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위한 글감 노트(3)
올해는 여러모로 참 다사다난했다. 2월에 쓴 마스크를 12월까지 벗지 못했고, 출퇴근이 없는 재택근무로 밤낮을 잊고 살았다. 세상은 혼란스럽지만 시간은 계속 흐른다. 나는 무기력한 삶을 방관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산에 오르고, 환기와 청소를 했다. 평소엔 안 하던 일인데 이제는 없어선 안되는 의식 같은 일이다. 나에겐 퇴근 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위로였고, 휴일에 찾은 산과 숲은 치유였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나답게 잘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닌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광고 대행업을 하면서 모순적이게도 자체 브랜드에 대한 갈망이 컸다. 모든 마케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들을 주로 하고 있지만 광고 대행업은 유독 더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명 브랜드에 소속되는 게 아니라 신규 브랜드가 시장에서 살아남고 대중에게 소리 내어 불리기까지 그 치열한 현장 한가운데에 꼭 서보고 싶었다.
때는 2019년 3월, 1년 고민 끝에 퇴사 면담을 했다. 회의실 안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정적이 흘렀고, 오만가지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사람에 치여 일에 치여 도망치듯 퇴사한 적은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에 대해 수없이 의심하고 질문했다. 분명 동료와의 합도 잘 맞았고, 일도 숙달되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인데 영영 채워지지 않을 무언가가 있었다.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였기에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하는 한 가지가 있다. 단순히 변덕의 시기라며 넘어갔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불행했을 것이다.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을 때 팀 이전이라는 뜻밖에 제안을 받았다. 나름 경우의 수를 모두 추렸다고 생각했지만 예기치 못하게 해답을 찾았다. 무엇보다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그렇게 커머스 사업부에서 회사 자체 브랜드와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홍보하는 일을 맡게 됐다. 물론 기대와는 사뭇 달랐고 생각보다 빨리 난관에 봉착했지만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제조처와의 첫 미팅 때였다. 다들 어려운 전문 용어를 구사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서슴없이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단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그날부터 단어 하나 빼놓지 않고 기록을 하고 지식백과, 전문 서적, 유튜브 등을 통해 복습하면서 되새겼다.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원활한 소통으로 미팅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됐다. 부족함에 실망하기보다는 채우는 과정에 집중을 하자 하루하루가 보람차고 즐거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큰 성장의 원동력이 될 줄 몰랐다.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2021년에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까 봐 걱정하지 말고, 거침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언젠가 또 다른 갈망이 생길 것이다. 그땐 오래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아를 확장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걸 잊지 말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갈망은 희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