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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Oct 25. 2020

친구야. 우리 이제 조금씩 멀어지는 걸까?

직선에 대하여

  늦은 오후. 광역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한참을 달려 경기도 어느 정류장에 멈췄다. 친구의 집들이 날이다. 빈 집에 초대받은 날이라 말해야 더 맞는 걸지도 모른다. 친구의 아내는 지인들과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 허전함을 대학 동기들이 채우고자 우리는 모였다. 서울에서, 수원에서,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점들이 선이 되었다 다시 한 점에 모였다. 1년 만이다.


  그래도 집들이라고 저마다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왔다. 한 친구는 근사한 와인을 선물했다. 뭘 이런 걸 준비했냐면서도 P는 즐겁게 받았다. 또 한 친구는 향초를 선물했다. P는 역시 고마워했다. 나는 빈손으로 왔다며 P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맛있는 거 준비했냐며, 시골로 오니까 공기가 역시 좋다며 장난을 쳤다. P는 웃으며 걸쭉하게 욕을 했다. 한참을 웃고 나서 나도 오늘 함께 마실 양주 한 병을 내밀었다.


  집들이는 즐거웠다. 대학 시절 늘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수업보다는 점심에 뭘 먹을지를 더 많이 고민했고, 점심보다는 밤에 어떤 술집에 갈지를 더 많이 떠들었던 녀석들이다. 4,900원짜리 고깃집 구석에 모여 앉아 좋아하는 여자 아이 이야기로 밤을 덥히던 우리들이었다. 동기 여자애 하나를 친구 둘이 좋아해 서먹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 여자 아이가 경제학과 3학년과 사귀면서 우리는 우정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 얘기들. 이번에도 같은 말로 시작했다. 언제나 반복되는 그 시간의 이야기들. 안주는 그걸로 충분했다. 술 먹고 엉엉 울던 K의 대학 2학년 봄날 이야기가 상에 올랐다. 교육학개론을 C 받는 인간이 여기 있다며 날 놀리는 친구들의 말도 곁들이기 좋았다. 그때와 지금의 우리가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취할수록 더 빨리, 더 많이 술잔을 비우는 일일 것이다. 빈 술잔을 빠르게 채우며 우리는 얼굴이 붉어진 서로를 알 수 있었다. 했던 말을 반복했다. 술상을 조금 어지럽혔다.


“P야. 너 그런데 이사 언제 간댔지?”


  친구 하나가 P에게 묻는다. 그 물음은 우리를 스무 살에서 서른 중반의 아저씨로 돌려놓았다.


“어? 내년 4월인데,
여기 전세랑 시기가 안 맞아가지고
우리가 전세를 구해주고 나가야 될 거 같애.”


  전세로 작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P다. 그때 자가로 괜찮은 지역에 전세를 끼고 집도 사두었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갭 투자다.


“야. 거기 지금은 많이 올랐겠다?”


“에이. 그게 내 집인가. 다 은행집이지.
빚 엄청 껴서 산거야.
은퇴할 때까지 갚아야 해.”


  P는 정석대로 답을 했다. 겸연쩍어하는 P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꼭 맞는 톱니처럼 돌던 우리의 대화는 그때부터 조금씩 헛돌았다. 이가 여럿 빠진 채 굴렀다.


  어른들의 대화였다. 직장과 아이와 집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이 있고, 누군가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한 친구는 아이가 있고, 우리들은 아이가 없다. 어떤 친구는 자기 집을 마련했고, 다른 친구는 오르는 전셋값을 걱정했다.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모였던 점은 다시 선이 되어 같은 폭으로 나아가며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예전의 우리는 같았고,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 조금 슬펐다.


“안주 떨어졌는데 안주나 좀 사러 나가자.”


  P는 한 마디로 머쓱함을 정리했다. 그것으로 끝. 잠시 바람을 쐬고 온 우리는 다시 스무 살의 그때를 이야기하며 한참을 웃고 취하다 헤어졌다. 나도 광역버스에 자리를 잡았다.


“B야.”

  작년 언젠가 P가 내게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우리 둘이 거나하게 취한 날이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라 생각했던지, 내가 재테크니 정치니 꽤 떠들어댔던 걸로 기억한다. P가 내 말을 끊으며 이야기했다.


“B야. 우리끼리 만날 때는 옛날 얘기만 했으면 좋겠어.”


“응...”


  그때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추억만으로 사는 건 아닌데. 새로 같이 쌓아가는 시간도 있는 건데. 아내에게 ‘Mr. 레트로 보이’라고 친구 흉을 봤다.   


  그런데 P의 맞는 것 같다. 우리끼리 함께할 때는 나도 이제는 옛날이야기만 하고 싶다. 철없는 건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철없이 나이 먹었다는 걸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아 졌다. 우리가 긴 인생에서 잠깐 교차하고 지나쳤던 여러 직선들이었다는 걸 떠올리는 건 속상한 일이니까. 마치 영원히 한 점에 모여 있는 듯, 그렇게 스무 살의 우리인 채로 만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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