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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루빵 Sep 30. 2020

남편이 괜찮대?

그럴 리가. 하지만 그건 내 고려 대상은 아니다.

나 자전거를 타고 중앙아시아를 횡단하기로 결정했어.


내가 다니는 회사에 소수의 팀을 이끌고 자전거로 매년 조금씩 중앙아시아 횡단 루트를 따라 여행하시는 분이 있다. 요즘 한참 "라이딩"에 빠져 있는 나도 코로나가 끝나면 그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말하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되묻는다. "남편이 괜찮대?"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이다. 결혼한 여자가 뭔가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제1순위의 고려 대상은 남편이어야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 내가 이기적이고 이상한 것인가?


남편이 괜찮냐고? 그럴 리가. 전혀 괜찮지 않다. 당장 내가 없으면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책임을 고스란히 혼자 떠맡아야 하는데, 절대 괜찮을 리 없다. 예상한 데로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반응은


미친 거 아냐?


완전 어이없다 이다. 뭐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의 감정은 이번 내 선택의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내가 고민했던 것은 '내가 여행을 함께 가는 사람들의 페이스를 잘 쫓아갈 수 있을까? 재미있긴 하겠지만 힘들고 고된 여행이 될 텐데 진심으로 그것을 내가 즐길 수 있을까?'였다. 내가 고려했던 것은 그 여행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지,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내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남편이 환영해 줄 것 같은, 혹은 남편이 싫어하지 않을 것 같은 선택지만으로 내 삶을 채워 나갈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서로를 배려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가, 혹은 그녀가 싫어하더라도 나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결정에는 인간적인 선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 다른 누군가에게 잔인함은 되진 말아야 하니까. 만약 내가 지금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아주 어린 아기들이 있는 상태에서 일주일 이상 장거리 여행을 가겠다 한다면 그건 나머지 한쪽에게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그건 분명 나만의 행복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9살, 6살. 여전히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지만 손이 많이 가진 않는다. 내 여행 기간 동안 남편은 다른 약속은 잡지 못하고 일찍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 답답하고 수고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혼자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가까운 친정과 시댁의 도움의 손길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작년에 남편은 맘 맞는 회사 동료들과 계를 들어 4박 5일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이 여행을 간다 했을 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았다 했다. 남편에게 선심을 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제 한 사람이 얼마 동안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컸고, 남편은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정이라는 틀을 깨뜨리지 않는 한에서.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서로 애정이 넘쳐 깨가 쏟아지는 부부는 아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도, 활동 방식과 체력도 다른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 둘이 같이 있을 때 별로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면 각자 행복한 것을 찾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행복하자고 열심히 사는 인생 아닌가? 서로를 너무 배려하느라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결혼생활의 의무는 아닐 것이다.


요새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없냐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내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많이 하는 이야기다. 나 역시 그랬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우리 나이 또래가 삶에서 더 이상 새로운 거리들이 생기지 않는 시기로 접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입학, 졸업,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등 인생에서 굵직한 일들이 이미 지나가고 더 이상은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들이 자연스레 생기지는 않는 나이가 된 것이다. 즉 내 삶을 재미있게 만들려면 스스로 그러한 것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생기 없이 시들어가다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건 관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죽어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나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계속 뭔가를 찾고, 배우고, 즐기고 싶다. 내가 중앙아시아 자전거 여행팀에 합류하기를 고민할 때 같이 가시는 분이 이렇게 말했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말에 심쿵했다. 가슴이 설렜다. 가슴 설레는 일을 발견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인생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을 선택하고자 할 때 너무 많은 사항을 고려하다 보면 하기 쉽지 않다. 고려 사항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하자. 이번의 경우 남편의 부정적인 반응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달래든, 협상을 하든, 협박을 하든, 뭐 결론은 내가 자전거 타고 중앙아시아를 갈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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