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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Jan 02. 2023

미래도시 서울

일상으로 돌아온 어반스케쳐 (3)

"엄마~ 길이 엄청 넓어요~"


격리 마지막날 해외입국의 마지막 절차인 코로나 검사를 하러 보건소로 가는 길. 매서운 겨울 날씨지만 오랜만에 밖에 나와 신난 두 딸이 길을 걸어가며 마냥 신기해합니다. 그렇게 많았던 오토바이는 간간이 보일 뿐이고 차들은 모두 교통질서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버스가 다닐 정도의 동네 길일뿐인데... 왜 이리 넓고 깨끗한지... 한두 발자국에 하나씩 보이던 정체불명의 똥도 없고 길에 굴러다니던 그 많던 쓰레기도 없습니다. 좁고 울퉁불퉁한 하노이의 도로를 걸으며 수없이 넘어졌었는데... 여기선 아이들의 손을 잡지 않아도 됩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 당연한 일상이었던 걸어 다니기 좋게 넓고 평평하고 깨끗한 길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새벽에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와 고국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마지막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던 동네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았습니다.





격리 해제 다음날.

남편은 한국 본사로 출근을 하고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있어 아이들은 같은 아파트에 있는 친정에 보냈습니다. 우선 베트남에 가기 직전 수없이 드나들던 주민센터에 들어섭니다. 출입국 증명이나 둘째 어린이집 입소 등... 행정적 절차가 쌓여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바로 앞에 작은 기계와 손소독제가 놓여 있습니다. 소독제만 손에 바르고 들어가려는데 직원이 제지하며 말합니다.  "인증하셔야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얼굴을 기계 앞으로 들이밉니다. 순간 직원과 뒤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꽂입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눈빛만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이 느껴집니다.

잠시 후 직원의 안내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주민센터로 들어갈 수 있게 된 후, 다른 사람들을 보니 휴대폰에서 뭔가 찾아 얼굴을 들이밀었던 그 기계에 갖다 댑니다. 퇴근한 남편을 통해 그게 백신 접종자라는 인증 QR코드란 걸 알게 됩니다. 부끄러움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어느 나라보다도 대중교통수단이 너무나 체계적이고 잘 되어 있었지만 볼 때마다 새삼스러웠습니다. 버스도착시간 알람, 깨끗하고 안전벨트가 온전히 다 있는 택시, 시간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빠른 지하철 등... 하지만 베트남에 가기 전엔 없었던 신박한 서비스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찜질방 같은 버스 정류장 온열 의자, 횡단보도 앞 블록에 있는 바닥신호등, 신호대기 중 쉴 수 있는 접이식 의자...

어찌나 이렇듯 세심하고 놀라운지... 더러우면 더러운 데로, 불편하면 불편한 데로 고칠 생각이 없는 베트남과는 달리 하나의 불만도 없애주겠다는 듯이 등장한 놀라운 공공서비스. 한국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일상인 것들이 우리에겐 놀라움입니다.


그중 가장 놀랐던 건 바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초록책 자전거와 킥보드. 처음엔 개념없는 누군가가 길거리에 버리고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에서 자연스럽게 공공 교통 서비스 따릉이나 킥고잉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불만이 있을 수도 있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하지만 80년대에서 2022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막 도착한 우리는 이 미래도시가 신기할 뿐입니다.











작년 6월. 코로나 예방접종 1차는 베트남에 했습니다. 장기간 셧다운으로 아이들과 집에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옵니다. 1시간 내로 접종을 하러 가야 하니 나갈 준비를 하라는 겁니다. 앞집 한국인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회사차로 데리러 온 남편과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평범한 하노이 뒷골목에서 내려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더 들어가니 남편의 직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발로 차면 부서질 것 같은 문으로 들어가니 시골 보건소 같은 곳이 나왔습니다. 회사에서 준비한 서류 다발을 들고 있는 베트남 직원에게 우리의 여권을 건네고 대기하다 백신을 맞았습니다. 좁고 더러운 통로에 목욕탕 의자 같은 플라스틱 의자에 오밀조밀 모여 앉아 30분 대기한 후 다시 회사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엉겁결에 백신을 맞고 제대로 된 접종인지 한동안 의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2차 접종을 하기 위해 네이버에서 동네병원을 검색합니다. 접종이 가능한 병원과 백신 종류, 잔여백신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당장 접종이 가능한 근처 병원에 대기를 걸고 방문했습니다.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동네 병원이지만 깨끗하고 조용합니다. 사람들이 좀 있었지만 예약 순서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주신 서류를 작정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문진을 받은 후 주사를 맞습니다. 무료입니다. 병원에서 나와 1층에 있는 만두집에서 비빔국수와 만두 세트를 배불리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접종 일주일 후.

다행히 크게 아프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이젠 아이들 접종을 챙겨야 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단골 소아과에 가서 독감 접종을 합니다. 항상 환자들로 시장통이었던 병원에 대기 손님이 하나도 없습니다. 접종을 시키고 막내의 마지막 영유아 검진을 예약합니다. 아이들 독감접종은 당연히 무료입니다.

영유아 검진날. 미리 웹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병원을 방문합니다. 만 6세까지 맞아야 하는 수많은 예방접종 중 마지막으로 남은 3개의 접종을 한꺼번에 맞았습니다. 모든 게 무료입니다.



예전엔 당연하게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의료 서비스에 놀라울 뿐입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더욱 체계적이고 이용하기 편하게 바뀌었습니다. 너무나 체계적이고 위생적이고 상식적입니다. 그리고 저렴합니다. 가벼운 감기라도 우리 돈으로 6~7만원이 들고, 무료 접종이란 없으며,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45만원이 나왔던 베트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제는 골절이나 충치가 생겨도... 설령 코로나에 걸린다 해도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기에 불안하지 않습니다.




병원진료부터 행정일까지... 급한 일들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복직을 하고 나면 바빠질게 뻔하니 아직 아무 데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우리 세 모녀는 대한민국의 편리한 대중교통과 공공 서비스를 활용하며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엔 혼자서 데리고 다니기엔 너무 어렸던 딸들이었는데... 그동안 훌쩍 자라 어디를 가든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들부터 하나하나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도서관, 인근 작은 박물관들이 왜 이리 쾌적하고 고급스러운지... 베트남에서 막 도착한 우리들 눈에는 별천지입니다. 허접한 공룡 모형과 가짜 말미잘이 들어 있던 횟집 같은 아쿠아리움만 보아온 탓에 거대한 공룡뼈에 감탄이 절로 나오고 수천 권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도서관에서 몇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시설 또한 수준급인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불만이 많은 한국인들의 성향 덕분에 살기 편했던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천만명이 살고 있는 서울.

우리가 떠나있는 동안 코로나의 여파로 원래도 괜찮았던 서비스의 수준이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습니다. 편의 시설도, 공공 서비스도, 시민의식도 너무나 훌륭합니다. 그래서 태어나고 자란 이곳이 지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린 최첨단 미래도시 서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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