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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Oct 05. 2023

선택과 집중



두 달 전부터 몸은 편히 쉬고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시간은 많은데, 나는 하루를 너무도 허투루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쉬면서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은 차치하고 늘어진 신세가 되고 말았다.


추석 연휴가 길어도 너무 길다며 툴툴 대던 중, 미사 전례 봉사자로 독서를 맡은 날이었다. 요즘 유일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콩닥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날 내가 맡은 성경 구절은 아주 길었고 그래도 내 나름 최선을 다하여 봉독하고 내려왔으나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이 툴툴대던 찰나였다. 성당 안이 너무나도 고요하고 차분해서, 내가 분위기를 가라앉힌 건지, 사람들이 집중을 잘했던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싱숭생숭하기만 한 틈이었다. 곧 신부님 복음 말씀 후 강론이 이어졌다. 나는 맨 앞 독서자석에 앉아 있는데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하필 내 앞에서 날개를 털었다. 강론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그 좋은 말씀은 귓등으로 듣고 나는 그만 그 작고 시꺼먼 벌레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말았다. 내 미사 책 사이에서 까만 날개를 털어대던 미물에 나는 온 신경을 빼앗겼다. 날개 터는 작은 소리도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 신성한 미사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신부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내 앞에서 윙윙대던 까만 물체는 본체만체하고 오롯이 강론에만 집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벌레는 온데간데없이 내 시선 밖으로 밀려났다. 중요한 것은 동시에 놓인 많은 일들 중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하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엉뚱하게도 다른 곳에 투영하여 집중해야 할 대상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개의 일이 그렇다. 선택과 집중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만족스럽거나 혹은 후회스러운 선택을 반복하며 지낸다. 어떤 선택에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오래 집중하려면 마땅히 좋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많은 일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선택 과정을 겪는 중이라 여기기로 했다. 시간이 충분하니 늘어지지 말고, 아니 때로는 그런 시간도 즐기면서 지금을 즐겨야겠다. 이름 모를 까만 벌레는 내게 그저 다녀간 게 아닌가 보다. 내 눈에 거슬렸지만, 내 마음에 거슬리는 것들은 해결해 준 모양새가 되었다.


다시 창문을 연다. 창에 비친 나뭇잎 그림자가 딱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오늘 글쓰기 모임이 끝나면 나는 이 계절을 느낄 시간을 선택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걸어볼 참이다. 바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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