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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크맘 May 14. 2021

딩크족의 혼전임신, 그 우울감

생각보다 더

나는  절대  낳아.

이 세상에 태어나 인지라는 것이 생긴 후로 유일하게 변치 않았던 나의 다이아몬드 같은 신념 하나, 아니 어쩌면 바람 하나.


그 신념과 바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생각보다 너무 쉬운 일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산모님! 4주차예요”


처음보는 환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무조건적인 축하를 건네고 있는 저 의사선생님에겐 이게 참 별거 아닌 일이겠구나 싶었다. 내가 전혀 바라지 않던 일을 왜 마음대로 축하해버리는 거지?


말도 안 되는데, 그럴 수가 없는데.”


그 의자 위에 누운 여성들이 대게는 보이지 않는 반응에 아차싶었나보다. 조심스럽게 물어오던 의사선생님은 무슨 죄였을까.


아...혹시 산모님...원치 않으셨거나 안 좋은 상황이신가요...?”


밖에는 예비신랑이 애타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보는 이에 따라 나는 퍽 재수없는 사람이었겠지.


“아...아니요. 밖에 남자친구 있어요. 제가 딩크족이라...좀 당황스럽네요.”


기억도 안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반강제적으로 다음 진료일정을 잡고 아직 아무것도 없는 초음파 사진을 받아 멍하니 진료실을 나섰다. 결혼하면 아이를 갖고 싶어했던 남자친구는 연애초부터 알린 내 단호한 딩크족 선언에 나를 존중한다며 알겠다고 했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소식이 내심 기뻐보였다. 본인은 기를 쓰고 참고 있었다지만.


남자친구에게 안겨 멍때리고 있는 동안 산부인과에서는 마음대로 나를 산모로 등록하였다. 신부가 되기도 전에 산모라니. 왜 이런 일이 나한테 벌어진 걸까. 무엇을 잘못한 걸까.


그날부터 한동안 나는 밤마다 눈물로 베갯잎을 흥건히 적셔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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