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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금택 Dec 30. 2020

조개 피자의 맛

넷플릭스 <어글리 딜리셔스>를 보며 느낀 위안


7월의 어느 날 아침, 섭씨 40도 가까이 오를 거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하자마자 우리는 코네티컷의 어느 피자집으로 차를 내달렸다. 이곳에서 약 한 시간 반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곳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1)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2)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으며, 3) 간밤에 <어글리 딜리셔스> ‘진짜 피자’ 편을 봤기 때문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글리 딜리셔스>는 뉴욕의 유명 셰프 데이비드 창이 매 회 한 가지 음식이나 테마를 정해서 그 음식에 담긴 문화적, 사회적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는 음식 다큐멘터리다. 총 8회 분량인 시즌1에서는 미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메뉴지만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음식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계 미국인 스타 셰프 데이비드 창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미국 내 인종 문제로 흐른다. (아마 백인 호스트였다면 이런 담론이 불가능했겠지)


그런 면에서 나와 내 파트너가 무더운 여름밤,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지도 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도시로 이사를 왔고, 하필이면 그 도시가 인구비율이 백인 비율이 87%, 아시안 비율은 불과 3%인 소도시였다. 안 그래도 낯선 그곳에서 우리의 존재는 티끌보다 미약한 듯 느껴졌다. 그야말로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된 상태.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뚝 떨어져 매우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그저 더운 날씨를 묵묵히 견디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었고, 우리는 아이를 재운 뒤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놓고 낮에 식혀둔 맥주와 함께 ‘피자 편’을 보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피자는 이탈리아 음식이라는 누구나 아는 정보와 함께 시작한다. 미국에 피자가 처음 들어온 지는 백 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 백 년의 세월 동안 누군가는 피자에 파인애플과 햄을 넣었고, 누군가는 피자의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도쿄에서 ‘참치 고추냉이 피자’라는 걸 만들고 있었다. 보수적인 이탈리아 출신 셰프는 이런 이질적인 것들이 전부 피자가 아니라고 했고, ‘참치 고추냉이 피자’를 창조한 그 일본인 셰프는 피자는 이탈리아 음식일지라도 자신의 피자는 일본음식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여기까지 보고 너무 흥미로워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럼 진짜 피자가 뭐라는 거야?  

여기서 데이비드 창은 미국에 최초로 피자를 들여온 사람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코네티컷 뉴 헤이븐에서 1925년 피자집을 오픈한 프렝크 페페였다. 프렝크 페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조개 피자다. 가게 근처에서 조개를 까던 상인의 권유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조개 피자는 토마토소스, 치즈, 바질이 올라간 ‘정통’ 이탈리아 피자와 달리, 조개, 오레가노, 치즈를 얹는 게 전부다. 미국 피자의 '원조' 격인 이집의 피자를 두고도 정통성 여부를 따져 묻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방인인 나의 눈에 들어온 건 처음 그곳에 자리를 잡고 뭐라도 해야했던 페페 씨의 젊은 모습이었다. 새로운 커뮤니티 안에서 공생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젊은 이민자의 몸부림이라고 할까.


이민자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평생 따라다니는 달갑지 않은 습관 같은 것이다. 어떤 자리에 가도 같은 인종의 사람을 헤아리게 되고, 여기서 내가 소위 ‘어글리 코리안’이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습관. 그렇기 때문에 낯선 곳에 불시착 한 우리에게 ‘진짜 피자’를 둘러싼 논쟁은 ‘누가 진짜 미국인인가’에 관한 논쟁과 다름없었고, 프로그램 말미에 데이비드 창이 말한 통쾌한 한 방은 그 당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한 방이기도 했다. 단일적인지 아닌지, 미국인다운지 아닌지, 혹은 백인인지 아닌지를 정통의 기준으로 삼는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데이비드 창에게 묘한 통쾌함과 위로를 느끼며, 우리는 그 무더운 날씨를 뚫고 미각의 위안까지 받아보자는 심산으로 프랭크 페페로 향했다.


오래된 간판과 실내의 강렬한 네온사인, 오래된 화덕과 시원한 실링팬의 찬바람을 느끼며 점원이 정해준 부스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맞닥뜨린 에어컨 바람 사이를 가늘게 뚫고 갓 구운 피자의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왔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 끝에 나는 드디어 갓 구운 조개 피자를 영접했고, 한 조각을 뚝 떼어 곧장 입으로 가져간 순간, 여기 오길 잘했다며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졌다.

신선한 조개의 맛과 밀가루 도우의 쫄깃함. 이 익숙한 재료의 맛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해 가장 적절한 맛표현을 찾아 마침내 외쳤다.



“이 피자, 진짜 맛있어! 바지락 칼국수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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