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루시아 Sep 07. 2023

고양이 가족이 살았‘었’습니다



올여름 우리집 안방 베란다 밑에 고양이 가족이 살았다. 어느 날부터 들리던 아기 울음소리는 아기 고양이 일곱 마리의 숨소리였다. 올여름은 너무 더웠으니까, 길냥이도 제 아이를 기를 공간은 필요하니까. 나도 그만큼은 양보를 한 셈이다. 게다가 우리 집 아래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조심스러웠다. 혹시 내가 버럭 내지르는 소리에 그 꼬맹이들이 놀라진 않을까 딴에는 노력을 했다. 빙 둘러 화단에서 보니 올망졸망 어미 곁에 모여 노는 고양이들이 귀여웠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사람들, 식물 밖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도 그 작은 생명들은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주었다. 화단 밖 인도를 지날 때마다 슬쩍 그들을 보니 누군가 놓아둔 먹이를 먹고 있기도 했고 뛰놀며 조금씩 크는 모습이 보였다. 딱 그때가 좋았다. 그때도 나처럼 우리 집 아래를 기웃거리며 보는 사람은 늘 있었지만.


퇴사를 하고 집순이인 나는 더욱 집을 끌어안고 살았다. 에어컨을 켜 두긴 했지만, 1층에 사는 나는 일하는 동안 보지 못했던 햇살 나부끼는 모습을 보겠다고 커튼을 열어 두는 날이 많았다. 환기를 시켜야 하니 하루에도 여러 번 거실 베란다 창도 열어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보니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고양이 가족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 관심 없는 내가 봐도 귀여운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밤마다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도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저 고양이들이 좀 클 때까지 내가 참지 뭐, 하고 좋은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의 기쁨을 위해 남의 기쁨을 방해하는 걸까.


다음에는 좀 더 대범해졌다. 인도에서, 그러니까 먼발치에서 고양이를 보던 아이들은 우리 집 거실 베란다 앞 화단에서 놀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 구조상 안방 베란다와 거실 베란다가 일자로 나란히 있다. 화단가에 심어둔 나무들 때문에 안방 베란다로 바로 통할 수는 없고, 꼭 거실 베란다 앞을 지나야 안방 베란다 쪽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또, 거실 베란다 쪽 화단 쪽이 더 넓어서 아이들은 꼭 우리 집 거실 앞에서 놀았다. 다른 일에 열중하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들면 환한 낮이라 나만 보이는, 화단으로 쑥 걸어 들어오는 아이들이 때문에 깜짝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동생도, 그러는 아이들에게 못하게 이야기를 잘하라고 했지만 싫은 소리는 나도 싫으니까, 참았다. 저 고양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이 자릴 뜰 테니까 아이들도 그땐 안 오겠지 하고서.


고양이를 보겠다는 아이들의 노력은 밤에도 계속 됐다. 헤드랜턴을 켜고 거실 앞에 웅성웅성, 간식을 사 와서 귀엽다며 먹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곤 그 쓰레기는 본체만체하고 자리를 떴다. 헤드랜턴 불빛이 우리 집 커튼을 통과하길 여러 번, 남편에게 쓴소리를 하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다음 날 우편함에는 편지 한 통이 꽂혀 있었다. 아파트에 있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사람인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곧, 정리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분들이 무슨 잘못이랴. 아무리 이야기해도 남의 집 앞에서 밤낮없이 노는 그네들이 문제인 것을. 그 고양이들을 옮기는 데도 여러 절차가 필요한 것 같았다. 이틀 정도 후에 시청 직원이 고양이들을 모두 데려갔다. 창밖으로 아기 고양이들을 지켜보면서 사실 마음이 좀 아팠다. 그들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즐거움을 생각할 때, 다른 이들이 겪을 어려움을 조금만 생각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고양이들이 자랄 동안의 기간을 견디지 못한 나를 탓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든 겪어보지 않고서는 피해 당사자의 입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관심도 사랑일까. 나를 위해 취하는 많은 것들이 나에게만 이로운 일은 아닐지.. 사랑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다. 아끼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더 살뜰히 보아주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그 이상의 것을 주는 것은 실례가 될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을 고양이들을 보내며 하게 됐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1층의 햇살이 포근함이 될 수도, 피곤함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의 관심에 주저앉아버린 다른 것은 없기를. 안타까움과 함께 더운 여름은 가고 기분 좋게 가을바람이 분다.


지난여름을 넋두리하며 보내고, 나뭇잎이 총총거릴 예쁜 가을을 기다려 본다.



작가의 이전글 내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