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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Nov 04. 2023

뭉근한 우리 사이

떡볶이 모녀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매콤 달콤한 양념에 떡볶이 쿡 찍어 한 입 먹으면 코에 땀이 송골송골 나도 그 땀을 닦으며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새 쑥 자라 나의 떡볶이 친구가 된 나린이. 나린이는 매운 것을 잘 못 먹지만 빨간 음식 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배추김치와 떡볶이를 좋아한다. 7살 때까지는 짜장 떡볶이나 물에 씻은 떡볶이를 먹어서 말랑 쫀득한 떡의 식감을 좋아하는구나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보다 다양하고 간이 된 음식에 익숙해진 아이는 종종 빨간 떡볶이를 찾기 시작했다.



나린이가 좋아하는 떡볶이는 ‘와따요’ 분식의 떡볶이다. 대로변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와따요 분식은 신전이나 응급실, 배떡 같은 요즘 프랜차이즈 맛과는 확연히 다른 동네 떡볶이 맛집이다. 사실 퇴근할 때 저녁하기가 귀찮으면 종종 떡볶이와 순대, 튀김으로 저녁 식사를 대신하곤 했는데, 이제는 끼니가 아닌 간식으로 떡볶이를 찾는다. ‘로데오 떡볶이’를 만나기 전까지 이곳은 4년 넘게 우리 가족의 떡볶이 맛집 부동의 1위였다.


몇 달 전 우연히 들렀다 단골이 된 ‘로데오 떡볶이’는 이름만 로데오지 진주 시내 구시가지에 자리한 분식집이다. 학창 시절엔 그 근방 차 없는 거리 안에 포장마차가 죽 늘어서서 모두 떡볶이며, 순대볶음을 팔았는데 환경 미화 사업을 하면서 그 가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여기 ‘로데오 떡볶이’가 그때 그 맛을 낸다. 물론 떡은 가래떡과 떡볶이 떡의 중간 정도 굵기로 생김이 다르지만 쌀떡인 데다 맛은 얼추 그때 그것과 유사하다. ‘로데오 떡볶이’는 ‘와따요 떡볶이’보다 매운맛이다. 후추 맛이 조금 더 강한데 그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 이 집 떡볶이에 든 어묵은 아주 작고 쫄깃하며 퍼지지 않는데, 얼핏 보니 어묵을 살짝 튀겨 식힌 후에 떡볶이 양념에 풀어 넣었다. 내가 먹어본 떡볶이 어묵 중 단연 최고다. 떡볶이를 먹을 때 나린이는 절대 어묵에 손을 대지 않았다. 몇 개 남은 떡과 어묵을 보면 늘 떡만 자기 거라고 갈랐으니까. 그래서 남는 어묵만 남편과 내 차지였는데, 여기 ‘로데오 떡볶이’에서만큼은 나린이가 떡과 어묵을 가리지 않는다.

‘와따요 떡볶이’는 우리 세 식구의 모두의 맛집이라면 ‘로데오 떡볶이’는 나랑 나린이가 단둘이 데이트를 핑계로 아트박스 쇼핑을 하면서 필수 코스로 추가한 모녀의 맛집이다. 별다른 아니, 양념이 비법일 테라 떡과 어묵만으로도 각자 다른 맛을 내는데 집에서 해 먹는 떡볶이는 도무지 그 맛이 사 먹는 것에 비할 수가 없다. 어묵 국물을 넣고 자꾸 졸인 양념이어서인지, 소량으로 만들어 그 맛을 못 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퇴사하고 가장 좋은 게 평일 오후에 언제든 나린이랑 단둘이 떡볶이를 먹으러 갈 수 있는 것이다. 뭉근하게 갖가지 양념이 잘 졸여진 떡볶이 국물이 투닥거리면서도 서로 감싸 안는 우리 모녀 같기도 하고, 맵싹한 그 맛이 내가 나린이를 혼낼 때 그 매운맛 같기도 하다. 어쨌든 떡볶이는 이제 나와 나린이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말이 나왔으니 가까운 날 다시 시간을 내어 떡볶이 데이트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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