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중 2로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밀정도로 매서워지기 시작한 지 꽤 된 거 같은데...
지난여름은 그렇게 더웠었는데... 시간이란 참... 이렇게 얄궂네..."
한겨울 평일 낮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 돌담길을 혼자 걸으며 민경샘은 지난 일 년을 반추해 봅니다.
오랜만에 복직한 중학교에서의 첫해
40여 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왔던 인간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의 믿음과 도덕
20여 년 가까이 지켜온 교사로서의 고결함과 사명감은 죄다 무너진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계획대로 흘러갔던 고등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임기응변으로 점철된 하루살이 인생이었습니다.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만족스러운 수업은 손에 꼽힐 정도... 아니 거의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닥친 일을 처리하느라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는 하루를 보내고
멍하게 운전대를 잡고 익숙한 길로 가다 보면 어느새 주차장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잠들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하는 보충수업도 그 어떤 야근도 입시의 최전방에서의 치열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삶은 점점 피폐해 갔습니다.
이 고요한 순간에도
생각만으로 머리가 지끈합니다.
그때 코끝을 유혹하는 고소한 향기가 민경샘의 발걸음을 잡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 노릇한 붕어빵과 눈이 마주칩니다.
이 계절에만 누를 수 있는 막 구워진 따끗한 붕어빵
머리부터 한입 베어무니 뜨끈한 앙금이 쑥! 밀려옵니다. 호호~ 하얀 입김을 뿜으며 몸통, 꼬리까지... 맛있게 입안으로 진군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한지라
붕어빵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잠시 고민을 잊었습니다. 마지막 조각이 야무지게 입에서 사라지자
눈앞에 목적지인 북카페가 보입니다.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평일의 한가한 북카페
푹신한 의자에 매료되어 자리를 잡고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다시 상념에 잠깁니다.
지금껏 직업이 주는 혜택을 맘껏 누리면 살아왔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맘껏 펼치고,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가고 싶은 대학을 갈 수 있게 도와주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승진하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며 늦게까지 남을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를 앞서 나가야 하는 치열함도 없었습니다. 늘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혼난 적도 없습니다. 방학이 주는 여유와 안정감도 지금까지 버텨왔던 큰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잘 모르겠습니다.
교사였지만 교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은 10대들로 인해 인내심이 바닥나고 윤리적 잣대가 흔들리는 이 상황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이 정도로 흔들릴 거라면 교사를 하면 안 되는 건 아닌지
평화롭고 여유로운 겨울의 정점인 어느 날
민경샘은 10대보다 더 큰 사춘기를 맞이했습니다.
패팅 점퍼가 버거워지기 시작한 3월 첫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물음표가 가득찬 채로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사춘기 최정점의 중 2
그들과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