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
임신은 축복이야
30년을 넘게 딩크족으로 살았으나 원치 않게 임신하게 되어 우울증에 걸린 한 여자에게 A가 말했다.
- 왜 우울해? 그냥 받아들여. 임신은 축복이야.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라고.
임신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고 있는 한 여자에게 B가 말했다.
- 뭘 그렇게까지 해? 그냥 받아들여. 임신 못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A는 정상인, B는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할테지.
임신을 원하는 여자가 아이를 갖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해서 애를 가지려고 하는거야?’라는 말은 입밖으로 절대 꺼내지 못하게 하는 우리 사회가
원치 않은 임신에 괴로워하는 여자에게는 어쩜 그리 쉽게도 축복을 강요하며 마음대로 축하하며 그렇게 싫었으면 왜 피임을 제대로 안했냐는 말 따위를 그토록 태연히 뱉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임신하고 싶었으면 왜 진작 병원에 가보지 않았냐는 말 따위 하지도 못할 거면서.
임신 후 우울한 마음을 토해낼 때면
- 축복이야
- 감사해야지
- 너무너무 축하해
- 정말 행복한 일이다
- 아가가 듣는다 그런 말 하지마
- 남들은 못 가져서 힘든데 배부른 소리야
- 어디가서 그런 말 하지마 욕먹어
마치 나는 수만 명의 민중들이 보는 가운데 화형대에 올라 형을 기다리고 있는 마녀가 된 것 같았다. 전혀 원치 않은 일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하라고 강요받다니. 이런 말들은 나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결국 나는 어느샌가 그들의 요구에 맞춰 행복한 척을 했고, 밤마다 홀로 우울감과 싸워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