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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 Sep 29. 2022

몽마르트르 청년 화가–파리, 프랑스

20년 전의 추억을 찾아 다시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랐다. 설마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영화 같은 상상을 하며 언덕을 오를수록 심장이 조여 왔다. 딸아이는 나의 상기된 마음을 모른 채 많은 군중 속에서 엄마 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나의 20대, 프랑스 유학은 떠나고 싶다는 다소 충동적인 열망에서 비롯됐다. 도피하듯 떠난 파리에서 나는 오히려 참혹한 외로움에 빠져 들었다. 보수적인 부모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예술에 대한 열망을 채우기 위해 떠난 곳에서 오히려 내적 공허함은 갈수록 더 깊어갔다.

두어 달쯤 흘렀을까? 외로움에 지친 나는 석양이 떨어지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좁은 길 양쪽으로 촘촘히 자리 잡은 카페 안에서 여유 있게 미소를 날리는 주인의 얼굴 하나하나를 마주하며 오르다 보니 길 끝으로 테르트르 광장이 연결돼 있었다. 길가에 자리 잡은 화가들이 사람들을 앞에 두고 각자 자기 스타일로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쪽 어딘가에서 한 청년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손에는 딱딱한 보드판과 종이를 잔뜩 끼운 폴더를 든 채로 어설프게 내게 초상화 그리기를 요청했다.

딱 봐도 주변의 베테랑 화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자리도 잡지 못한 모습이었다. 말을 거는 모습도 갓 입학한 미대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이 나처럼 초라해 보여 짠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에 늘 있다고 들었던 어설픈 호객행위에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돈은 필요 없다며 나를 꼭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냥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모델이 되어 주기로 했다. 지정된 자리도 없었으니 건물 모퉁이에 대충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델로 앉아보니 역시나 나 또한 그의 눈매와 손놀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파스텔로 쓱쓱 그려나갔고, 그림 속의 내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놀라운 것은 그의 스케치하는 모습이었다. 수줍어하며 어렵사리 말을 걸던 모습은 사라졌다. 몽마르트르에 몰려들었던 19세기 화가처럼,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한 고심하는 모습뿐이었다. 그는 왜 나를 그리겠다고 했을까 알 수는 없었지만, 나를 위한 선물을 그리는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내고 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이십  정도 지난 후 그는 올라갔던 눈매가 아래로 떨어지며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게 이름이 뭐냐며 물어볼 때는 다시 수줍은 청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인에 내 이름을 얹기 위해서였다. 내게 무심하게 그림을 건네곤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나에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내 얼굴을 받아 들고 나서야 뒤늦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엉뚱한 내 의심, 불안한 내 상태를 그가 알 리가 없었던 것 아닌가. 그림을 내려다봤다. 그림 속 내 얼굴에, 요즘 아프게 느꼈던 절절한 외로움은 없었다. 두려움이었다. 혼자 비장하게 파리에 왔지만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던 내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사라져 갔고, 몇 프랑이라도 줬어야 했다는 후회만이 맴돌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훌쩍이는 나를 보며 아이는 왜 우냐고 다그쳤다. 그를 만난다면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는 낯설어서 그랬다고. 겁이 나서 그랬다고. 지금도 집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초상화를 볼 때마다 그에게 빚진 마음이 드는 건, 고맙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했기 때문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초상화 그리기(2012년)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 백발의 화가가 딸아이를 스케치하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든다.

                  백발 화가가 그려준 딸아이 초상화(2012년)


                      여행노트에서 꺼낸 추억 이야기 14.

                                 -2012년 열 살이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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