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
애기한테 짜증 좀 내지마
두번째 오해다, 그것도 명백하게. 나는 그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다가 아이용품을 찾는 남편의 물음에 이불을 박차고 나왔을 뿐이다. 첫번째 오해와 동일하다. 두가지 다 남편이 내 얼굴이나 상황만 봤더라도 진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집에 오면 아이와 스마트폰, 혹은 컴퓨터, 혹은 티비를 보는 남편.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눈을 맞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식사를 할 때도 눈을 보자고 대놓고 이야기해도 내가 보지 않은 순간에 나를 봤다면서 자연스럽게 거절을 한다.
너가 옷을 없어보이게 입으면,
남들이 나를 욕해
얼마 전 남편과 여름 옷을 몇 벌 사러 가면서 들은 말이다. 마음껏 고르고 입어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타박인가. 평소에 좀 꾸미고 다니라는 이야기일까. 내가 창피하다는 이야기인가.
나를 그저 나로서, 그저 예쁜 나를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 할 순 없었나. 나도 꾸미지 않고 싶어서 이렇게 몇벌의 편한 옷으로 지내는 건 아니다.
이제는 옷가게에 가면 자연스럽게 66사이즈를 권하는 직원의 말을 듣는 나도 날씬하고 예쁜 시절은 있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더라도 웃는것만으로도 눈빛이 반짝거려서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던 때. 나는 그 시절을 너와 함께 했었다.
얼마 전 만삭 때 빼두었던 결혼반지를 조심스럽게 끼워봤다. 살이 찐 손가락에 어찌어찌 들어갔다만, 그날 저녁 아이의 살갗에 스쳐서 나는 다시 반지를 뺄 수 밖에 없었다.
활동하는 아이를 쫓으려면 길든 짧든 치마를 입기가 쉽지 않다. 3센티짜리의 낮은 굽도 허용할 수가 없다. 아직 어린 아이의 피부에 묻을까봐, 얼굴을 부비부비 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려면 화장도 진하게 할 수가 없다. 평소에 관리하기 쉽게, 6개월마다 한번씩 하는 파마나 매직이 내 스스로 선택하는 치장이다.
스스로 선택한 구질구질함을 내벗어야하는걸까. 외벌이로 서로가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꼭 그래야 하는걸까. 가끔은 왜, 내 편은 없이 스스로의 편만 이 집에 모여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그게 아님을 알면서도.
아직도 안자고 있어..
자다 깨서 물 한잔 마시러 나온 남편이 묻는다. 곧 잘거야, 짧은 대답에 한숨을 푹-쉬며 문을 닫는다. 내가 왜 새벽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는지 관심이나 있을까. 그냥 블로그나 하나보다 싶을게다. 말 없이 그냥 놔두라고, 하는 남편이라면 진짜 관심이 없을수도 있고.
한 때는 서로 떨어져있었던 시간이 아쉬워 꼭 붙어있곤 했는데. 이제는 누가 아이와 놀아주는지 눈치싸움 끝에 승리자가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그만큼 지쳐있는걸까.
대화를 걸어도 일방적인 듣기만 하는 남편에게 나는 때때로 소심한 반항으로 침묵을 선택한다.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대화를 걸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차, 첫 번째 오해.
남편은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나는 문으로 장난치는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가 문을 여닫으면서 장난치다가 스스로 문고리에 찧었다. 남편은 나를 타박한다, 애랑 실랑이를, 왜 벌이냐면서. 한창 수다중인 나를 아이가 막았다고 내가 화풀이라도 하는 양 말한다. 아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내 감정 탓인가. 순식간에 눈물이 나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두 번째 오해후에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하지말라고, 내가 너에게 성내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제서야 슬그머니,미안하다면서 화해를 건넨다.
나는 이틀째 소심한 침묵을 선택하고 있는 중이다. 건네는 말에 대꾸는 하지만, 먼저 말을 걸진 않는다. 남편과 나의 언어의 대부분은 일방적인 내 수다였으므로, 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이와 주고받는 대화만 즐겁게 이어질뿐이다.
화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기분이 풀린것도 아니다.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굴 수도 없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뿐이라 침묵을 선택중이다.
나도 때때론 엄마가 아니라, 누군가의 창피스러운 옆사람이 아닌 예쁜 여자고 사람이고 싶어서. 나도 나로서 빛이 나는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