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위한 글감 노트(2)
“다 컸네”
“참 어른스럽구나”
“효녀다, 효녀!”
고작 일곱 살 여자아이가 듣기에는 다소 억압적인 말들이다. 지난 30년간 장한 딸로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며 살았다. 나의 의지와 선택과는 상관없이 1남 2녀 중 맏이이자 장녀로, 동생들을 돌보는 제2의 엄마 역할과 엄마의 대리 배우자로 의지 대상이 되어 집안의 경제 사정이나 아빠의 가부장적인 행실과 무능력함에 대한 욕을 들어내야만 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한창 받을 나이에 여동생, 남동생을 엎었다. 여느 맞벌이 가정이 그렇듯, 나도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동생들의 등하교와 저녁식사를 챙겼다. 장난감을 양보해서, 빨래를 개어놓아서, 김치볶음밥을 만들 줄 알아서 칭찬받았다. 그 당시 나는 주변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해야 인정받는 줄 알았다.
놀이터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면서도 온 신경은 동생들에게 집중됐다. 오직 내 중점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외동인 친구들이 부러웠다.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떼쓴 적이 있다. 어머니는 혼자만 보내줄 수 없다고 하셨다. 가정 형편이 어렵더라도 삼 남매 모두 공평하게 나눠야만 했다. 부모님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그로 인해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 등이 몸에 배었고, 각종 집안일에 시달리면서 자신에게 몰입할 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나의 삶에 대한 열망보다도 가족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던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친 과잉반응과 피해망상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맏이이자 장녀로 살아남기가 순탄치 않다.
대학교 입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을 때였다. 아버지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았다. 첫째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둘째, 셋째도 따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나는 대학교 원서를 1곳에만 접수하는 소심한 반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취업을 포기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학생활을 통해 더 많은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얻어서 감사하다. 현재는 같은 맥락으로 결혼과 손녀에 대한 압박을 하신다. 하지만 이제 고달팠던 맏이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맏이였기에 난 다양한 경험을 먼저 할 수 있었고, 경제관념도 일찍 생겼으며, 적응력 좋은 사회인이 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미 지난 일들을 마냥 나쁘게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말의 용기를 내어 이 글을 통해 기억을 환기시키고, 그 기억을 공유하고, 과거의 나와 만나 위로를 건네본다.
모든 일엔 양면이 있다. 동생들이 가질 수 없는 맏이만의 좋은 면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늘 똑 부러지고 강단 있는 성격으로 비쳤다. 가족을 챙기는 버릇 때문인지 진지하고 어른스럽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맏이 가면을 쓴 내 모습이 오히려 편하다. 집에서 맏이로서 동생들을 보살피는 일과 회사에서 리더로서 구성원을 관리하는 일은 매우 닮았다. 그래서인지 시키는 일을 하는 것보다 찾아서 하는 일이 체질에 맞다. 특히 남들보다 이성적인 판단과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되어 있다. 이러한 맏이만의 장점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으로 인도한다. 사실 본모습은 정반대인 편이다. 소신은 있지만 줏대가 없고 이성적보다 감성적일 때가 많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첫인상과 사뭇 다른 모습에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나 역시 겉과 속이 다른 내 모습이 아직까지도 낯설 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맏이로서의 삶이 어떻게 내 삶을 지배해 왔는지 정면으로 마주하고 알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삶을 더 나답게 살아가고, 나다운 선택을 하는데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는 맏이답게 말고, 나답게 살아보려 한다. 한국의 맏이들이여, 희생이란 억울함을 던지고 당당하게 맞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