요하게 맞이하는 아침.
새로 이사 온 우리집은 북한산과 창릉천이 앞에 보여서, 탁 트인 뷰를 자랑한다. 귀가 즐거운 새소리는 덤이다.
게다가 창릉천 앞에는 비닐하우스가 쭉 연달아 있는데,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골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 풍경에 없던 여유도 괜스레 생기는 것 같다. 도심과 시골 사이에서 맞이하게 되는 아침이 좋다.
어제는 식물들을 데려왔다.
이번 여름, 김금희 작가의 <식물적 낙관>을 매우 인상 깊게 읽고 이사를 가면 식집사에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사실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나는 식집사로서의 자질과 자격은 거의 빵점에 가깝다. 그동안 저 세상으로 보낸 화분만 여러개.
그래도 이 좋은 기운을 가진 집에서라면 나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달라진 나로 인해 식물들도 잘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잘 자란 식물들은 우리 집을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성사동의 ’미스터허브식물공방‘에서 9개의 식물을 데려왔다.
(초보 식집사 분들에게 이 곳을 강력 추천한다. 젊은 사장님이 직접 재배해서 판매하는 거라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고, 친절하시다.
내부도 예쁘게 잘 되어있고, 사장님이 돌보는 귀여운 고양이들과의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다)
두 고양이에게 해롭지 않은 친구들을 골라야 해서 이리저리 검색해보고, 고심해서 데려온 식물들이다.
더피고사리, 여인초, 아악무, 청아이비, 테이블야자, 행잉식물 디스키디아 그리고 다육이들 .
우리집의 톤앤매너는 우드 앤 화이트다. 전체적으로 목가적인 느낌의 가구들을 배치하는 동시에 모던한 소품들을 두어서 재미를 줬다.
중형 크기의 여인초를 거실의 창가 쪽에 있는 턴테이블과 마샬 스피커 옆에 두었는데 매우 잘 어울린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거실에 소파를 놓는 대신
긴 테이블을 두어 카페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여인초를 두니 완성된 느낌이다. 큰 식물이 주는 생기가 참 좋고, 조화롭다.
귀여운 다육이들은 테이블 위에, 그리고 책장 위에 하나씩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식물들은 안방의 작은 베란다로 향했다.
두 식구들의 호기심(특히 꼬비)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식물들이 집에 있으니, 새로운 아침 루틴이 생겼다. 분무기로 잎을 촉촉하게 해주고, 밤새 꼬비의 괴롭힘은 없었는지 체크한다.
특히나 주말 아침에는 여인초의 잎사귀들을 닦아주기로 했는데,
오늘 해보니 손에 닿는, 물을 머금어 차갑고도 촉촉한 큰 잎의 그 생생한 감촉이 참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말 루틴으로 더할나위 없는 루틴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 커튼을 걷어 햇빛 샤워를 한다.
그 다음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바람 냄새를 맡으면 그렇게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새로운 공기들이 식물들에게 전달되고, 광복이와 꼬비에게도 날마다의 새로운 냄새를 선사하겠지.
그리고 나서 커다란 거실 테이블에 앉아 눈 앞의 탁 트인 뷰를 보며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의 맛이란.
돌봄이라는 것에 대해 예전에는 귀찮고 시간을 뺏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광복과 꼬비를 돌보면서 지친 일상 끝에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마도 앞으로 우리집 식물들은 활기차고 여유있는 하루를 시작할 힘을 줄 것이다.
살아있는 다양한 존재들과 공존하는 것은 이런 행복을 주는 구나.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다. 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여전히 똑같은 일상이겠지만
눈을 뜨면 초록빛으로 반겨주는 식물들 덕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