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귤을 따고 포장 및 배송 작업을 한다고 한다. 10년 전 호주를 다녀온 이후로 귤은 처음이다. 아니, 호주 이후 어떤 농작물이든 직접 수확을 하는 경험이 처음이다. 이미 한번 경험해 본 일. 귤 따기는 자신이 있으니 일단 시작을 해본다. 호주에서 보던 나무들보다 전부 키가 작아 귤을 따기가 아주 수월하다. 다만 여긴 캥거루 백이 없다. (캥거루 주머니처럼 앞으로 메는 가방) 대신 끈을 연결해놓은 바구니가 있다. 귤을 따서 열심히 바구니에 담는다. 손으론 귤을 따고 입으론 궁금증을 해결한다. 혹시나 무농약인가 물어보니 농약을 사용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노지 귤은 상품성을 위해 농약을 사용하는 것 같다.
상품성이 좋은 농약 귤을 열심히 따고 있는 나
실제로 며칠 뒤 GJC에서 기르고 있는 무농약 귤밭에 일을 하러 갔는데 그곳의 귤은 전부 까만 반점들이 있어서 상품성이 없는 못난이 귤들이었다. 아이러니다. 맛도 좋고 우리 몸에 좋은 귤이 못난이 귤이라 팔 수가 없다니. 따먹어보니 정말 이 귤이 더 맛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 밭의 귤들은 각 10kg씩 부모님들께 보내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50kg만 제외하고 전량 폐기했다.
다시 돌아와서 이곳에서도 GJC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같이의 가치. 벽에도 붙어있었던 글귀가 있었다. "혼자서는 100평도 힘들다." 같이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다 같이 귤을 열심히 땄다. 귤이 대략 20kg 정도 들어가는 노란색 박스를 컨테나라고 부르는데 팀원 8명 +팀장 1명 + 농장 사모님 = 10명이 다 같이 달려들어 약 5~6시간 동안 대략 70컨테나를 땄다. (상품용이 아닌 파치까지 포함)
우리가 수확한 귤밭 전경
차량에 선적한 귤들
차량에 선적한 귤들을 싣고 GJC에서 운영 중인 알뜨르 마켓으로 왔다. 이곳에서 귤을 분류하고 포장해서 송장을 붙여 택배로 보내는 것이다. 귤을 사 먹어만 봤지 이렇게 판매되는 과정 전반을 다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직접 따고 선별한 후 정성스레 포장해서 송장을 붙여 보내는 일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5kg에 얼마, 10kg에 얼마 가격이 최대한 저렴한 귤의 상태를 보고 골라만 먹었는데 내가 직접 이 과정을 전부 경험해보니 사 먹는 가격이 전혀 비싸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가 보다. 알기 전엔 몰랐던 이 귤의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져온 귤들을 선별하고 포장 중인 모습
GJC에서 운영 중인 오프라인 상점
귤을 따는 것까진 수월했으나 무거운 컨테너를 일일이 하나씩 들어서 박스에 옮겨 담고 박스에 담긴 귤을 다시 일일이 선별하고 선별한 귤을 포장 후 송장을 붙이고 그것들을 한 곳에 모아두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전에 작업한 것들은 바로 택배기사님이 가져가시고 오후에 작업한 것들은 그다음 날 출하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사람의 노동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근 몇 년간 입으로만 일해온 나로서는 진심으로 노동의 신성함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10년 전 호주에 갔을 때 이미 영어를 충분히 구사할 수 있었지만 작고 마른 동양인인 내가 호주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육체노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국으로 귀국하며 앞으론 절대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 이후로 계속 지식노동을 통해 입에 풀칠을 해오고 있었다. 당시의 어린 마음엔 육체노동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몸이 힘든 일만 피하자는 일념으로 계속 가르치는 일을 해왔으나 나이가 조금씩 들어감에 따라 육체노동의 가치를 재고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 가치를 오롯이 몸에 새길 수 있었다.
포장을 끝내고 남은 컨테나를 싣는 모습
머리로 알지 못해도 다음날부터 시작된 온몸의 근육통들이 나에게 이것이 노동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내려오며 농업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과연 그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원하게 된 농업학교. 이곳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농업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만 단 이틀의 노동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노동의 신성함도 깨닫고 GJC가 이야기하는 같이의 가치도 깨달았지만 의문점이 생겼다. 이들이 원하는 농가와 협업하는 상생의 가치는 나도 인정하고 높이 사는 바이다. 하나, 이 모든 것이 온전히 굴러가기 위해선 누군가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바로 나와 같은 팀원들이 필요했다. 우리는 일정의 참가비를 내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우리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받았다. 20대 피 끓는 젊은이들에겐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서로 즐겁게 일하고 먹고 마시며 새로운 연을 만들어가는 매일이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다.
산방산과 한라산이 같이 보이던 어느 날
다만, 나 같은 꼰대가 느끼기엔 노동의 대가가 온전히 공유되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로 느껴졌다. 같이의 가치가 농가와 이들만의 것이라면 과연 이 가치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이곳에서 고작 일주일 있었을 뿐이라 아직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의문은 나만의 것이니 잠시 넣어두고 신성한 노동의 시간을 좀 더 느껴야겠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